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는 선거의 해…‘은밀한 손’ 경계령 [신율의 정치 읽기]
권위주의 정치 체제 국가, 타국 선거 개입 우려
북한 등 주요국 선거 개입 시도 철저히 막아야
2024년은 가히 선거의 해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가까운 대만에서도 대선이 예정돼 있다. 이 선거는 동아시아, 더 나아가 미·중 갈등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느냐, 아니면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 권력관계가 요동칠 수 있다. 대만 선거 결과는 당연히 우리나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테다. 여당인 민진당 후보 라이칭더는 차이잉원 정부의 기존 정책을 계승한 TSMC 중심 경제 성장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존재로 인해 중국의 ‘야심’을 저지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반면, 야당인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는 TSMC에 치우친 경제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국민당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은 반도체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입장이 갈려 있는 상황에서 정권이 야당에 넘어가면, TSMC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고 공급망도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뿐 아니라, 미국의 대(對)아시아 전략도 수정될 수 있다.
올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선도 예정돼 있다. 3월에 치러지는 러시아 대선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 연임에 이견이 없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전시 계엄 상태인 만큼 대선을 연기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지만,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야당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민적 피로감을 내세우며 여당을 공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대선이 치러질지, 치러진다면 승자는 누구냐에 따라 전쟁 지속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선거 역시 세계 경제와 국제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이 밖에도 오스트리아, 벨기에, 크로아티아 그리고 핀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도 총선이 치러진다. 네덜란드나 이탈리아처럼, 극우파가 집권할 것인가가 관심의 대상이다.
미국 대선 결과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미국 대선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 선거 결과는 우리나라 경제와 국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북한 핵을 용인할 것인가, 그리고 윤석열 정권 들어 현격히 개선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관계가 다시금 격랑에 휩싸이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 우려된다.
이렇듯 2024년은 세계적 차원의 ‘선거의 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부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가진 국가들이 타국 선거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을 것인가다. 미국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 명예회장도 “권위주의 세력들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 민주주의 국가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선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권위주의 국가들이 외국 선거에 개입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인터넷 댓글이나 SNS상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이 첫손에 꼽힌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최근 연구 결과가 있다.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연구팀은 네이버 뉴스 댓글을 빅데이터 분석 기법인 크롤링(데이터 추출)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연구에 의하면, 중국 측의 조직적인 댓글 활동으로 의심되는 움직임을 다수 포착했다고 한다. 중국으로부터 유래됐다고 의심되는 ‘이상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후버인스티튜션,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사 그리고 맨디언트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이버 보안 회사도 각각 이런 ‘이상 움직임’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프랑스 연구에서도, 중국 측에 의한 허위 조작 정보 계정이 식별됐다고 한다. 평시에도 이런 ‘인위적 여론 조성’은 문제가 되지만, 선거 시즌에서는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나라도 이제 댓글창에 댓글 작성자 국적을 표기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게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국적을 표기한다 해도, 우회 IP 등으로 침투해 댓글을 달 경우 이를 식별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뿐 아니라, 가짜뉴스 역시 선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가짜뉴스와 댓글 조작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방법 역시 고려돼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구 출범과 창설에 여야 간 이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선거라는 민주주의 근간을 수호하는 데 여야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은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에서도 나타난다.
스웨덴은 2022년 1월 법무부 산하에 ‘PDA’라는 기구를 출범시켰다. 이 기구는 외국으로부터의 여론 조작 시도, 즉 심리전을 효율적으로 방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프랑스는 2022년 대선 직전 ‘VIGINUM’이라는 조직을 신설했다. 외국으로부터의 디지털 간섭을 감시하고, 국내 디지털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일본 역시 가짜뉴스와 SNS 허위 계정을 통한 여론 조작 시도에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22년 발표한 ‘국가안전보장전략’에는, “허위 정보의 확산을 포함한 인지전과 정보전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4월에 내각관방 산하에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실’을 설치할 예정이다. 해당 기구 역시 미국의 ‘허위정보관리위원회’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유럽이나 일본 그리고 미국에 존재하는 이런 기구를 출범시키려 한다면, 야당 반응이 어떨지 사뭇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정치판은 뭔가 추진하려고 하면, 일단은 음모론적 시각을 갖고 상대방의 행위 목적을 해석하려 들기 때문이다.
외국으로부터의 선거 개입 시도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때문에 외국에서는 이를 어떻게 막고 있는지 참고해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가 왜곡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특히 북한의 선거 개입 시도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와 선거가 왜곡돼 민주주의가 망가졌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냉정하게 비교하는 합리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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