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라줬지만 공주와 장군은 '사랑을 했다'

양형석 2024. 1. 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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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문소리-설경구의 특별한 멜로영화 <오아시스>

[양형석 기자]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명계남 배우는 지난 2019년 KBS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부터 현재의 활동명인 '동방우'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1970년대부터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동방우 배우는 1993년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출연하며 영화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한국영화는 명계남이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로 엄청난 '다작배우'였다.

동방우 배우는 정치 활동에 깊이 관여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배우 문성근과 노사모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동방우 배우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도 열린 우리당의 국민참여연대 위원으로 활동했고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에는 봉화마을로 이사해 살고 있다. 동방우 배우는 이처럼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정계진출에는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동방우 배우의 활동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제작자로서의 행보다. 1996년 이창동 감독과 함께 영화사 이스트필름을 공동 설립한 동방우 배우는 1997년 <초록물고기>를 시작으로 2000년 <박하사탕>을 차례로 선보이며 충무로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는 <박하사탕>의 제작진과 배우들을 다시 모아 소외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잔잔한 감동의 멜로영화 <오아시스>를 선보였다.
 
 2002년8월에 개봉한 <오아시스>는 서울에서만 53만 관객을 동원했다.
ⓒ (주)이스트필름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진 장애인 영화들

사실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보면 장애인들은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존재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애인들도 그들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이고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주체적인 인생을 사는 경우도 많다. 영화에서도 장애인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중 여러 작품들이 비장애인들에게도 따뜻한 감동과 강한 메시지를 주곤 했다.

2005년 개봉한 조승우와 김미숙 주연의 영화 <말아톤>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마라토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실존 인물인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수영선수 배형진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말아톤>은 조승우의 순수한 연기로 개봉 당시 514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년 후 비슷한 소재의 영화 <맨발의 기봉이>가 제작·개봉했을 정도.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이 2011년에 선보였던 <도가니>는 공지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실제 있었던 장애인 학교의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도가니>는 개봉 후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내며 장애아동 문제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됐다. 특히 영화 속 자애학원의 교장 이강석과 행정실장 이강복을 동시에 연기했던 성우 겸 배우 장광은 영화 개봉 후 한 동안 관객들의 엄청난 미움을 사기도 했다.

같은 해 개봉했던 김하늘과 유승호 주연의 <블라인드>는 촉망 받는 경찰대생에서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주인공이 나머지 감각을 통해 여대생 납치사건과 뺑소니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스릴러 영화다. <블라인드>는 기발하진 않지만 무난하게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김하늘은 <블라인드>를 통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로맨스/코미디 전문배우 이미지를 떨치는데 성공했다.

2019년에 개봉한 <나의 특별한 형제>는 전신마비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 형 세하(신하균 분)와 운동신경은 뛰어나지만 보호자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는 지적장애인 동생 동구(이광수 분)의 이야기를 다룬 휴먼 코미디 영화다. 역시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나의 특별한 형제>는 배우들의 호연 속에 장애를 심도 있고 진지하게 다뤘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서도 147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문소리라는 걸출한 배우의 등장 알린 영화
 
 문소리(오른쪽)와 설경구는 발군의 연기를 통해 공주와 종두의 사랑이야기를 잘 표현했다.
ⓒ (주)이스트필름
 
1997년 <초록물고기>를 선보인 이창동 감독은 첫 장편영화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박하사탕>으로 대종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을 받으며 그 명성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제 국내가 좁았던 이창동 감독은 2002년 세 번째 장편영화 <오아시스>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단 세 작품 만에 세계 3대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오아시스>의 진짜 주인공은 이창동 감독이 아닌 공주 역의 문소리였다. <오아시스>에서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공주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문소리는 국내외 언론과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고 베니스영화제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그렇게 베니스 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문소리는 지난 2016년 대한민국 배우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뇌성마비장애를 앓고 있는 공주는 영화에서 몇 차례에 걸쳐 비장애인처럼 행동한다. 지하철에서 빈 생수병으로 종두(설경구 분)에게 장난을 칠 때와 카센터에서 사소한 일을 가지고 종두와 다툴 때, 그리고 막차가 지나간 지하철 역에서 종두에게 사랑의 세레나데(안치환의 <내가 만일>)를 불러줄 때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는 모두 현실이 아닌 공주의 상상 장면으로 관객들은 이 장면을 뜬금없게 보다가 그 의미를 알고 이내 숙연해졌다.

문소리의 엄청난 열연에 상대적으로 돋보이지 못했지만 홍종두 역을 맡았던 설경구의 연기도 대단히 눈부셨다. 시애틀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오아시스>로 수상한 5개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이 설경구의 열연을 증명한다. 특히 작품마다 몸무게를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이는 '고무줄 몸무게'로 유명한 설경구는 <공공의 적> 강철중을 연기하며 90kg가까이 몸무게를 불렸다가 <오아시스> 홍종두를 위해 60kg대로 감량했다.

다만 공주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종두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설정에 대해서는 관객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공주를 연기했던 문소리 역시 이 설정을 굉장히 싫어해 이창동 감독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설정은 철저하게 타자화된 삶을 사는 중증장애인들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이창동 감독이 의도한 불편함이었다. 물론 이창동 감독의 의도로 만들어진 <오아시스>의 설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지는 관객들 각자의 몫이다.

'천만 감독' 류승완이 설경구 동생이던 시절
 
 '천만 감독' 류승완(오른쪽)은 <오아시스>에서 설경구의 동생 역으로 출연했다.
ⓒ (주)이스트필름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작년에만 <청춘월담>,<레이스>,<킹더랜드>,<무빙>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 손병호는 <오아시스>에서 공주의 오빠 한상식을 연기했다. 한상식은 장애인들을 위한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공주는 허름한 집에 버려뒀다가 조사를 나올 때만 공주를 아파트에 데려오는 비정한 오빠다. 한상식은 종두가 공주의 강간범으로 오해 받아 경찰서에 잡혀 왔을 때도 종두의 형제들에게 노골적으로 합의금을 요구했다.

대학 시절 극단적인 운동권 학생이기도 했던 배우 안내상은 <오아시스>에서 홍종두의 형 홍종일 역을 맡았다. 홍종일은 집안의 문제아인 둘째 동생 홍종두에게 체벌을 할 정도로 매우 가부장적인 성격의 인물로 전과 3범에 서른을 앞에 두고 있는 홍종두도 형에게는 전혀 대들지 못하고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홍종일은 영화 후반 공주의 엄마를 죽인 사고를 낸 진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룡영화상 감독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류승완 감독도 <오아시스>에서 '배우'로 출연했다. 류승완 감독은 <오아시스>에서 홍종두의 동생 홍종세 역을 맡았다. 무전취식한 홍종두를 데려가기 위해 경찰서에서 첫 등장한 홍종세는 "제발 부탁인데 내 인생 방해 좀 하지 말아줘"라며 형을 다그친다. 그래도 영화 후반 홍종두가 경찰서에서 공주의 오빠에게 구타를 당했을 때는 대신 화를 내며 형을 감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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