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까지 7년, 부서진 결혼 틈새로 예술을 열었다
한국 사회에서 딸,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깨우쳤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을 매개로 풀어본다. <편집자말>
[이유리 기자]
"이야, 우리 작가님 오셨어? 요즘 잘 나간다며? 얼굴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
잘 나가긴 뭘 잘 나가냐며 손사래 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들은 집요하게 말을 잇는다. '네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멋지다'라며. 축하의 외피를 쓴 말이지만, 그가 정작 말하고 싶은 건 내 과거다. '나비가 애벌레였던 시절을 기억해라. 나는 네가 벌레였던 때를 아는 사람이야.'
이때 나는 생각하게 된다. 나와 한 시절을 잠깐이나마 함께 보낸 이들과 작별해야 할 순간임을. 내게 독이 되는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이 온 것이다. 결단(決斷)은 결정이나 결심과 다르다. 결단에는 과거의 추억과 미련까지 모두 끊어내는(斷) 단호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레테의 강'이라는 게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망각의 강으로, 죽은 자는 저승으로 가면서 이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다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레테의 강가로 망설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 스스로 강물을 마시는 결단을 내린 사람이 있다.
바로 '곤충의 아버지' 앙리 파브르보다 170여 년이나 앞서 곤충을 연구하고 그린 독일의 예술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 1647~1717)이 그 주인공이다. 메리안은 어떻게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과거를 끊어내고, 레테의 강 건너편으로 떠날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최초의 여성 곤충학자이자 사이언스 아트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을까.
▲ 독일의 옛 화폐 500마르크 지폐에 그려진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초상화 |
ⓒ 마리아지빌라메리안 |
메리안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그녀는 18살이던 1665년, 8살 연상의 화가 요한 안드레아스 그라프(Johann Andreas Graff, 1637~1701)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라프는 메리안의 새아버지이자 화훼 화가인 야곱 마렐의 제자 중 한 명이었고, 베네치아와 로마 등 여러 곳을 돌면서 견문을 넓힌 후 막 귀국한 터였다.
모두가 보기에 그라프는 결혼 후 아내와 같이 착실히 판화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메리안은 여자였기에 당시 그라프처럼 스승을 찾아 돌아다니며 도제 수업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집안의 영향으로 이미 11세 때부터 동판화 제작기술을 완벽하게 익혀왔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그림도 정식으로 배워 꽃과 곤충을 멋지게 그릴 수 있었다.
부부 예술가로 성실하게 살림을 꾸리겠다는 계획은 메리안 혼자만의 꿈이었다는 사실은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그라프는 갑자기 천하태평형의 술주정뱅이가 되었다. 성실한 아내가 그의 '믿는 구석'이었던 걸까. 그는 좀처럼 일하려 들지 않았고, 어쩌다 들어온 동판화 일도 성의 없이 처리하는 바람에 그나마 있던 주문까지 뚝 끊겨버렸다. 술과 담배에만 찌들어있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것은 메리안이었다. 메리안은 뉘른베르크 귀족 딸들에게 자수와 스케치, 수성 및 유성 물감 사용법을 가르치고, 방수염료로 색을 칠한 식탁보를 제작해 귀족에게 납품하며 돈을 벌었다.
생계 활동만 해도 벅찬 나날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메리안은 경이로운 창작력도 발휘한다. 1675년 28세 나이에 식물도감인 채색 동판화 화집 <꽃 그림책>을 출간한 것이다. 메리안은 이 책 서문에서 "따라 그리고 색칠하기 위해, 바느질하는 여성들에게 자수 도안을 제안하기 위해, 예술 애호가들에게 즐거움과 유익함을 제공하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도안을 모두에게 기꺼이 내놓았다"고 적었다.
처음 내는 화집이었지만, 이 책은 당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요하임 폰 산드라르트(Joachim von Sandrart)는 같은 해 <독일 예술 아카데미>라는 책을 냈는데, 여기에 메리안의 그림을 실은 뒤 "그녀의 스케치와 수채화, 판화에서 엄청난 기술과 섬세함, 그리고 지성이 엿보인다"고 극찬했다. 메리안을 일컬어 '미네르바에게 자신의 재능을 바친 여인'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이는 메리안의 화가 경력에는 순조로운 출발이었지만, 결혼생활에는 안타깝게도 악재가 되었다. 잘 나가는 아내에게 열등감을 느낀 것이었을까. 그라프에게 애인이 있다는 소문이 메리안의 귀에까지 흘러들어왔다. 이때 메리안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뜬금없게도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다. 첫딸을 낳은 지 무려 10년 만의 임신이었다.
