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발하는 후티, 그 뒤엔 이란 있다…'컨테이너 전쟁' 목적은 [이철재의 밀담]
중동에 전운(戰雲)이 잔뜩 끼더니 이제 전쟁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미국ㆍ영국이 12일(이하 현지시간) 예멘에서 후티의 방공 체계ㆍ무기 저장소 등 28곳을 150여 발의 정밀 유도탄으로 대규모로 폭격한 데 이어 13일에도 미국은 추가로 후티 반군을 공격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13일 오전 3시 45분 미 해군의 구축함인 카니함(DDG 64)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쏴 예멘의 후티 레이더 시설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번 공습은 미국 주도로 홍해ㆍ바브알만다브 해협ㆍ아덴만 등에서 펼쳐지고 있는 번영 수호자 작전(Operation Prosperity Guardian)과 별개라고 강조하고 있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하자 지난해 11월 19일부터 홍해ㆍ아덴만 등에서 28회나 민간 상선을 대함탄도미사일ㆍ순항미사일ㆍ무인기로 공격했다.
미국ㆍ영국의 후티 공격엔 호주ㆍ캐나다ㆍ네덜란드ㆍ바레인이 지원을 제공했고, 한국ㆍ독일ㆍ덴마크ㆍ뉴질랜드는 공격 지지성명에 동참했다.
지난해 말부터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격렬하게 싸우더니, 이제 홍해에서 미국ㆍ영국이 후티 반군과 무력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후티 반군은 이미 2014년 예멘 내전을 시작했고, 예멘 내전은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연합국이 개입하면서 국제 전쟁이 됐다. 지금의 중동은 한마디로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아졌다.
그렇다면 후티 반군은 어떤 세력일까.
예멘에서 시작한 시아파 종교단체가 뿌리
후티는 예멘을 거점으로 삼은 시아파 이슬람 조직이다.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 남서쪽에 자리 잡은 나라다. 예멘은 석유가 나지 않는 빈국이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지중해~인도양을 연결하는 홍해를 틀어막을 수 있는 자리가 예멘이다. 영국은 남예멘을 보호령으로 삼았고, 북예멘은 별개의 독립 왕국이었다.
북예멘은 1962년 군사 쿠데타로 공화국이 됐다. 남예멘은 1967년 독립한 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해 친소련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1990년 5월 22일 남북 예멘은 통일에 합의했다. 통일 후에도 남북 갈등이 심해지고, 경제난을 겪었다. 1994년 5월 21일 남예멘이 독립을 선포했지만, 통일 예멘이 이를 진압했다.
후티는 이 같은 예멘의 격동기 중 싹을 틔웠다. 1992년 시아파의 한 분파인 자이디 시아의 종교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젊은 신앙인(Muntada al-Shabab al-Mu’min)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모하메드 알후티와 후세인 알후티 형제가 이 조직을 주도했다.
젊은 신앙인은 여름학교를 운영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면서 자이드 세력은 반미와 반이스라엘 성향이 강해졌다. 2004년 통일 예멘은 자이디 시아 세력을 탄압했고, 2010년까지 양측의 무력분쟁이 이어졌다. 형 모하메드는 통일 예멘에 살해됐고, 동생 후세인이 자이디 시아 세력을 이끌었다. 후티는 후세인 알후티에서 비롯한다.
통일 예멘의 독재자 살레가 아랍의 봄이 한창이던 2012년 2월 물러나면서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후티는 점점 더 강해졌고, 2014년 7월 봉기해 2015년 1월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통일 예멘은 옛 남예멘으로 옮겨 저항을 계속하면서 예멘 내전이 일어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UAE)ㆍ바레인ㆍ쿠웨이트ㆍ카타르 등을 이끌고 2015년 3월 26일 후티의 수도인 사나를 공습하면서 예멘 내전에 개입했다. 통일 예멘과 아랍 연합국은 수니파며, 시아파 후티는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예멘 내전은 국제전이자 종교 전쟁의 성격을 갖고 있다.
후티 반군은 아동을 병력으로 징집하고, 민간인을 방패로 삼으며, 국제 원조물자를 빼돌리고, 민간인을 학살한 전력이 있다.
이란과 북한의 지원으로 장거리 무기로 무장
후티 반군이라고 불러 기껏해야 AK-47과 RPG-7으로 무장한 세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정규군이다. 후티가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 했기 때문에 ‘반군’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을 뿐이다.
