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0.49위안과 50위안
푸른 용의 해라는 갑진년(甲辰年). 희망과 기대로 시작해야 하는 새해이건만, 중국에서 최근 전해진 한 이야기는 인생이란 게 원래 슬픈 운명인가 하는 비감(悲感)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중국 지린성 출신의 32세 청년 리웨카이(李越凱)가 산둥성에서 목숨을 잃은 건 지난달 5일 밤 10시를 막 넘어서였다. 외식 배달일을 나갔다가 54세 아파트 경비원 자오리(趙力)와 실랑이가 벌어졌고, 자오가 휘두른 칼에 그만 젊디젊은 생을 마감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리웨카이는 고교 졸업 후 호주 유학을 떠났다. 호텔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보모로 일하는 어머니의 한 달 수입을 합쳐 7000위안 정도. 그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컸고 유학비로 100만 위안을 썼지만, 그는 6년 전 귀국 후 별다른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유학비용 중 절반은 빌린 돈으로 아직도 갚지 못한 상태. 그는 친척의 부름을 받아 산둥성에 가 배달일을 시작했다.
“연애와 결혼은 생각 없고 돈을 좀 벌어 부모님의 어려움을 덜어드리겠다”는 소박한 포부였다. 부지런히 뛰어, 남이 수십 건 주문을 받을 때 그는 100건까지도 챙겼다. 배달이 늦어지면 고객의 혹평이 따르고 이는 벌점으로 이어진다. 회사는 이에 따라 배달원을 1급에서 6급까지 나누고 등급에 따라 건당 0위안에서 최대 0.49위안(약 90원)의 격려금을 준다. 중국에서 뛰어다니는 배달원을 자주 보게 되는 이유다.
그는 사건 당일 칭다오시의 한 아파트로 배달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이 아파트는 오토바이 출입 금지 규정을 만들고, 경비원이 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2200위안의 월급에서 50위안(약 9140원)을 벌금으로 물렸다. 신속 배달을 통해 0.49위안의 격려금을 받으러 오토바이를 타고 단지 안으로 들어가려는 리웨카이와 50위안의 벌금을 물지 않으려고 이를 제지하는 자오리와의 싸움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리가 배달일을 시작한 지 불과 6일 만의 일이었다. 사건은 자연히 중국 청년의 취업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청년 실업률이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자 7월부터는 아예 발표를 중단한 상태다. 사건을 접한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아리다고 한다. 우리도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이런 일이 한국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일어났다 해도 전혀 놀라울 것 같지 않아서다. 새해 우리 화두는 총선이 아니라 민생이 돼야 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그런 상가는 처음"…고 이선균 빈소 간 문성근이 전한 뒷얘기 | 중앙일보
- ‘아빠 왜 유서도 안 남겼을까’…유품서 말기암 진단서 나왔다 | 중앙일보
- 63㎝ 높아 '입주불가'…"추운데 어디 가나" 김포 아파트 날벼락 | 중앙일보
- "매번 실패하는 금연, 문제는 뇌다" 스탠퍼드 교수의 강력 한 방 | 중앙일보
- 이낙연·이준석 '스벅 회동'…18분 웃었지만 묘한 기류 흘렀다 | 중앙일보
- 이제야 베일 벗은 女히키코모리…日 돌파구는 '15분 일하기' [김현예의 톡톡일본] | 중앙일보
- 태영사태 PF 위기, 내 돈은? 저축은행 79곳 다 뒤져봤다 | 중앙일보
- "담임 일당 9000원, 수능 봐 의대 갈래" 대치동 가는 MZ교사 | 중앙일보
- "한달 20㎏ 감량? 해도 너무한다" 명의가 분노한 사칭광고 | 중앙일보
- 덴마크 52년만에 새 국왕...“즉위식에 10만명 운집 예상”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