책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의 저자 나카노 교코는 이 임신에 대해 "피임에 실패한 결과이거나 혹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인 부부관계를 어떻게든 회복해보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어쩌면 메리안은 가족이 늘어나면 남편도 다시 일에 대한 의욕을 되찾고, 외도도 그만둘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기대는 곧 산산이 깨진다. 31살에 차녀 도로테아를 낳았지만, 변한 것은 그녀가 책임져야 할 입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메리안은 아이를 낳은 이듬해인 1679년, 이번에는 나비와 나방, 잠자리, 모기 등 186종의 곤충을 관찰해 기록한 곤충도감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까지 출간한다. 이 책은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식물뿐 아니라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 순서로 곤충이 변태하는 과정을 한 면에 한꺼번에 그려낸 획기적인 화집이었다.
이 당시 대중들은 축축한 진흙 웅덩이에서 생명이 저절로 생긴다는 '자연 발생 이론'을 여전히 믿었고 마녀가 악마의 비법으로 벌레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비조차 '여름새'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시대였으니 곤충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책이 던진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메리안이 곤충을 채집해 직접 기른 다음, 이를 관찰해 양피지에 정성껏 그린 결과물이라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1679년에 펴낸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 자신의 이름을 교차시킨 가는 줄기 위에 새기듯이 그려 넣었다. |
ⓒ 마리아지빌라메리안 |
그런데 메리안은 책을 내기 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눈치가 보였던 것이었을까. 그녀는 남편과 공동으로 작업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책 표지에 "사랑하는 요한 안드레아스 그라프의 친절한 도움으로"라고 기록했다. 어쩌면 거의 파탄 난 부부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안간힘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메리안은 곧 이조차도 부질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출간 당시 그녀는 표지에 자신의 이름 '마리아 지빌라 그라프, 본성(本姓)-메리안'을 교차시킨 가는 줄기 위에 새기듯이 그려 넣었다. 하지만 30년 뒤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 네덜란드판을 출간할 때, 메리안은 '그라프'라는 글자가 있는 줄기 위에 일부러 나뭇잎을 그려 넣어 글자를 지워버린다. 그렇다. 이 30년 사이에 메리안은 드디어 그라프를 자신의 인생에서 도려내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1600년대의 독일은 어떠했던가. 아내는 남편의 요구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대에 메리안은 남편과의 인연을 끊어버리기를 꿈꾸었다. 자, 그렇다면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라프는 메리안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펑펑 놀아도 알아서 돈 잘 벌고, 살림 잘 꾸리는 알토란 같은 아내와 이혼이라니, 당치 않았다. 메리안도 알고 있었다. 남편을 피해 멀리 도망쳐도 그는 뒤쫓아올 게 분명하다는 걸.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자기 혼자만이 아닌 딸과 친정어머니 모두 함께 탈출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종교'였다.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 주 발타성에는 종교공동체 '라바디스트(Labadists)'가 있었다. 프랑스 성직자 장 드 라바디(Jean de Labadie)가 설립한 이곳은 남녀나 계급차별도 없이, 물질적 소유를 전부 포기한 사람들이 은둔하며 살아가는 수도원이었다. 1685년, 드디어 메리안은 그라프가 없는 틈을 타 짐을 모조리 싸들고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삭막한 황야로 도망쳤다. 50시간의 긴 여행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에서 피신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안전히 헤어질 수 있는 '안전 이별'을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가도 상관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라프의 집착도 만만치 않았다. 역시나 그라프는 네덜란드까지 쫓아왔다. 하지만 상황은 전과 달라졌다. 이제 그녀 곁에는 자신을 지켜줄 라바디스트 공동체가 있었다. 한번 결단을 내린 메리안의 마음은 철옹성과 같았다. 그녀는 끝까지 냉담한 태도를 지키며 남편과의 재회를 완강히 거부했다. 메리안에게는 정당한 명분까지 있었다. 그녀는 "그라프가 라바디스트의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라프와의 결혼은 신이 볼 때 더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자두나무 위 산누에나방의 변태> 1679년, 양피지에 판화, 미국 LA 게티 센터. |
ⓒ 마리아지빌라메리안 |
메리안은 5년동안 수도원에서 숨죽여 지냈다. 그 좋아하던 곤충채집도 하지 않았고 그림마저 그리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지쳐있던 그녀에게 쉼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라바디스트는 "인간은 신의 도움으로 내면을 정화할 수 있고, 그 결과 영혼을 재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필경 이는 메리안에게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메리안은 이때 자신이 숱하게 그렸던 번데기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에서 그녀는 여러 종류의 번데기를 그렸다. 그 중 '자두나무 위 산누에나방의 변태'를 보면 애벌레와 나방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지만, 적갈색의 번데기는 마치 죽은 듯 미동도 없이 바닥에 누워있다. 하지만 사실 번데기 내부에서는 애벌레의 기관과 조직이 성충의 구조로 바뀌는 극적인 변화가 진행 중인 상태라는 사실을 메리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나비가 되어 날아가기 위해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 다독이지 않았을까.
