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머니를 애도하지 않았다" 가혹한 돌봄 노동의 기록
김은미 2024. 1. 14. 15:57
린 틸먼의 '어머니를 돌보다'를 읽고
행복도 마찬가지겠지만 불행 역시 느닷없이 닥친다. 갑작스럽게 부모의 돌봄을 전담하게 된 가족들의 삶은 질서를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돌봄의 분배 과정에서 어떤 가족들은 분열되고 파괴되고 편을 가르기도 한다. 급기야는 돌봄의 대상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런 감정의 혼란을 겪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쓰러운 마음과 후회 없이 잘하고 싶은 마음이, 미워하고 원망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초긴장 상태로 11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작가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는 여러 명의 간병인과 마지막 생을 함께 보낸다. 가족들의 체계적인 간병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진심을 다하려는 의지는 오래 가지 않는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기술적 케어 능력이 환자의 생을 좀 더 편안하게 연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나 '어머니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함으로써 짊어지게 된 책임감의 정서적, 심리적 무게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180쪽)'는 작가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가정 케어에서 간병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간병 시스템의 중요성은 인식하지만, 간병인의 자질에 따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현실에서 100% 안전한 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포기하고, 인정하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
죽음 뒤에 남겨진 자들의 마음 상태가 애도가 남지 않음, 바짝 말라버린 마음, 짐을 내려놓은 듯한 후련함이라면 굉장히 서글픈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뒤에 남는 감정이 공허함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삶의 일부를 포기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면서 가혹한 의무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지기를 바란다. 아울러,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돌봄 노동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훗날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삶의 중심을 잡고 버텨낼 수 있는 마음의 지침서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은미 기자]
▲ 책표지 <어머니를 돌보다> |
ⓒ 돌베개 |
조금은 낯선 이름의 작가 린 틸먼. 미국에서도 대중적인 작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문학계에서는 '작가들의 작가'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어머니를 돌보다>는 그가 11년간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느꼈던 사랑, 의무감,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관한 기록 즉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다. 옮긴이의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어머니를 돌보며 대면해야 했던 '어머니와의 관계'라는 한 축과 어머니를 돌보면서 접한 '돌봄의 현실'이라는 또 다른 축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252쪽) 처음에 작가는 미국의 의료 서비스 시스템, 특히 노인 환자, 말기 환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 시스템의 문제점들을 다루는 일종의 사회비평서를 쓸 생각이었고, 사람들에게 호스피스 케어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작가는 철저히 자신이 경험한 것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데 방점을 둔 책을 쓰게 되고,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치유와 위로를 받는다.
현대사회가 고령화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돌봄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돌봄'이 불가피한 일이기는 하지만 매우 힘든 일이며 의무와 도리만으로 돌봄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노동의 강도가 매우 세다는 것을 강조한다. 누군가는 이미 겪고 있는 일일 수도 있고, 언젠가 겪게 될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에 현실적인 돌봄 노동의 이야기가 굉장히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삶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하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삶은 완전하고 완벽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33쪽)
행복도 마찬가지겠지만 불행 역시 느닷없이 닥친다. 갑작스럽게 부모의 돌봄을 전담하게 된 가족들의 삶은 질서를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돌봄의 분배 과정에서 어떤 가족들은 분열되고 파괴되고 편을 가르기도 한다. 급기야는 돌봄의 대상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런 감정의 혼란을 겪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쓰러운 마음과 후회 없이 잘하고 싶은 마음이, 미워하고 원망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초긴장 상태로 11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작가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가 간병인에게 더 많이 의지할수록 나는 더 행복해졌다.
더 많은 시간을, 자유를 얻었다.(82쪽)
어머니는 여러 명의 간병인과 마지막 생을 함께 보낸다. 가족들의 체계적인 간병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진심을 다하려는 의지는 오래 가지 않는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기술적 케어 능력이 환자의 생을 좀 더 편안하게 연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나 '어머니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함으로써 짊어지게 된 책임감의 정서적, 심리적 무게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180쪽)'는 작가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가정 케어에서 간병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간병 시스템의 중요성은 인식하지만, 간병인의 자질에 따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현실에서 100% 안전한 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포기하고, 인정하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
길고 긴 돌봄의 투쟁을 끝냈을 때, 작가 린 틸먼은 '우리 사회가 이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떤 관계에서는 돌봄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운 의무일 수밖에 없다'라는 점을 강조한다.(255쪽) 예전에는 자식이 부모를 케어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받아들여졌다. 혹사 결혼 안 한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가 돌봄을 전담하기도 했다. 이제는 돌봄의 의무를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해 시스템적인 검토가 필요할 때이다. 당연한 일이란 없으니까.
나는 어머니를 위해 슬퍼하거나 어머니를 애도하지 않았다.
나는 안도감에 마비되었고 피로로 녹초가 되었다.
환희가 아니라 현기증을 느꼈다.
11년이라는 짐. 어머니라는 짐이 떠났다.(205쪽)
죽음 뒤에 남겨진 자들의 마음 상태가 애도가 남지 않음, 바짝 말라버린 마음, 짐을 내려놓은 듯한 후련함이라면 굉장히 서글픈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뒤에 남는 감정이 공허함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삶의 일부를 포기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면서 가혹한 의무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지기를 바란다. 아울러,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돌봄 노동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훗날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삶의 중심을 잡고 버텨낼 수 있는 마음의 지침서로 삼았으면 좋겠다.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좋았다'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추억들이 많이 남아서 좋았다'라고 긍정적으로 마무리하지 않아서 좋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이 관통하고 있던 '현실감'이라는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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