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좋아하세요? 올해는 '새 구경 걷기'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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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 2024'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기획입니다. 2024년 자신의 새해의 목표, 하고 싶은 도전과 소망 등을 네 글자로 만들어 다른 독자들과 나눕니다. <편집자말>
[이준수 기자]
건강을 위해 걷는 분들이 참 많다. 주말 공원에서 언제나 걷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루 육천 보 이상만 힘차게 걸어도 고혈압을 비롯해 스트레스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걷기는 참 좋은 운동임에 틀림없다.
▲ 꾀꼬리 사진(자료사진) |
ⓒ 픽사베이 |
거창하게 뭔 탐조냐, 당연히 걷다 보면 참새 몇 마리쯤 보지 않은가 하면서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동네 어디든 조금만 고개를 돌면 까치며 까마귀, 직박구리들이 눈에 띈다. 그렇지만 유심히 지켜보는 일은 드물다. 나도 새를 배경화면쯤으로 여기며 내 갈 길을 가고는 했다. 그러다 며칠 전 운명적으로 붉은머리오목눈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참새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아, 귀엽다."
호숫가 갈대숲 사이로 난 데크길을 지나다 쫑알쫑알 거리는 소리가 나서 데크 아래를 지켜보던 참이었다. 동글동글한 머리에 까만 작은 눈을 지닌 새 수십 마리가 시끄럽게 날아다녔다. 아무래도 내가 갈대숲에서 쉬던 녀석들을 방해한 듯했다. 처음에는 참새이겠거니 여겼다. 그런데 뭔가 미묘하게 생김새가 낯설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다른 새였다. 이름은 모르지만.
갈색 통통이들은 복잡한 갈대숲에서 매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 탓에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앙증맞은 인상이 뇌리에 퍽 박히고 말았다. 나중에 호숫가에 새워진 안내문을 보고서야 아까 본 귀염둥이의 정체가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새 사진으로 바꿨다
이 녀석은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라고 할 때 그 뱁새이기도 했다. 나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새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단지 그 짧고 야무진 다리로 황새 뒤를 쫓는 상상을 하니 대견하고 기특한 마음이 절로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집에 와서도 붉은머리오목눈이 생각이 났다. 또다시 새를 보고 싶었다. 다른 종류의 새도 가까이서 지켜보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 날 것 같았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하듯 컴퓨터와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새' 사진으로 바꿨다.
'다음 산책은 무조건 새를 보는 데 집중한다!'
나는 굳게 다짐했다. 사람이 참 신기한 점이 있다면 '보려고 해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는 것이다. 고개를 바짝 쳐들고 길을 나섰다. 세상에나, 새에 초점을 두고 걸으니 온 천지에 새가 날아다녔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온갖 새소리가 대기를 가로질렀다.
나는 너무 신이 나서 새를 따라다녔다. 어떨 때는 멀리서 검게 비치는 새의 실루엣을 쫓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새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천상 세계에 초대받아 정신 못 차리는 육지 동물처럼 넋을 놓고 말았던 것이다.
새들은 덩치 큰 내가 다가가자 일찌감치 달아나 버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 같은 탐조 산책이었다. 그나마 무심한 비둘기가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조용히 내 옆을 어슬렁거렸다. 나를 피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공원 관리 차원의 권고사항이 있기는 하지만, 몰래 쌀알이라도 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물원의 호랑이를 관찰하듯 근거리에서 새를 관찰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나는 폭풍 검색에 돌입했다. 세상에는 분명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를 사랑하고, 새 보기와 더불어 보호에까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애조인(愛鳥人)들이 상당했다. 이런 조언도 들었다.
'탐조의 기본 장비는 쌍안경입니다. 너무 크고 무거운 장비는 휴대하기 힘드니 간소한 제품으로 시작해 보세요.'
도시 어부에게 낚싯대가 빠질 수 없듯 새를 보려면 쌍안경이나 망원 기능이 딸린 카메라가 필요했다. 모든 사진을 스마트폰으로만 찍는 나에게 망원 카메라가 있을 리 없었다. 사흘에 걸친 엄청난 조사와 동호인의 조언에 따라, 결국 가격이 삼십만 원에 달하는 쌍안경을 마련했다. 다음 달에 있는 생일 선물을 가불하고 용돈을 보태 마련한 무리수였다.
내가 십만 원 대의 입문용 쌍안경을 구입하지 않고 바로 다음 등급의 기종으로 직행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새를 생생하게 눈앞에 있듯 관찰하고 싶었다. 가능하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을 수 있다면 더욱 좋고.