후티 반군은 통일 예멘의 무기고를 털고 통일 예멘의 정규군을 흡수해 육ㆍ해ㆍ공군 조직을 갖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따르면 2010년 현재 후티 반군과 추종자는 10만~12만명 수준이다. 후티는 예멘 영토의 30%, 인구(3300만 명)의 65%를 장악한 뒤 화폐를 발행하고 세금을 걷으면서 군사력을 강화했다.
후티 반군의 미사일과 무인기 전력은 상당 수준이다. 수니파 아랍 연합국의 정유시설 등 핵심 목표를 장거리에서 타격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15년 9월 4일 후티 반군은 예멘 마리브 지역의 사우디ㆍUAEㆍ바레인군 주둔지에 러시아제 OTR-21 토치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다. 이 공격으로 UAE군 52명, 사우디군 10명, 바레인군 5명이 전사했다. 2019년 9월 14일 후티 반군은 사우디 동부 아브카익의 정유 공장을 드론으로 타격해 사우디의 하루 정유 생산량을 절반으로 떨어뜨렸다. 2022년 1월 17일 후티 반군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날아오자 UAE가 긴급히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로 요격했다.
후티 반군이 사우디 등 중동의 강국에 맞서 10년째 싸우면서 때때로 장거리 타격을 감행하는 데 이어 미국에 도발을 거는 배경엔 이란과 북한이 있다.
이란은 후티 반군의 든든한 뒷배다. 이란은 2015년부터 후티 반군에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지원했다.
2019년 11월 25일 미 해군의 포리스트 셔먼함(DDG 98)이 아라비아해에서 한 선박을 검문했는데, 여기서 중국제 C-802 지대함 순항미사일 등 다양한 무기가 발견됐다. 이란이 예멘으로 비밀리 무기를 전달하려다 적발된 것이다.
후티 반군은 열병식에서 탄도미사일ㆍ순항미사일ㆍ무인기 전력을 자랑했다. 특히 이란의 기술로 만들어진 아세프(Asef)와 탄킬(Tankil)은 대함탄도미사일(ASBM)으로 보인다. ASBM은 종말 단계에서 함선과 같은 해상의 이동 목표물을 찾아낸 뒤 이를 추적해 타격하는 탄도미사일이다. 중국이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등 해상 전력을 자신의 세력권으로부터 차단하는 데 핵심 무기가 ASBM이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12월 3일 바하마 선적의 유니티 익스플로러호를 ASBM으로 공격했다. 지난해 12월 30일 미 해군의 그레이블리함(DDG 107)이 후티 반군의 ASBM 2발을 격추했다.
북한도 후티의 후원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8년 비밀 보고서에서 후티 반군의 지도자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북한 측과 만나 “기술 이전 사안과 다른 상호 이익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적시했다.
미 해병대와 국방정보국(DIA)에서 정보분석관을 지낸 브루스 벡톨 미국 텍사스주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후티 반군이 이란 지원을 받아 북한산 스커드-ER 미사일을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커드-ER 미사일은 북한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스커드의 사거리를 1000㎞ 이상으로 늘린 미사일이다.
전 세계 물류망을 인질로 삼으려는 후티
후티 반군은 ‘미사일 전쟁’에 집중하다 2023년 11월부터 ‘컨테이너 전쟁(Container War)’에 돌입했다. 홍해~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는 컨테이너 화물선을 노려 물류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려는 의도에서다. 이미 주요 해운 기업들이 스에즈 운하 대신 희망봉으로 해로를 바꿨고, 이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늘면서 운임이 뛰고 있다.
마치 이란ㆍ이라크 전쟁 중이던 1984~88년 유조선 전쟁(Tanker War)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이란ㆍ이라크는 주로 아라비아 해의 유조선을 피습해 상대의 경제를 압박해 유리하게 전쟁을 끝내려 했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홍해에서의 컨테이너 전쟁은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면서 국제사회를 몰아붙여 사우디를 예멘에서 내쫓고, 자신들을 예멘의 공식 정부로 인정하려는 목적이 숨어있다.
후티 반군은 해상의 목표물을 탐지하고 추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후티 반군의 컨테이너 전쟁이 아직 큰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이란이 후티 반군에게 정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란은 11일 오만 만(Gulf of Oman)에서 미국 유조선을 나포했다. 자칫 전쟁의 불똥이 이란에도 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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