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땐 "국정농단 통로" 文땐 "버킷리스트 출장"…제2부속실 역설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 가족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202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윤 대통령은 “영부인이란 말은 쓰지 맙시다”라며 대통령 부인의 일정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 폐지를 약속했고, 취임 뒤 실천에 옮겼다. 법적 지위가 없는 ‘영부인’에 대한 별도 보좌는 불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5일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른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및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밝히며 “국민 대다수가 설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면 저희들이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여사에 대한 야권의 비판이 집중되고 총선 전 여론이 악화하자 김 여사 일정을 공식 보좌하는 ‘제2부속실 카드’를 꺼낸 거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공약 파기를 두고 윤 대통령의 고심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제2부속실’이 순기능만을 해왔던 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현행법상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 가족에 불과하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경호 대상으로 지정된 게 전부다. 이 모호한 법적 근거와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특수한 지위가 맞물려 제2부속실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잦다. 정치권에서 “제2부속실의 역설”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제2부속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신설했다. 고 육영수 여사는 제2부속실과 육영재단 등을 통해 소외계층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박 대통령에게 직언도 마다치 않아 제2부속실의 위세도 커졌다. 영부인을 보좌하다 정치계에 입성한 이들도 여럿이다. 대표적 친문 의원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권양숙 여사를 보좌했던 제2부속실장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제2부속실은 ‘국정농단의 통로’라는 오명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소외계층을 살피는 민원창구로 활용하겠다”며 제2부속실을 존치시켰다. 초대 제2부속실장으로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전 비서관을 임명했으나, 2015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비선 실세 의혹이 불거진 뒤 제2부속실은 폐지됐다. 이후 국정농단 특검 수사에서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가 제2부속실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국정농단의 통로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뒤 제2부속실을 부활시켰다. 김정숙 전 여사의 활발한 활동을 보좌하며 논란도 뒤따랐다. 대표적 사례가 2018년 11월 김 여사의 인도 단독 방문이다. 당시 김 여사는 3박 4일간 홀로 인도를 찾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면담을 하고 관광지인 타지마할을 방문했다. 이외에도 문 전 대통령 순방 때마다 각종 관광지를 찾아 야당으로부터 “버킷리스트 출장”이란 비난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는 김 여사의 단골인 유명 디자이너 딸이 청와대 직원으로 채용돼 김 여사를 보좌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현재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재설치를 위한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여권 관계자는 “제2부속실장에 누굴 임명하는지도 정말 중요하다”며 “설치 자체보다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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