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독자적 역사가 서기까지... 한반도 역사지리의 뿌리를 읽다

김성호 2024. 1. 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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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213] 박인호 지음 <실학자들은 우리나라 역사지리를 어떻게 보았는가>

[김성호 기자]

한때는 역사란 그저 외우는 것이라고 믿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역사를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의 하나쯤으로 여겼을 때였다. 그 시절 역사는 간명했다. 책에 쓰인 옛 이야기였고, 그 책이란 교과서였다. 교과서는 언제나 명확했다.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를 거쳐 여러 나라가 일어서고 쇠망했다. 그로부터 반도체를 팔아 지구 반대편에서 에너지를 사오고 K-Pop 스타를 배출해내는 이 작지만 강한 나라가 도래한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편 끝자락에서 고조선부터 삼한, 삼국시대가 이어졌고, 고려와 조선, 나아가 오늘에 이르는 역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 유구한 시간 속 기록해 마땅한 순간들이 내가 아는 역사였다.

언제쯤이었을까. 내가 배운 역사가 의심스러워진 순간이 있었다. 교과서를 두고서 편향논란이 제기되고, 심지어는 역사왜곡이냐 아니냐 열띤 토론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때였다. 누군가는 역사교과서가 편향되었으므로 올바로 새로 써야 한다고 했고, 또 누구는 이 같은 발언이 치우쳤다며 일갈했다. 중국의 동북공정부터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이슈가 연달아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배워 아는 역사란 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 저 유명한 문장,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가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배운 역사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채택된 것일 터였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존재했던 모든 사실이 유의미한 역사가 되지는 못한다. 어느 것은 취해지고 어느 것은 버려진다. 이를 가르는 것은 학자들이다. 때로는 정치적 득실과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학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어떤 사실은 택하고 다른 사실은 버린다. 역사 또한 결국은 사람의 일인 것이다.

내가 아는 역사는 언제 역사가 되었을까. 시간의 뒤편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대신, 오늘을 사는 이들이 반드시 기억해 마땅한 과거의 사실이 된 건 언제부터인가 말인가. 문득 그 사연이 궁금하였다.

역사가 역사가 되기까지는
 
▲ 실학자들은 우리나라 역사지리를 어떻게 보았는가 책 표지
ⓒ 동북아역사재단
 
<실학자들은 우리나라 역사지리를 어떻게 보았는가>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이다. 오늘의 한국인들이 '본래 그러했다'고 가벼이 지나치는 지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책이다. 박인호 교수가 지난 2021년 발표한 이 책은 저자가 과거 저술한 논문을 일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게끔 정리한 교양도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선 중후기 실학자들이 당대로서는 생소한 역사지리적 인식을 갖고 나름의 학문을 펼치는 과정을 정리해 나열했다. 16세기를 산 한백겸부터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이익과 정약용을 거쳐 서구열강과 직접 맞닥뜨린 19세기 사람 이유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를 소환해 그들의 역사지리학적 성과를 풀어놓는다.

흔히 사람들은 역사와 지리가 별개의 영역이라 여긴다. 역사란 과거의 일과 그 의미를 배우는 학문이며, 지리는 인간이 살아가는 지표 위 공간을 이해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통시적인 것이고, 지리는 공간을 넘어 분석돼야 할 공시적인 것이어서, 둘은 서로 겹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역사는 지리 가운데서 태동하고, 지리는 역사 가운데서 의미를 가진다. 지리의 영향 없이 발전하는 역사는 없고, 역사와 따로 떨어진 지리는 생동감을 잃는다. 따라서 둘을 서로 결합해 이해하는 건 앎을 넓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역사 속에서 지리를 이해하는 것, 말하자면 역사지리는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물론 역사와 지리가 처음부터 함께 하는 건 아니다. 둘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고, 둘의 관련성을 한 번에 꿰뚫어보는 데는 나름의 공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학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들이 역사 가운데 지리의 중요성을 알아가기까지는 긴 시간과 외래 학문의 도움이 필요했던 듯 보인다. 이전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에 그쳤다. 국가와 사람, 업과 제도의 흥망성쇠가 주요한 대목을 이루었고, 지리는 그를 보조하며 필요한 경우 지명으로써만 등장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마저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지역은 지명이나 실제 위치가 누락되고 혼동되기 십상이었다. 어느 사료에는 한반도 안에 있다 하는 것이 다른 사료에는 요동에 있다 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역사와 지리의 긴밀한 관계맺음

