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에 기름붓는 ‘홍해 화염’… 한국 ‘1년 스케줄’ 다시 짤 판
중동 산유국이 몰린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를 가르는 홍해를 둘러싼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가뜩이나 급등한 해상 운임에 국제유가까지 출렁일 경우 ‘중동 리스크’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2%대 하락을 기대한 국내 물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거래하는 1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78.2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 대비 1.14% 상승했다. 장중엔 4%대까지 상승해 배럴당 80달러에 육박했다. 미국·영국 등 서방 연합군이 전날인 11일 예멘 후티 반군을 상대로 대규모 공습에 나선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9월 배럴당 90달러대까지 치솟은 뒤 하락세를 탄 국제유가가 다시 반등할지 주목된다. BBC에 따르면 영국 재무부는 이번 사태의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이상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이 전쟁에 개입하는 경우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이란의 원유 생산이 10만 배럴 감소할 때마다 국제유가 전망치는 배럴당 1달러씩 오른다.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석유기업인 아람코 공장을 공격한 2019년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 석유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미국과 이란이 참전하는 중동 전쟁으로 확산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공조가 예전만 못한 데다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많이 늘어난 것은 새로운 상황이다. 중국 등 주요 원유 소비국의 수요마저 주춤해 더는 유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냉정하게 봤을 때 홍해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여파를 가르는 요소는 ‘중동 확전’에 따른 국제유가의 향방”이라며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으로 번져 장기화하지 않을 경우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 운임이 뛰는 것도 문제다. 12일(현지시간) 아시아-유럽 노선의 해상 운임은 1TEU(20피트 컨테이너 1대) 기준으로 3103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1주 전(2871달러)보다 8.1% 오른 가격이다. 1년 전(1050달러)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상승했다. 코로나19로 해상 운임이 최대를 찍었던 2022년 1분기에는 평균 운임이 7435달러였다.
홍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각각 동서쪽에 둔 가늘고 긴 모양을 하고 있다. 부산 등 동아시아에서 출발한 화물선은 홍해 남쪽 바브알만다브 해협으로 진입해 북쪽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 남쪽 지중해로 이동한다.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류의 10%가 이곳을 통과한다. 금액으론 130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지난해 11월부터 후티 반군이 바브알만다브 해협을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면서 상황이 꼬였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대한 보복 성격이었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위협을 피하기 위해 동아시아~유럽 항로를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으로 틀었다. 지름길을 포기한 만큼 운항 시간은 7~10일이 더 걸린다. 배가 오고 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음 선박을 기다리기 위해 대기하는 화물이 많아진다. 웃돈을 얹어서라도 물건을 부쳐야 하는 화주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그만큼 운임은 올라간다.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은 다른 노선을 다니는 4척의 배를 다음 달까지 유럽 노선에 투입하기로 했다. 유럽은 비용 상승뿐 아니라 물품 조달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에서 주요 부품을 조달하는 테슬라는 다음 달 11일까지 독일 공장 생산을 중단했다. 볼보자동차도 1월 셋째 주 중 사흘간 벨기에 공장 생산을 멈추기로 했다.
국내 물가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기획재정부가 4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지난해 3.6%였던 물가상승률이 올해 2.6%로 떨어진다고 전망한 근거 중 하나가 국제유가 하락세다. 2022년 22.2% 올라 물가 상승을 부추긴 석유류 가격은 지난해 11.1% 뒷걸음치며 전체 물가를 둔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주유소 휘발유값은 14주 연속 내림세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홍해 사태로 유가가 다시 들썩이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하반기 예정한 기준금리 인하가 뒤로 미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영 공습에…“후티 공격력 30% 손상”
미국은 13일(현지시간) 예멘 후티 반군의 레이더 시설 한 곳에 대한 추가 공격을 단행했다.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인 카니함이 토마호크 미사일을 이용해 단독 작전을 수행했다. 미·영 연합군이 지난 12일 예멘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수도 사나와 사다 등 목표물 28곳에 공습을 가한 지 하루 뒤였다. 그러나 연합군의 바람과 달리 “실제로 타격을 받은 건 후티 공격력의 30% 이하”라는 미군 당국의 분석이 나왔다. 전쟁이 중동 전체로 번지거나 위기가 오래도록 지속되길 원치 않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란에 비공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히는 등 대이란 외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김기환·최선욱·김민정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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