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애용하던 사랑헤어, 하마터면 문 닫을 뻔했습니다

남희한 2024. 1. 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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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지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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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 기자]

'입금 50000 사랑헤어'

계좌에 돈이 입금됐다는 메시지를 받고 아내의 얼굴에 예쁜 균열이 생겼다. 입금액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던 아내의 입에서 잠시 후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ㅋㅋㅋ 이거 중의법이야? 사랑해여, 사랑헤어?"

입금자명을 뒤늦게 본 아내가 참신하다며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역시 마음보단 물질이 먼저다. 아무튼, 돈이 꽂히니 아내가 꽃폈다.
  
 아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 Pixabay
 
아내의 헤어 살롱

아내는 두 달에 한 번 집에서 헤어살롱을 운영한다. 미용실을 다니지 않는 나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랑헤어는 60일 휴무에 1일 근무다. 고객의 요청이 있을 때만 열기에 아주 여유로운 영업을 해가고 있다.

사랑헤어가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두 달 전부터다. 그전까지 이 헤어살롱은 돈을 받지 않았다. 고객이 돈 줄 생각도 못했고 주인장도 딱히 돈 달라는 얘기가 없었기에. 경제공동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수고와 배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머리카락은 고객이 직접 깎고, 잘 보이지 않아 깔끔히 정리되지 않는 옆머리와 뒷머리만 다듬는 정도이기에 돈을 받기도 민망했을 것이다. 떨어진 머리카락 청소와 샴푸 역시 고객이 직접하다보니 고객도 돈을 줄 이유를 찾지 못했다.

15년째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며 의아해하지만 365일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며 길이만 조금씩 조절하면 되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나로선 미용실 가는 것이 더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

언제든 가위를 들 수 있는 편의성과 돈이 아까워 최대한 짧게 자르지 않아도 되는 여유. 일정하게 유지되는 스타일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 사랑헤어 덕에 돈과 시간과 고민을 모두 아끼고 있다.

게다가 가끔 머리카락이 제법 길면 아내의 수고로 파마까지 시술받곤 하기에 정말 이마만한 미용실이 없었다. 그리고 두 달 전 파마를 부탁했던 그날, 걱정과 후회, 원망과 다독임이 난립했던 그날, 사랑헤어에 첫 매출이 기록됐다.

괜찮지 않음을 괜찮게
    
 긴 세월 장비가 갖춰졌고 그녀의 실력도 향상됐다.
ⓒ Pixabay
   
그날도 아내는 수고롭게도 내 머리에 로뜨를 감아주었다. 파마 초짜들이 의견을 나누며 이 방향으로 이렇게, 그건 저쪽으로, 파마약이 덜 베었다느니 고무줄이 느슨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파마를 시술했다.

순조로웠다. 아내는 손이 야무졌고 내 머리카락은 그 야무진 손과 독한 파마 약을 견딜 만큼 굳건하지 않았다. 자꾸만 눈가로 흘러내리는 파마약과 튕겨나가는 고무줄. 시련은 있지만 포기는 없었다. 가끔 얼굴에 써지고 마는 고통스런 표정 또한 수많은 의견의 일부일 뿐, 우리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중화제까지 뿌리고 파마를 마무리한 후 머리를 감았다.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리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머리카락을 띄우는 파마를 했는데 머리카락이 너무 차분했다. 왠지 기분까지 가라앉는 느낌. 머리카락을 다 말리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파마가 망했다.

그저 파마가 잘 되지 않은 것이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도저히 머리모양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땜통. 내 머리카락에 묻혀 잘 숨어있던 땜통이 문제였다. 태풍의 눈과 같은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낸 땜통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하필 두 개의 로뜨가 땜통을 기준으로 머리카락을 기막히게 정확히 위아래로 나눠버렸다. 특히 아래 쪽 로뜨의 역할이 지대했는데 파마 중에 살짝 내려감아 달라는 나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였다.

