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괴물, 누군가에겐 사람... 폐부 찌른 이 영화

김성호 2024. 1. 13. 14: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633] <괴물>

[김성호 기자]

인간은 오만하다. 오만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고 해도 좋다. 제 주변과 제 삶과 제 가족과 제 몸뚱아리 하나 알지 못하면서도 그 너머 모든 것을 갖겠다고 발버둥치는 게 인간이다. 우주는커녕 저 하나에도 닿지 않는 이해를 가지고서 세상 모든 것을 재단하고 판단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해가 싹트지만 제가 틀릴 수 있으리란 걸 인간은 얼마나 쉽게 무시하고 사는가.

보는 각도에 따라 하나의 사실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창작자들은 수없이 표현해왔다. 그중 제일가는 작품이 아마도 <라쇼몽>일 것이다. 일본의 걸출한 문학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동명 원작을, 역시 일본이 낳은 역대 최고의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영화로 만들었다. 일본 헤이안시대를 배경으로, 사무라이와 그 아내, 우연히 그들과 마주한 산적 세 사람이 얽힌 사건이 증언하는 이의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화하는 모습을 다루었다.

작품은 우리가 보았다 여기는 것과 실제가, 우리가 들었다 여기는 것과 진실이, 우리가 안다 여기는 것과 진상이 다를 수 있음을 일깨운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또 때로는 우리의 부족함으로 진실은 자주 감춰지고 왜곡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며, 알더라도 무시하고 지나가고는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오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 <괴물> 포스터.
ⓒ 미디어캐슬
 
인간의 오만을 일깨운다

<괴물>은 인간의 오만을 일깨운다. 제 나라 거장들, 즉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검증해낸 문법을 그대로 차용하여 이 시대 일본영화의 기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오늘의 관객 앞에 새로운 이야기로 써나간다. 이야기는 일본의 어느 마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바람난 남편이 사고로 죽은 뒤 사오리(안도 사쿠라 분)는 홀로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 분)를 키워왔다. 세탁소에서 쉴 새 없이 일하며 오로지 아들 하나만 보고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수년 째, 귀엽고 씩씩하기만 하던 미나토가 얼마 전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집에 들어오지 않나 싸준 도시락 물병에 흙이 들어가 있을 때도 있다. 얼굴 곳곳에 작은 상처가 나 있기도 하고, 혼자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하는 것이다. 급기야는 달리던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기까지 하니, 사오리의 마음이 요동치는 것도 당연지사다. 제 전부인 아들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그녀는 그 길로 학교를 찾는 것이다.
 
 영화 <괴물> 스틸컷
ⓒ 미디어캐슬
 
괴물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찾은 학교는 사오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교장부터 다른 교사들까지 나서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고개 숙여 사죄를 하지만 진상을 조사하고 의심을 풀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학부모를 달래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뿐인 것이다.

아들이 변한 이유를 찾고자 동분서주한 사오리다. 그런 그녀에게도 단서는 있다. 누군가 아들에게 아들의 뇌가 돼지의 뇌와 바뀌었다고 폭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또 학교의 누군가가 아들을 지속적으로 때리고 괴롭혔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들의 몇 마디 말과 그간의 행동으로 유추해낸 것이다. 학급 담임인 호리 선생(나가야마 에이타 분)이 아들을 학대한 장본인으로 지목됐으나 그는 사오리 앞에서 진정성 없는 태도로 일관할 뿐이다. 심지어 "싱글맘들은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으니 사오리는 더욱 분개할 밖에 없다.

관객이 사오리의 억울함에 잔뜩 기울었을 즈음, 영화는 호리 선생의 사정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런데 웬걸, 호리 선생은 사오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아닌가. 면전에 대고 찾아온 부모를 농락하고, 다른 이가 안 보는 곳에서 교묘히 아이를 학대하는 그런 인간이 전혀 아니라는 뜻이겠다.
 
