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상환수수료 면제했더니 대출 상환 1조2000억 늘었다
직장인 김모(39)씨는 지난달 말 황급히 A은행을 찾아 대출금 2000만원을 갚았다. 지난해 12월 한 달만 한시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김씨는 2년 전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30년 만기로 빌린 3억원 상당의 주담대 가운데 일부를 갚은 것이다. 김씨는 “(올해 모은) 2000만원을 정기예금에 넣어둘까 고민 중이었는데 대출금을 중도 상환해도 수수료를 안 받는다는 얘기에 빚부터 갚았다”며 “원금도 줄이고 수수료도 아낄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주요 시중 은행이 상생 금융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 한 달간 전체 가계대출에 대한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한 결과 대출금 상환액이 1년 전보다 23.6% 늘었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중도상환 수수료 면제가 부채 감소(디레버리징)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봤다.
14일 4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가계부채 상환액은 6조2560억원으로 전년 동월(5조595억원) 대비 1조1965억원(23.6%) 증가했다. 한 달 전과 비교해도 20% 늘었다. 특히 시중은행 4곳 중 1곳은 지난달 상환액이 1년 전보다 64.1% 증가했다.
그간 은행권 중도상환수수료가 대출자의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금융소비자보호법상 대출금을 중간에 갚는다고 수수료를 매길 순 없다. 다만 대출일로부터 3년 내에 상환하거나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 경우 예외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 조기 상환 시 발생하는 자금운용 차질에 따른 손실 비용, 대출 관련 행정·모집 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한 장치다.
문제는 국내 은행이 실제 손실 발생비용을 반영하기보다 획일적으로 수수료를 부과해 온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중도상환수수료는 고정금리 1.4%, 변동금리 1.2%로 동일하다. 중도상환 수수료로 은행이 얻는 이익은 연간 3000억원 수준이다.
최근 금융당국도 중도상환 수수료 체계 손질에 나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부채 경감, 취약계층의 빚 상환 부담 완화를 위해 업계 의견 수렴 등을 바탕으로 올해 1분기 중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변동금리·단기대출 상품의 경우 중도상환수수료에 실제 발생한 손실 비용만 반영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현재 변동금리형 주담대를 같은 은행 동일한 상품의 고정형으로 갈아탈 때 사실상 상환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반영할 계획이다.
모바일 등 비대면 가입채널을 이용할 경우 모집비용이 줄어드는 점을 고려해 수수료를 덜 받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는 2017년 7월 출범 후 주담대를 포함해 모든 대출에 대해 중도상환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간 대출자들이 받은 면제 혜택은 1300억원으로 추산된다. 또 당국은 중도상환수수료 부과·면제 현황, 수수료 산정 기준 등을 공시해 소비자의 알 권리를 증진하고 은행 간 건전경쟁을 유도할 계획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해 신용대출뿐 아니라 주담대 갈아타기도 가능해지면서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중도상환 수수료가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그런 상가는 처음"…고 이선균 빈소 간 문성근이 전한 뒷얘기 | 중앙일보
- ‘아빠 왜 유서도 안 남겼을까’…유품서 말기암 진단서 나왔다 | 중앙일보
- 63㎝ 높아 '입주불가'…"추운데 어디 가나" 김포 아파트 날벼락 | 중앙일보
- "매번 실패하는 금연, 문제는 뇌다" 스탠퍼드 교수의 강력 한 방 | 중앙일보
- 이낙연·이준석 '스벅 회동'…18분 웃었지만 묘한 기류 흘렀다 | 중앙일보
- 이제야 베일 벗은 女히키코모리…日 돌파구는 '15분 일하기' [김현예의 톡톡일본] | 중앙일보
- 태영사태 PF 위기, 내 돈은? 저축은행 79곳 다 뒤져봤다 | 중앙일보
- "담임 일당 9000원, 수능 봐 의대 갈래" 대치동 가는 MZ교사 | 중앙일보
- "한달 20㎏ 감량? 해도 너무한다" 명의가 분노한 사칭광고 | 중앙일보
- 덴마크 52년만에 새 국왕...“즉위식에 10만명 운집 예상”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