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만에 1067억 날아갔다…'ELS 악몽'에 증발된 노후자금
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있다. 홍콩H지수가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달부터 이와 관련한 ELS 상품의 만기가 본격 도래하면서, 벌써 1000억원대 원금 손실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5대 銀 ELS, 닷새 만에 1067억 원금 손실
14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이들 은행이 판매했던 홍콩H지수 기반 ELS 상품은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 만에 1067억원의 원금 손실을 확정했다.
이 기간 만기가 도래한 상품의 원금 규모는 약 2105억원으로 전체 손실률은 50.7%에 달했다. ELS 상품에 넣은 원금을 절반 넘게 잃었다는 의미다. 지난해 하반기에 확정된 손실액 82억원을 더하면 5대 은행에서 최근 6개월 사이 확정된 홍콩H지수 ELS 원금 손실액은 1149억원이다.
지수 65~70% 넘겨야…현재는 절반 이하 뚝
홍콩H지수 ELS의 확정 손실액은 앞으로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ELS 만기가 3년인 점을 고려하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것은 지난 2021년에 가입한 상품이다. 당시 홍콩H지수는 1만~1만2000포인트였지만, 현재는 절반 이하인 5400선에 머물고 있다.
ELS는 기초가 되는 지수가 가입 대비 만기 시점에 일정 수준 이상이 돼야 원금을 보장받는다. 구체적으로 ‘녹인(Knock-in)’형 상품은 녹인(가입 기간 중 기초 지수가 기준점 미만으로 하락)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만기 때 지수가 가입 당시 지수의 70% 이상이어야 원금을 보장받는다. 녹인이 발생하지 않으면 지수 50%만 넘겨도 원금을 보장받지만, 올해 만기 ELS 대다수 상품이 녹인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노 녹인(No Knock-in)’형도 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65% 이상이 돼야 원금을 보전받는다.
결국 홍콩H지수가 만기 때 까지 가입 당시보다 적어도 65~70%를 넘겨야 원금 손실이 안 나지만, 현재는 2021년 대비 절반 밑에 머물고 있어 손실 가능성이 크다.
상반기에만 만기 ELS 10조2000억원
중국 경제 부진으로 중국 증시 반등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ELS 만기 도래가 올해 상반기가 특히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전체 금융권의 홍콩H지수 ELS 총판매 잔액은 19조3000억원이다. 이 중 79.6%인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도래한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만기가 끝나는 ELS 상품 총판매 잔액은 10조2000억원이다.
홍콩H지수가 현재 수준과 유사하게 머문다면 손실률도 올해 초에 기록한 절반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올해 상반기에 확정 원금 손실액만 5조원이 넘을 수 있다.
“신속히 위법 확인해 책임 물을 것”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자, 금융당국은 은행권 ELS 상품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신속히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민원이 들어온 개별 불완전판매 의심 사례는 물론, 은행권 현장 검사를 통해 조직적인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5대 은행 기준 올해 12일까지 ELS 관련 민원은 총 1410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518건이 올해 제기한 ELS 관련 민원이다.
특히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지난해 11~12월 ELS 판매사 12곳의 현장·서면조사를 벌여 ▶ELS 판매 한도 관리 미흡 ▶성과핵심지표(KPI)상 고위험·고난도 ELS 상품 판매 드라이브 정책 ▶계약서류 미보관 등의 문제점을 확인했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KB국민은행의 경우 지수 변동성이 30% 이상 확대되면 자체적으로 ELS 상품 판매 목표 금액의 50%만 판매한다는 내부 규정이 있는데도 한도를 80%까지 끌어올려 판매한 사례가 발견됐다”고 했다.
금감원은 자체 ‘홍콩H지수 ELS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한편, 12개 주요 판매사 순차 현장검사를 통해 금융사 위법사항을 확인하고, 필요시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이다. 현장검사에서 금융사가 조직적으로 불완전판매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일괄 보상안이 마련될 수도 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일부 개별 사례에 대한 불완전판매 보상이 아닌 전반적인 보상안이 마련되려면, 은행이나 금융사가 조직적으로 불완전판매를 지시하거나 개입한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면서 “향후 검사에서 이 부분이 확인되는지가 보상안 마련에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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