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 오류로 수천명 파산”… 영국 최악의 ‘우체국 스캔들’
25년 전, 영국 우체국의 금융 업무 전산망에 생긴 치명적인 오류로 인해 수백 명을 파산하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는 절도죄를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영국 우체국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최근 TV드라마로 다뤄지면서 또 한 번 대중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2015년 사이 영국 우체국 소장들은 생계가 무너지고 가족들을 잃었다. 비극의 시작은 한 소프트웨어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영국 우체국은 회계방식을 전산화하고 있었다. 후지쯔가 개발한 호라이즌(Horizon)이라는 정보기술(IT)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호라이즌은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만다. 우체국이 보관 중인 수많은 자금이 사라졌다는 잘못된 정보가 전산망에 입력됐다. 수 세기 동안 국민들에게 신뢰받던 이 정부 기반의 금융기관은 크게 흔들렸다. 많은 소장들이 손실금을 보전하면서 파산하고, 일부는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영국 전역에서 일하던 수천 명의 우체국 소장 중 700명은 형사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일부는 교도소에 수감됐다.
2003년 영국 남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우체국을 운영하던 조 해밀턴은 호라이즌에서 2000파운드의 적자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당황한 해밀턴은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집을 담보로 재융자를 받았다. 융자금과 이자는 2007년 그녀가 절도 및 허위 회계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설 때까지 36000파운드로 불어났다. 수치심과 기나긴 법정공방에 따른 피로도가 커지자 해밀턴은 절도 혐의에서 벗어나는 조건으로 허위 회계 혐의에 대해 인정했다.
13일(현지시간) CNN은 최근 TV 드라마 ‘미스터 베이츠 vs 더 포스트 오피스’(Mr Bates vs The Post Office)가 방영되면서 이 사건이 다시 한번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드라마는 우체국 소장들이 결백을 증명하고 보상을 받기 위한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CNN은 “드라마가 공개된 후 리시 수낙 총리는 의회가 수백 명의 하위 우체국장들의 유죄 판결을 뒤집는 획기적인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2001년 남편 아쉬라프 캄란과 함께 런던 북부의 우체국 지점을 샀던 시에마 캄란은 3년 후 우체국 감사에서 25000파운드의 부족분을 발견했다. 원인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절도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2020년 무죄를 입증받았으나 그는 “20년 동안의 트라우마를 되돌릴 수는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시에마는 20년 전 남편이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날을 떠올리며 “두세 시간 후에 그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남편이 수감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그의 남편은 4개월 후 풀려났지만 전자발찌를 찬 채 5주를 보내야 했다.
당시 유죄 판결을 받은 700명의 소장 중 93명만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재까지 2700명 이상이 보상을 신청했다. 이들은 보상뿐만 아니라 사건과 관련한 이들의 책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영국 정부는 이번 주 중 후지쯔가 이 스캔들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시행한 결과를 발표하면 이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후지쯔 측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데 전념하겠다”고 발표했다.
피해자와 전문가들은 후지쯔뿐만 아니라 영국 우체국에 대해서도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전산망이지만 결국 그들이 죄를 인정하도록 몰고 간 것은 우체국이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프리츠의 제임스 하틀리 변호사는 CNN과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비난은 우체국을 향해야 한다”며 “시작은 IT 시스템의 결함이지만 우체국의 기업 행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전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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