[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문화재 반환과 말콤 벨
며칠 전 내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내가 학위과정을 하고 있던 시절 시칠리아에서 고고학 발굴작업을 할 때 아르바이트하던 안젤로로부터였다. 그는 시칠리아의 카타니아 대학에서 고고학 공부를 마친 뒤 프란치스코 수도승이 된 특이한 경력을 소유한 청년이었는데, 가끔 소식을 주고받았다. 느닷없이 그가 보낸 문자는 시칠리아 발굴작업의 디렉터였던 말콤 벨 (Malcolm Bell Ⅲ) 교수가 로마에 거주하는 동안 갑자기 독감에 걸려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제일 처음으로 들은 것이 학교 동료가 아닌 안젤로를 통해서라는 사실은, 말콤 벨 교수가 고고학 발굴 작업을 진행하면서 지역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안젤로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뵙지 못하고 로마를 떠난 것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말콤 벨 교수는 나에게는 불멸의 은인이다. 내가 천체물리학 박사를 마치고 미술사 공부를 새롭게 하고 싶어 버지니아 대학 석사과정에 들어갔을 때, 호메로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를 믿어 주고 이끌어 주셨다. 또 고고학 발굴작업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해 주신 분이었다.
평생 그는 고고학 유물의 불법거래에 맞서 싸웠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중요한 문화재들을 출토 국가에 반환하자는 캠페인을 일찍부터 하셨다. 그의 노력으로 미국 LA의 게티 미술관에서 불법으로 획득한 대규모 아프로디테 신상(사진)이 원래 자리인 시칠리아의 자그마한 마을로 반환된 것은 참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 세계 곳곳의 최정상급 박물관들이 소장품들의 법적 소유권을 재검토하고 출토 국가로 반환하는 경우가 느는 추세는 말콤 벨 교수가 일생을 투쟁한 과업의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위대한 우리 역사 유물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인 연구와 이해와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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