우체국 택배의 배송 현황을 실시간으로 조회하며 쌍안경을 기다렸다. 어서 빨리 쌍안경을 목에 걸고서 탐조 산책을 떠나고 싶었다. 미리 유튜브로 쌍안경 사용법을 학습했다. 고배율 쌍안경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목에 걸 수 있도록 끈을 끼우고, 가운데 휠로 초점만 잘 맞추면 됐다.
▲ 붕붕 거리는 날갯짓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큰고니 |
ⓒ 이준수 |
마침내 쌍안경이 도착했다. 나는 새 차를 뽑은 것 마냥, 온 가족을 데리고서 신이 나서 지난 9일 강릉 경포생태저류지에 갔다. 1월의 경포저류지에서는 여러 종류의 오리와 고니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반은 얼어붙고, 반은 물이 흐르는 저류지 한 편에 오리들이 계모임을 하는 것처럼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오리들'이었겠지만 나는 도감으로 예습을 하고 왔다.
"청둥오리, 흰비오리, 댕기흰죽지... 와, 누가 누군지 다 알겠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오리들의 얼굴이 신기하게도 구분되었다. 마치 알파벳 파닉스를 배우고서 처음 영단어를 읽게 되었을 때의 기쁨 같은 것이 차올랐다. 쌍안경을 아내와 아이들이 번갈아 쓰며 오리 가족을 지켜보았다. 호수의 새는 사육장에 갇혀있지 않았다.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런 새의 모습을 눈에 담고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더 놀랄만한 일은 호숫가 계단을 올라섰을 때 벌어졌다. 거짓말처럼 큰고니 가족이 머리 저 멀리서부터 날아와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간 것이다. 워낙 직선으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에 나와 아내는 카메라와 쌍안경을 빼들고 촬영 준비를 했다. 거대한 날개가 공기를 붕붕 가르는 소리가 났다. 어떤 고니는 굉장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동작은 우아하지만, 그 우렁찬 울음소리는 솔직히 박력 넘쳤다.
찰칵찰칵! 쌍안경에 담긴 고니는 크고 힘찼다. 고니는 저류지 위를 크게 한 바퀴 돌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걸음을 더 옮기니 아래쪽 하천에 다른 고니 가족들이 쉬고 있었다. 아까 본 고니까지 합치면 줄잡아 일대에 스무 마리는 있는 듯했다. 백조의 호수다.
가슴이 뛰었다. 새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가 멀리서 지켜보았다. 탐조 도서에서 배운 대로 정해진 길만 이용했고, 카메라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았다. 새들도 맹금류만 아니면 서로 친하게 지내는지 다양한 종이 섞여 놀고 있었다.
개천의 터줏대감인 청둥오리를 비롯해서 잠수왕인 논병아리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한참 후에 모습을 드러냈다. 큰고니 곁으로 자그마한 할미새가 꽁지를 위아래로 까딱거리며 바삐 날아다녔다. 물닭도 무얼 뜯어먹는지 수시로 부리를 움직이며 강바닥을 뒤졌다. 나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새들이 노는 풍경은 흥미로웠다. 남에게도 보여주고 싶을 만큼.
새 구경 걷다보니 1만보... '일석이조'는 탐조인들에겐 금기어
▲ 나는 새를 보면서 확신했다. 동물을 아끼는 사람에게 탐조 산책은 굉장히 효과적인 운동유발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해변가 새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산책도 하고 새도 보고.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하는 걸까. 아차차, 일석이조는 돌 한 개로 새 두 마리를 사냥한다는 말이므로 탐조인에게 금기어다. 탐조하면서 새나 자연물을 괴롭히면 안 된다. '새대가리' 같은 조류 비하 발언도 금지다. 큰부리까마귀는 심심하다고 미끄럼틀을 타거나 전깃줄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는 고지능을 자랑한다.
탐조 산책은 걷기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좋은 유인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새해 소원으로 '건강'을 꼽지만 꾸준히 운동하기는 어려워한다. 매력적인 동기유발 장치가 필요하다. 나는 새를 보면서 확신했다. 동물을 아끼는 사람에게 탐조 산책은 굉장히 효과적인 운동유발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탐조라고 겁먹지 않아도 된다. 처음에는 단출한 운동복 차림에 맨눈으로 새를 보자. 그러다가 호기심이 생기면 아담한 쌍안경을 마련해서 새를 보자. 대포 사이즈 망원렌즈 카메라가 없어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기분,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은 새를 보는 산책을 두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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