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Z여자들] 10년 쓴 인스타 앱 삭제하니 찾아온 놀라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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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 2024'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기획입니다. 2024년 자신의 새해의 목표, 하고 싶은 도전과 소망 등을 네 글자로 만들어 다른 독자들과 나눕니다. <편집자말>
[이수현 기자]
2024년 새해가 되자마자 한 일이 있다. 바로 휴대폰의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하는 것. 2023년 12월 31일 밤 12시가 되기 전에 비장하게 마지막 포스팅을 남겼다.
"잃어버린 집중력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려 보려고 합니다. 대면으로 더 많이 만나요!"
▲ 새해 전야에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했다 |
ⓒ 이수현 |
자극에 둘러싸인 우리들
작년 하반기부터 나를 사로잡은 키워드는 '도파민 중독' 이었다. 온 국민을 자극적인 밈으로 뒤흔들었던 '나는 솔로 16기'의 여파가 너무 커서 그랬던 것일까.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읽게 된 <도파민네이션>을 시작으로, <이토록 멋진 휴식>, <도둑맞은 집중력>, <인스타 브레인>,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등 도파민 중독에 관련된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며 스스로를 조금씩 되돌아보게 되었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인 에나 램키 교수에 의하면, 뇌는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하여 이는 곧 저울의 추처럼 작용한다고 한다. 주말 내내 누워서 SNS를 보고 나면 왠지 모르게 드는 우울감, 정크푸드를 폭식한 다음 밀려드는 죄책감,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다음날 맞이하는 뼈아픈 숙취처럼 모두 한 번쯤은 뇌의 저울의 양 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동일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쾌락 편향이 약해지고 짧아지며 대신 고통 반응은 길어진다. 그래서 우리의 무뎌진 뇌는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된다.
나는 뇌가 심심하게 있을 틈,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할 때도 유튜브 영상을 틀어두고 준비했고, 엘리베이터나 신호등을 기다리는 찰나의 시간에도 인스타그램을 습관적으로 확인했다. 독서와 글쓰기가 좋은 취미인 것을 알고 있지만 뇌는 점점 더 적은 노력이 드는 손쉬운 자극만을 갈구하려 하는 것 같았다. 한창 '도파민 중독'을 고민하던 나는, 이러다 이 고통의 추가 점점 덩치를 키워 끝도 없이 내 발목을 끌어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불길해졌다.
퇴근길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쇼츠를 넘기다 문득 목이 아파 고개를 들어본다. 주변 사람 모두 동일하게 엄지를 휙휙 위로 올리고 있다. 눈빛은 어딘가 모르게 공허해 보인다.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을 것일까.
도파민 리모델링 :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기
그렇게 몇 권의 책을 읽은 이후 조금씩 습관적인 자극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것들을 실천해 보았다. 처음부터 인스타를 삭제하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 인스타그램 시간 제한 설정 하는 법 |
ⓒ 인스타그램 |
하지만 여전히 멋진 곳에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 '이거 인스타 올려야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남편에게 사진을 여러 장 찍어달라고 하고, 그중 잘 나온 것을 엄선해 업로드를 하는 과정은 시간이 꽤 걸린다. 그 사이에 대화는 조금씩 줄어든다. 그 덕에 점점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없는 것만 같았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작가는 자신의 대자(godson)가 매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걱정되어 같이 여행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박물관에서 나눠준 안내용 태블릿PC만 들여다보고, 진짜 눈앞에 있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집중력 문제를 유발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전 세계의 관련 연구자들을 인터뷰하며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여러 책들이 집중력을 뺏고 있는 시스템 자체를 비판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것에 동의한다. 우선 올해는 개인이 해볼 수 있는 노력부터라도 먼저 시작해 보고 싶었고, 그 시작이 '인스타그램 삭제하기'였다.
인스타 앱 삭제 뒤 나에게 생긴 변화
어플을 삭제한 지 딱 일주일이 되었다. 고백하자면 마지막 포스팅에 온 DM들이 궁금해서 PC로 한 번 접속해 보았다. 적절한 수의 좋아요가 눌러져 있고 생각보다 DM은 많이 오지 않았다. 화면 맨 상단에 '인친'들이 올려둔 인스타 스토리의 핑크색 링들이 읽기를 기다려주기라도 하는 듯 줄 서서 대기하고 있다.
궁금해서 눌러보려는 그 순간, '이걸 누르지 않고 끄는 것도 나에게 새로운 자극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로그아웃을 하고 창을 꺼버리는데 머릿속 한구석이 약간 짜릿해진다. 절제할 줄 아는 나 자신의 모습에 방금 도파민이 조금 상승한 거 같은데...? 역시 고통과 쾌락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구나... 매우 흥미로웠다.
▲ 어플을 삭제한 지 며칠이 지났다. 나는 피아노, 수영, 글쓰기 등 시간을 더 주도적으로 쓴다. |
ⓒ 픽사베이 |
아직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조금 더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출근 준비를 하며 정적속에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게 두고, 지하철에서는 다시 짧은 독서를 하거나 뉴스 헤드라인 기사들을 훑는다. 물론 아직은 엄지손가락이 자동으로 인스타가 있었던 자리를 클릭하거나 괜히 허공을 맴돌다 애꿎은 사진첩을 들락날락 하기도 한다.
원래 '집콕'한 주말엔 다른 사람들의 피드를 보며 '아 어디라도 갔어야 하나' 부러워하곤 했지만, 이젠 비교 대상 없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는 밀린 책을 읽고, 글쓰기 모임의 글을 쓰다 동네 수영장으로 자유수영을 다녀왔다. 저녁에는 남편과 짧은 산책 후 피아노 연습을 했고. 인증샷 없는 주말은 반찬없이 먹는 맨밥같이 담백하기만 했는데, 곰곰이 음미하니 단맛이 느껴졌다.
아직까지는 다들 '나 빼고 뭔 얘기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인스타그램의 빈자리는 그리 크지 않다.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계속 집어먹게 되는 것처럼, 손쉽게 접속할 수 있으니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이제 실시간으로 친구들의 소식과 새로운 이슈들을 볼 순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따로 연락하면 된다. 직접 눈을 보고 대면으로 더 많이 만나고 대화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니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잠재워지는 것 같다. 친구들로부터는 대면으로 만나자는 응원의 연락들이 오고, 아예 나와 함께 인스타그램 삭제에 동참한 동지도 생겼다. 마음이 든든하다.
"무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전전긍긍하지 말라. 오히려 얼마간의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확보하고 기쁜 마음으로 용감하게 자기 길을 가라."
2024년은 뇌가 심심해할 여유 공간을 주고, 거기서부터 또 어떤 길들이 생겨나는지 마음껏 실험해 보고자 한다. 도파민 권하는 사회, 부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 감별할 수 있는 시력이 조금이나마 길러지기를,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마음의 근력이 생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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