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안철수' 커원저 돌풍…팔로워 110만, 애칭은 '아저씨'
지난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 결과 30년 가까이 이어진 민주진보당(민진당)과 국민당의 양당 체제에 금이 갔다. 제3 정당인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65) 후보가 예상보다 높은 26.46%(369만466표)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다. 커원저에 대한 득표율 예상은 10% 중반대 정도였지만 실제는 그 보다 10%포인트나 높았다. 대만 총통 선거가 직선제로 전환한 1996년 이후 제3정당이 2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 무소속 쑹추위(宋楚瑜) 후보가 36.84%의 득표율을 올리긴 했지만, 쑹추위는 당시 국민당 후보로 롄잔(連戰)이 선출된 것에 반발해 탈당 뒤 출마한 것이어서 이번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에 총통에 당선된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후보에 대해 "자력으로 승리했다기보다 ‘민중당 돌풍’ 의 반사 이익을 얻었다고 봐야한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실제로 지난 2일까지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라이칭더는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를 오차 범위 이내인 3~5%포인트 정도 앞섰다. 하지만 실제 결과에선 허우유이를 6.6%포인트로 따돌리며 낙승했다. 대만 내 반(反)민진당 표를 민중당이 국민당과 양분함에 따라 민진당은 4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 득표만으로도 1위를 차지했다.
민중당 돌풍은 총통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입법위원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전체 113석 중 집권 민진당(51석)과 국민당(52석)이 비등한 규모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가운데 민중당이 8석을 확보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선 입법원 내에서 (민진당과 국민당) 모두 민중당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민중당이 정치적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커원저의 민중당이 대만 정국을 좌우하는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다.
커원저 후보는 13일 밤 가진 패배 연설에서 “(이번 선거에서) 3당 균형을 이룸으로써 대만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세계에 증명했다”며 “4년 뒤엔 반드시 집권할 것이다. 내일부터 다시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과의사 출신의 커원저는 국립대만대 의대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국립대만대병원 응급의학센터장을 지냈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만 수도 타이베이 시장에 무소속으로 도전해 국민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2018년 재선에 성공한 뒤, 2019년 민중당을 창당해 제3의 길을 선언했다. 명문대 출신 의사 경력과 새정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그를 ‘대만의 안철수’라 보기도 한다.
커원저는 민생 경제를 내세우며 젊은이들에게 파고드는 전략을 폈다. 민진당과 국민당이 각각 ‘대만의 자유·민주 수호’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을 외치며 명분을 강조하는 사이 커원저는 높은 집값과 낮은 임금 등 당장 대만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에 집중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중 자녀가 있는 가정엔 저리(低利) 대출을 제공하고, 세금 감면 등을 통한 근로자 임금 인상을 공약한 것이 대표적이다.
60대 나이에도 소셜미디어(SNS)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젊은이들에게 다가서기도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10만명으로 10만명대인 라이칭더, 허우유이보다 10배나 많다. 두 사람은 개설하지 않은 ‘틱톡’도 자유롭게 활용했다. 커원저를 ‘아베이’(阿伯·‘아저씨’나 ‘삼촌’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라 부르는 MZ 세대에서 팬층이 형성됐다. 양안 문제에선 ‘중국과의 실무적인 교류·협력이 중요하다’는 등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실용적인 2030 세대를 파고들었다.
린쯔리(林子立) 대만 동해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만 중앙통신사에 “저임금과 고용 환경 악화, 높은 집값 등으로 젊은 표심이 커원저 후보에 흘러갔다”며 “라이칭더 당선인은 향후 (대만 내) 분배 문제 등에서 중요한 과제를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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