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파악·국회청원…변화의 씨앗 뿌려졌다 [자식담보대출⑬]
-고된 노동부터 개인회생·극단선택까지…끝없는 고통 이어져
-부모 자녀간 경제적 학대, 이제는 공론장으로 올라와야
공양미 300석. 심 봉사가 덜컥 시주를 약속했을 때, 딸 심청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당수에 뛰어들기 위해 뱃머리에 선 심청.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스무살인데 아빠가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달래요”, “제가 정말 가족을 산산조각 낸 걸까요?”, “돈 빌려가는 엄마 때문에 결혼은 꿈도 못 꾸겠어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부모가…. 정말 안됐다.’ 거기까지였다. 청년들의 SOS에 답을 주지 못 했다. 해결책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꾸 눈에 밟혔다.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긴 절박한 심정이 느껴졌다. 쿠키뉴스 [자식담보대출] 기사는 여기서 시작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개인회생법원,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공개한 판례 등 부모의 금전 요구와 관련된 사례를 수집했다. 2300여개의 게시글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성별과 연령, 피해 금액, 횟수 등을 정리했다. 피해 금액은 적지 않았다. 부모가 빌려간 돈의 구체적 숫자를 밝힌 73명의 금액은 총 24억3781만원에 달했다.
자녀에게 부모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은 크다. 부모가 설령 그 역할을 다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피해 청년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많은 이가 인터뷰를 고사했다. 어렵사리 만난 청년들은 힘겹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대출, 카드론, 대부업체, 청약통장 해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모에게 돈을 건넸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청년에게 남은 것은 갚을 엄두가 나지 않는 빚과 곤두박질친 신용등급이었다. 결혼, 내집마련, 자녀계획은 남의 얘기가 됐다. 몸과 마음의 병도 얻었다.
안진우(30·가명)씨는 끊임없는 빚 독촉 전화에 세상을 떠날 결심을 했다. 이영진(34·여·가명)씨는 개인회생 절차를 밟아야 했다. 더는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머니는 연락을 끊었다. 신민준(31)씨는 방학 동안 빚을 갚으려 택배 상하차, 병원 임상시험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친구들이 유럽 여행서 올린 SNS를 보며 그는 무너졌다. 용기 내 친구에게 사정을 털어놓자 ‘가족인데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도록 둬야 할까. 해외는 달랐다. 샤론 브라이언 영국 가정폭력 국가지원센터(NCDV ·National Centre for Domestic Violence) 총책임자는 화상 인터뷰를 통해 “부모가 자녀에게 금전 혹은 빚을 지도록 요구하는 건 명백히 경제적 학대”라고 잘라 말했다. 영국, 미국 뉴욕주는 경제적 학대를 법에 명시했다. 영국과 뉴질랜드 등에서는 정부뿐 아니라 은행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도 ‘가정사’라는 이름에 가려져왔던 시간들이 있다. 부모 자녀 간 경제적 학대도 공론장으로 올라와야 할 때다. 변화는 인식 개선에서부터 시작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녀의 자기 재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변화의 씨앗도 뿌려졌다. 쿠키뉴스 취재로 사회연대은행에서는 상담 청년 중 부모 금전 요구로 도움 요청하는 이들의 숫자를 따로 집계하기 시작했다. 여성가족부는 현황파악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경제적 학대를 가정폭력법에 포함시키자는 국회 청원도 시작됐다.
쿠키뉴스 기획보도가 경제적 학대 논의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지금도 고민에 잠 못 이루는 청년에게 말하고 싶다. 막다른 골목처럼 보일지라도 방법은 있다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쿠키뉴스 20주년 특별기획 [자식담보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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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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