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모임 선망의 대상... 은퇴한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

이혁진 2024. 1. 1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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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뒤 계속 일하는 친구, 부러움의 대상... 아파서 일 못해도 먹고 살 걱정은 없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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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해 2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 앞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실은 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생계 유지 등을 이유로 폐지를 줍는 65세 이상 노인은 4만2천명에 이르며 한 달에 16만원을 손에 쥐었다. 복지부는 오는 1월부터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지역 내 폐지 수집 노인을 전수조사한 후 이들에게 노인 일자리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 연합뉴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폐지 줍는 노인들 실태가 보도됐다. 전국에서 4만 2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노인들이 폐지를 주워 한 달 15.9만 원을 번다는 내용이다. 폐지 수집 대가가 월 15.9만 원, 채 16만 원이 안되다니... 충격적이었다. 
   
폐지수집 노인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폐지 판매대를 포함해 74.2만 원으로 조사되어 2020년 조사된 전체 노인의 개인소득 129.8만 원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폐지 줍는 노인들... '노인빈곤 1위' 한국의 민낯

70대인 내가 폐지수집 노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웃에 실제로 그런 지인을 알고 있어서다. 한 분은 동네 공원에서 자주 뵙는 80대 후반의 할머니인데 근 20년 폐지를 줍다가 자녀들 성화에 몇 년 전 그만두었다. 또 한분은 전직 영어강사인 김종수(88) 어르신으로 수년째 폐지를 주워 이웃을 돕고 있다.
     
이들을 보며 무심코 버리는 박스, 신문, 잡지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폐지를 곱게 다루는 그들을 생각해 아무렇게나 버리던 폐지를 따로 모아 전해주고 있다.
      
폐지 줍는 평균연령 76세 노인들의 모습은 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2020년 40.4%) 1위라는 오명을 대변하는 것 같다. 독거노인 10명 중 7명 이상이 빈곤 상태라는 통계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인 가구의 빈곤율은 72.1%이다.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들 대다수가 빈곤한 상태라는 이야기다. 
    
 노인일자리 참여자 모집 광고
ⓒ 이혁진
 
노인빈곤율을 줄이려면 은퇴해 나이 들어서도 수입을 보장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은퇴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 60세 정년이 있지만, 사실 허울 좋은 규정일 뿐 대부분 정년 이전에 퇴직하는 실정이다. 은퇴 시기도 제각각이다. 빠른 사람은 50세 전에도 옷을 벗는다. 한때 유행하던 '사오정(45세가 정년)'이란 말이 경제불황과 구조조정 바람에 다시 유행한다.
     
문제는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영부영 자신도 모르게 장기실업자가 되고 만다. 조급한 마음에 창업을 시도하지만, 하루아침에 퇴직금을 날리는 사람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  

자존감 높아지고 삶의 활력까지... 노인일자리가 필요한 이유 
   
노후준비가 된 사람은 은퇴 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부분은 생활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처지다. 필자도 60세 즈음 현직을 떠나 70세인 지금까지 간간이 알바를 했지만, 이렇다 할 직업이 없다.
      
교사로 35년을 봉직하고 적지 않은 연금을 받으면서도 건물경비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있다. 그에게 돈을 많이 받고 안 받고는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은퇴하고 일을 계속하는 그는 동창 모임에서 선망의 대상이다. 자의든 타의든 은퇴한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말한 동창의 사례처럼, 얼마간 수입을 받으면서 최대한 오래도록 일하는 것이다.
     
한편 최근 올해 노인일자리 참여자 몇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70대인 이들은 건강한 동안은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혼자 사는 양재식(76)씨는 5년째 관내 노인일자리 택배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정규적인 활동으로 지병이 없어지고 새 친구도 사귀면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기상(77)씨는 용돈을 해결하고 남은 돈으로 손주들에게 과자값이라도 줄 수 있어 떳떳해졌다. 사라진 자존감이 되살아났고, 전에 느끼지 못했던 삶에 대한 의욕도 생겼다고 한다.

일주일에 3번, 한 달에 받는 수입은 비록 29만 원(사회공헌 서비스 일자리는 76만 원)이지만 이 일자리를 통해 그가 얻는 유형, 무형의 효과는 결코 적지 않다.
 
 모두의학교 7학년교실 수업장면
ⓒ 이혁진
안복희(78) 어르신은 오전에 손자녀를 대신 돌보고 점심을 해결한 후에는 평생교육시설인 모두의학교 '7학년교실'에 다니고 있다. 오전에는 돌봄 수당을 벌고 오후에는 못 배운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달 1년의 수업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수여받고 눈물까지 흘렸다.
     
안씨가 이처럼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것은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집에 가면 있으면 텔레비전만 보고 무료하며 누워있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힘든 내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의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모습은 100세 시대를 살게 될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상이다.
     
늙어서 아프면? 외국엔 이미 다 대책 있다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은 처음 시작할 때인 2006년만 해도 참여하는 노인들이 적었지만,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노인세대로 편입되면서 참여자들이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 노인일자리를 103만 개로 대폭 확대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노인일자리 참여자 중 좌장인 남춘배(79)씨가 속내를 드러낸다. 일자리도 건강을 잃으면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데, 그럼 그때는 생활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단다. 그러면서 그는 연금 등 정부지원금을 확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최근 시니어파트너스 등 은퇴자 모임과 단체들이 퇴직연금개혁의 시급성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미국은 1950년 후반 퇴직연금제도를 개혁한 후 은퇴자들 대부분 생계비 걱정 없이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단다.

우리나라는 내년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갈수록 노인빈곤도 심해 고령인구의 '건강한 노후'가 관건이다. 100세 시대에 오래 사는 만큼 은퇴 이후 건강하면 죽을 때까지 일거리와 함께 적절한 연금보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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