수습을 위해 드라이를 지속했다. 뜨거운 열기로 쳐진 머리카락을 세워도 보고 올라간 머리카락을 눕혀도 보았지만 태풍의 눈은 건재했다. 아무래도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긴 힘들어 보였다.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일 어떻게 하지? 월차를 써야 하나? 매직으로 칠할까? 그와 동시에 앞 다투어 원망이 밀려 나왔다. 로뜨를 이렇게 감아놓으면 어떡해? 이 큰 땜통이 안 보이나? 아우, 그때 입을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달궈지는 머리와 함께 머릿속도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과 밖이 데워지니 입술은 바짝 말라갔고 얼굴의 생기도 메말라갔다. 덕분에 속도 조금씩 타들어 가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아내가 욕실 문을 열었다.

"또 유튜브 보.... 어? 머리가 왜 그래?"

한 마디 하려던 아내는, 죽상이 된 내 얼굴과 도드라진 땜통을 보고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

로뜨의 감은 위치와 각도가 문제였던 것 같다는 나의 분석을 들은 아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잠시 후 자조 섞인 한탄과 후회의 말이 흘러나왔다. 약을 잘못 샀다. 그때 더 올려 감을 걸, 오빠 말 듣지 말걸...

갑자기 빙구가 된 남편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자책하는 아내에게 동의하려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래선 안 되었다. 사랑헤어는 반드시 번창해야했다.
  
 무엇을 선택할 지는 개인의 몫
ⓒ Pixabay
 
아내는 분명 "이래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해."라며 속상함에 날 미용실로 내몰지도 몰랐다. 그러면 끝이다. 이 자리에서 나까지 원망어린 말을 꺼낸다면, 상처받은 아내는 이 실패를 두고두고 얘기하며 다시는 내 머리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내 속에 있던 원망 어린 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괘...괜찮아. 이렇게 하면..."

이런, 애써 넘긴 머리가 추노 같다. 아내의 표정이 더 노랗게 변한다.

"아니, 괜찮아! 그러니까, 이 방향으로 이렇게..."

제길. 땜통이 빛난다. 흙빛이 되어가는 아내가 다시 입을 달싹거리려고 한다. 자... 잠깐. 이렇게 하면... 그 순간, 기적과도 같이 땜통이 덮이며 그나마 볼만한 헤어스타일이 만들어졌다.

"돼... 됐다. 이것도 괜찮네~ 괜찮아"
"...그러네. 아.... 다행이다."

평소에는 손이 많이 가서 잘 타지 않던 방향으로 가르마를 탄 것이 주효했다. 머리 손질하는데 시간을 줄이고자 한 파마로 인해 세팅 시간은 늘겠지만, 다행히 아내의 걱정은 줄일 수 있었다.

수습된 머리를 보고 안도하던 아내가 진이 빠진 듯 "다음엔 미용실 가자!"고 말하며 돌아서는 것을 보곤 재빨리 송금을 완료했다. 아내에게 부담감을 지웠던 것을 사과하고 터져 나오려는 원망을 지워낸 내 마음을 담아서 "사랑해요"라고 썼다가, 헤어살롱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담아 "사랑헤어"를 입력했다.

다행히 돈과 멘트는 성공적이었고 지금까지 아내의 헤어살롱은 성업 중이다. 무엇보다 태풍의 눈을 목도하고도 당황하여 날뛰지 않고 차분히 대처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아마 그때 원망의 말을 한 마디라도 뱉었다면, 서로 얼굴을 붉히고 헤어살롱은 문을 닫았을 게 분명하다.

"괜찮다"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기어지 내뱉은 괜찮다는 말. 그 말이 정말 상황을 괜찮게 생각하게 만들었을 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괜찮아질 방법과 괜찮은 이유를 찾고, 괜찮다며 상대를 위로할 줄 알았던 그때의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모든 문제에 "괜찮아"하고 시작해보고자 한다. 스트레스와 원망이 치솟는 상황에서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언제나 그런 사람일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종종 실패하겠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안 괜찮은 사람'인 것 보다는 낫지 싶다. "괜찮다" 이거 진짜 괜찮은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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