 영화 <괴물> 스틸 컷.
ⓒ 미디어캐슬
 
각자의 시선마다 달리 보이는 사건

그는 다소 거친 눈빛과 말투로 오해를 사기는 하지만 품성이 나쁘진 않은 교사다. 아이들을 돌보고 걱정하는 마음은 다른 교사들에 뒤지지 않고, 성실하게 제 역할을 수행할 줄도 않다. 그가 걸스바가 있는 거리를 세련된 애인과 함께 걷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그가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 다닌다며 소문을 낸다. 그 소문을 비단 아이들만 믿는 것도 아니다. 동료 교사, 심지어는 사오리의 귀에까지 들어가 호리 선생에 대한 선입견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호리가 나서 제 이미지를 바로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성실히 학급 일을 돌보려고 하지만, 일은 제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호리가 맡고 있는 교실에는 이따금 소동이 있다. 그때마다 호리의 눈에 띄는 건 미나토다. 누가 보아도 착하고 귀여운 아이 요리(히이라기 히나타 분)를 미나토가 자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호리가 나서 둘을 화해시키기도 했지만, 다시금 요리가 괴롭힘을 당하는 현장에서 호리를 보는 일이 반복되곤 한다.

이야기는 학교폭력을 문제 삼는 사오리 앞에서 결백한 호리가 억울하게 사과를 하게 되는 장면까지 나아간다. 그는 사과할 만한 일이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교장과 동료 교사들이 나서 학교를 위해 희생하라고 압박하는 데야 방법이 없다. 결국 그는 제가 하지 않은 잘못을 고백하고,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까지 되며 폭력교사로 매도되기에 이른다.

이쯤이면 관객은 두 가지 억울함에 공감하게 된다. 하나는 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했으나 누구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는 사오리의 사연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하지도 않은 학교폭력이 제 책임이라고 고백하고 억울한 대가를 치르는 호리의 사연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감춰졌던 진실을 관객 앞에 드러낸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진실을 확인하려 든다. 사오리의 아들을 괴롭힌 이가 누구인지를, 호리를 억울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 한다. 도대체 얼마나 간악한 자이길래, 어떤 악한이기에 열심히 사는 싱글맘과 청년 교사에게 이같은 고난을 내리는가를 확인하고 응징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앞에 진실이 드러날 때 관객은 영화 속 사오리와 호리가 그렇듯 쏟아지는 빗속에서 저의 무능과 오만을 실감하게 된다.
 
▲ 괴물 스틸컷
ⓒ 미디어캐슬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

영화가 드러낸 뒷이야기는 이렇다. 호리의 학급엔 교사의 시선이 닿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나서 요리를 괴롭혔고 그의 유일한 친구인 미나토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가 괴롭힘을 당할수록 괴로워지는 것은 미나토가 갈수록 요리를 좋아하게 됐던 탓이다. 친구, 어쩌면 그 이상으로 말이다.

사오리가 의심했던 많은 일들은 미나토가 요리와 저들만의 아지트에서 놀며 생겨난 것이었다. 사오리를 충격에 빠뜨린 미나토가 차에서 뛰어내린 일은 제가 바라는 건 미나토가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것뿐이란 저의 말이 그에겐 감당키 어려운 족쇄가 되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찾았던 문제가 실은 저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인간은 감당하긴 커녕 알아채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학급을 담임하면서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교사와, 어느덧 진실 따위는 전혀 중요치 않다 여기며 아이들이 아닌 학교 그 자체를 붙들고 사는 교장 같은 이들의 모습 또한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사오리와 호리, 교장선생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영화가 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실은 진흙 속에 파묻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오해는 쌓이는 먼지처럼 자연스레 진실을 파묻고는 한다. 오만은 인간의 본성인양 부족한 이해로써 세상 모두를 재단한다. 그 가운데 사라지는 귀한 것이 오로지 영화 속 요리와 미나토의 마음만은 아닐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