고증과 실측이 역사서술의 주된 방법론으로 등장하기 이전엔 저술의 의도에 따라 지리를 제멋대로 서술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후대 조선의 역사서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 원나라 대의 사서 <요사>는 거란족의 역사를 요동 지역의 주류로 부각하려는 의도 아래 작성됐다. 한반도 일원에서 발호한 세력들을 요동 주변에서 일어난 것으로 표현한 것도 그래서였다. 삼한과 삼국의 옛 지명이 난 데 없이 요동 일원에 있었던 것처럼 기록됐고, 후대의 사서 중 상당수가 먼저 있었던 이 사료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앞선 나라와 그 시대를 산 이가 이미 사라진 세상에서 후대가 이를 바로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다. 고대사 서술에선 이 같은 사례가 적지 않아 후대에서 고대 국가의 영토를 비정하는 건 까다로운 작업이 될 밖에 없었다.

책은 조선조 여러 학자가 남긴 저술을 통해 역사지리에 대한 인식과 기록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탐구한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를 살았던 실학자들, 모두 40명 가까운 학자들이 남긴 저서를 비교분석하여 기록할 만한 특징을 따로 떼어 실었다.

저자는 조선 학자 가운데 역사지리학을 독립적 학문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인물로 1615년 세상을 떠나는 한백겸을 이야기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해 완성돼 1640년 간행된 <동국지리지>가 최초로 역사지리에 대한 내용을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기초적인 논증을 거쳐 실었기 때문이다. 책이 나라 안 강역의 변화와 관방의 실태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쓰였기에 고대 국가의 흥망을 역사지리 안에서 담아내게 된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한백겸은 여기서 '남자남북자북'이란 논리로써 상고사를 살핀다. 조선이 계승하는 이 나라의 상고사는 남쪽과 북쪽으로 양분돼 별개로 발전해왔다는 이야기다. 또한 삼국이 마한, 진한, 변한으로부터 연결돼 나타났다는 이전의 해석에서 탈피해 삼한 모두 남북 중 남쪽의 역사로 구별한다. <요사>의 서술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시각을 뒤집는 획기적 관점으로 이후부터는 한백겸의 시각이 정설로 자리 잡게 된다.

17세기를 산 유형원 또한 흥미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동국여지지> 등의 책에서 고대 국가들의 영역을 한반도에서 벗어나 요동 지역까지 확장해 비정한다. 기자조선이 요하의 동쪽에 있었고, 진번 또한 요동에 있었다고 하는 식이다. 여전히 과거 여러 서적을 비교해 그중 합당하다 여겨지는 설을 취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부이지만, 유형원은 생애 전반에 걸쳐 역사지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고대사의 무대를 합리적으로 정착시키려 노력한다.

진취와 경계 사이에서

성호 이익 또한 인상적이다. 저자는 이익의 역사지리 인식에 대해 '요동 땅에 대한 강한 복구의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자들인 성호학파의 여러 학자 또한 그러해서, 단군조선의 강역을 요동을 넘어 산동반도까지 확장하거나 한사군의 위치를 요동에 두는 등 조선이 계승한 역사를 한반도 너머까지 넓히려는 일관된 의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발해를 북국으로 지칭하며 계승할 역사 안에 받아들인 유득공의 <발해고> 또한 흥미롭다. 그는 발해를 우리 역사 안에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적은 관심으로 불명확한 지명들을 치밀하게 고증하여 <요사>와 <대청일통지> 등이 잘못 기록한 위치를 비평하고 바로잡는다.

반면 역사지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약용은 한반도 고대 역사를 한반도 내로 끌어들인다. 고조선과 한사군의 만주 존재설을 부정하고 발해를 우리 역사 안에 끌어들이는 시도 또한 비판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요동 지역의 문화가 청에 의해 함몰되어가는 상황에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정약용이 보인 여진과 말갈의 역사를 우리의 것과 철저히 구분하고 집요하게 역사서술의 영역을 한반도 내에 고정하려는 모습 안에 시대적 흐름과 이에 대응하려는 목적성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실학자들의 변화하는 역사지리학적 연구로부터 단순히 고증을 통해 사실에 다가서는 모습 이상을 읽게 된다는 점은 각별히 흥미롭다. 결국 역사란 시대 안에서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그로부터 더 낫거나 못한 미래에 가 닿게 된다는 사실을 읽어낼 수 있다. 우리가 역사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높아진 한반도 주변 상황 가운데 우리는 역사를 대하는 더 나은 태도를 요구받고 있으므로.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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