마침내 그날이 왔다. 라바디스트 공동체에 사는 동안, 메리안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채집된 곤충과 식물 표본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리남에 라바디스트 포교단도 있었기에, 표본이 메리안이 있던 공동체로도 흘러왔던 것이다. 유럽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곤충들을 보고 메리안은 흥분했지만, 곧 아쉬움이 마음을 채웠다. 표본 상태였기에 곤충의 기원과 변태 즉 유충에서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실제 과정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메리안은 또다시 결단을 내린다. 1699년 수리남으로 연구 여행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 어떤 귀족이나 군주의 지원을 받지 않고, 그동안 자신이 그린 그림 250점과 표본을 팔아 경비를 마련해 나선 길이었다. 남성 동행자조차 없었다. 달랑 21살의 둘째 딸만 데리고 배가 올랐을 때 그녀의 나이 52세. 위험천만하다고 모두가 말렸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혼을 결단했을 때와 같이 굳건했다. 이윽고 석 달이나 걸리는 긴 항해 끝에 수리남에 도착한 메리안은 열대림의 살인적인 기후에 맞서 싸우며 곤충과 식물을 관찰하고 기르며 표본을 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705년에 출간된 최후의 걸작 <수리남 곤충의 변태>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동판화 예술품이었을 뿐 아니라 과학적 선언까지 한 책이었다. <나비를 그리는 소녀>의 저자 조이스 시드먼의 말처럼 '아메리카 대륙의 신비한 정글에서도 두꺼비는 진흙에서 나오지 않았고, 나뭇잎은 나방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나비는 새로 변하지 않았다. 각각의 생물은 자신만의 변화 단계를 거쳤다'는 선포였다. <수리남 곤충의 변태>는 오랫동안 사랑받았고, 마침내 6종의 식물과 9종의 나비, 2종의 풍뎅이에 메리안의 이름이 붙여지는 등 그녀의 업적은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나는 유별나게 생긴 이 애벌레가 어떻게 변신할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그런데 1700년 8월 10일 볼품없는 나방으로 변해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처럼 아름답고 특이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별 볼일 없는 녀석이, 평범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와 나방이 탄생하는 일은 흔하다."
<수리남 곤충의 변태>에 쓴 메리안의 글이다. 한때 메리안도 스스로를 어떻게 변신할지 모르는 볼품없는 애벌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네덜란드행 마차에 몸을 실었던 그 날, 세속에서 쌓아놓았던 모든 걸 버리고 칩거를 선택해야만 했던 그 날. 그녀는 참혹한 결혼생활로 인해 마음이 부서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책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저자 파커 J. 파머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 한데 그들의 마음은 부서져 조각난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린 것입니다."
진정 이 말이 옳다는 것은 메리안의 용감한 삶이 증명한다. 독이 되는 관계를 단호히 끊고 레떼의 강물을 마신 결과, 그녀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해 레떼의 강을 날아서 건너갔다. 그리고 비로소 세상을 향해 열릴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잘 부서지긴 하지만, "빛은 부서진 그 틈으로 들어온다"(소설가 헤밍웨이)는 진실을.
덧붙이는 글 | 참고서적 <나비를 그리는 소녀>, 조이스 시드먼 지음, 이계순 옮김, 북레시피, 2021 <곤충 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윤효진 옮김, 양문, 2004 <주변부의 여성들>,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 지음, 김지혜 조한욱 옮김, 길, 2014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 나카노 교코 지음, 김성기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3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정하린 옮김, 글항아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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