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획부터 끝까지 모두 우리손에… VFX, 이젠 주류”
‘경성크리처’의 괴물과 ‘외계+인’ 속 우주선과 외계인들, ‘이재, 곧 죽습니다’ 속 죽음의 은신처와 지옥, ‘더 문’의 우주공간과 달까지. 모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지만, 스크린 속에선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하게 구현돼 관객을 현혹했다. 모두 덱스터스튜디오의 제갈승, 진종현 VFX수퍼바이저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컴퓨터그래픽(CG)이 없을 것이라 예상하는 곳곳에도 시각특수효과(VFX)는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 ‘경성크리처’에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 벚꽃과 ‘이재, 곧 죽습니다’의 박진감 넘치는 오토바이 추격 장면 속 차량들의 전복, 충돌 및 폭발은 모두 VFX로 구현됐다. 진 수퍼바이저는 “화면에 안 보이는 공간도 CG로 재포장해야 하는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덱스터스튜디오에서 제갈승, 진종현 VFX수퍼바이저를 만났다. 덱스터스튜디오는 VFX 및 콘텐츠 제작 전문기업으로, 영화 ‘미스터 고’를 제작한 김용화 감독이 설립했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외계+인’ 1·2부와 ‘이재, 곧 죽습니다’에, 진 수퍼바이저는 ‘경성크리처’와 ‘더 문’ 등에 참여했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지난 5일 ‘외계+인’ 2부의 VIP 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봤다며 “처음으로 편안하게 봤다. 그 전까지는 항상 ‘뭘 더 고쳐야 하지’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외계+인’의 VFX 작업에만 6년을 쏟아부은 만큼 애정도 각별했다.
‘외계+인’을 제작할 때는 촬영 전부터 세계관을 쌓아가는 것부터 함께 했다. 이에 맞춰 캐릭터나 우주선의 디자인을 결정해나갔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외계인은 고도로 진화한 종족이라 눈, 코, 입, 귀가 없다. 의사소통도 언어가 아닌 텔레파시로 한다는 설정이었다”며 “그래서 캐릭터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할리우드의 악당, 크리처 하면 떠올리는 근육 많고 몸집 큰 모습을 탈피해보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외계+인’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몸집이 작고 마른 모습에 길쭉한 형태를 하고 있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외계+인’을 “앞으로도 도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15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VFX에 투자됐고, 배우들이 모션캡처용 의상을 입고 많은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다만 몸에 딱붙는 모션캡처용 의상을 입고 액션 장면을 촬영을 하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무술팀에게 모션캡처용 의상을 입히고 액션을 따보니 배우의 몸짓이 가진 특유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처음엔 힘들어하던 배우들도 2부에서는 다 의상을 입고 연기를 해줬다”며 “류준열 배우는 ‘괜찮은데?’ 하더라. 아마 다음에 이 배우들이 이런 역할을 한다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진 수퍼바이저는 현재 ‘경성크리처’ 시즌2의 VFX 작업을 하고 있다. 시대극이기 때문에 ‘경성크리처’에는 많은 VFX 디자인이 들어갔다. 하지만 진 수퍼바이저가 가장 공을 들인 건 역시 크리처다. 그는 “크리처의 감정을 담아내는 게 힘들었다. 단순히 크리처가 화내고 부수고 죽이는 게 아니라 엄마의 이면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라며 “흔히 봐왔던 크리처의 모습은 아니었으면 해서 인간적인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크리처는 기괴하고도 처절한 모습이다. 한쪽 팔은 크고 다른 쪽은 짧은데, 다리 한쪽은 부러진 것처럼 굽어있고, 눈은 인간일 때 맞아서 부었던 그 상태 그대로 굳어져 뜨질 못 한다.
이처럼 VFX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실사로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극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괴물이나 외계인 같은 창조물이 아니더라도 ‘이재, 곧 죽습니다’ 속 비행기 폭파 장면이나 태강그룹 대표 박태우(김지훈)의 잘린 두 다리 등도 모두 VFX로 제작됐다. 이렇게 스펙터클하고 볼거리가 풍성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위해 투입되는 VFX 아티스트는 한 작품당 수백명에 이른다. ‘외계+인’에는 600여명이, ‘경성크리처’에는 600~1000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VFX 아티스트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진다. 두 사람이 참여했던 ‘외계+인’ 1부와 ‘더 문’은 혹평을 받았었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알게 모르게 아티스트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작품이 잘 됐으면 그간 고생한 것들도 보상받고 친구들한테 자랑도 했을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기가 죽더라”고 말했다. 진 수퍼바이저는 “극장에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아마 작업자들일 것”이라며 “크레딧에서 내 이름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위안을 받곤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이들은 VFX가 영화와 드라마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데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과거에는 CG팀이라고 통칭해서 부르기도 했고 현장에서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는데, 지금은 저희가 현장을 진두지휘한다. VFX는 이제 주류”라고 강조했다. 작품의 시작 전 단계부터 중간과 끝 모두를 VFX팀과 상의하며 제작해나가기 때문이다. 또 할리우드와 비교해도 기술력이 많이 따라왔다고도 평가했다. 진 수퍼바이저는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디테일이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저희가 미흡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효율성 측면에서 본다면 저희가 할리우드를 앞선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영화를 중심으로만 사용되던 VFX가 드라마로도 적극 확장되면서 덱스터스튜디오가 시도하는 것들도 다양해졌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드라마 제작 환경이 바뀌었으며 웹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많아지면서 세계관이 풍성해진 영향이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영상 콘텐츠나 좋은 인력들이 OTT나 채널 쪽으로 많이 넘어와있다 보니 드라마에서 더 적극적으로 VFX를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며 “드라마에서 시도한 것들이 반응이 좋으니까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물론 있었다.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다이내믹한 볼거리를 선사했던 울산대교 오토바이 추격 장면은 다리를 오랜 시간 빌리는 것도, 도로와 다리에 상처를 내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촬영됐다. 차를 뒤집고 폭발시키고 부딪히는 걸 실제로 촬영할 수 없었던 탓에 박진감을 더해준 이런 장면들은 나중에 CG로 표현했다. 제갈 수퍼바이저는 “몇 달에 걸쳐서 울산대교 섭외를 시도하다가 계속 안 돼서 마지막엔 풀CG로 해야겠다는 얘기까지 나왔었다”며 “다행히 섭외가 됐지만 6~7일을 촬영하려던 걸 3~4일 만에 해야 했고, 도로를 상처 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해외에서 온다고 했다면 빌려주지 않았을까”라고 아쉬워했다.
덱스터스튜디오는 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 회사로 거듭나는 게 목표다. 이미 ‘미스터 고’를 시작으로 ‘신과 함께’ ‘백두산’ ‘모가디슈’ 같은 영화들을 직접 제작한 경험이 있다. 진 수퍼바이저는 “저희도 내부적으로 (콘텐츠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우리만의 장점을 살려서 올해 결실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고 귀띔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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