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못 걷는다' 했지만 지금 세계여행 중입니다

이안수 2024. 1. 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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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만난 여행자 코린의 철학... 인생에서 '충분하다'는 말의 의미

필자는 120일째 멕시코를 여행 중이다. 길 위에서 조우하는 사람을 인터뷰한다. 아래 여성은 지난 12월 멕시코 바흐칼리포르니아수르주의 로레토(Loreto)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4개월 넘게 멕시코 여행, 지금은 로레토를 여행 중이다. 오래 묵는 숙소에서 며칠간 한 여성이 아침이면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숙소를 나갔다가 오후면 더 밝은 표정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느날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며칠간 당신을 지켜봤다. 당신은 당신이 살고 있는 호수 대신 간혹 바다로 탈출하는 큰 물고기 같다. 오늘 당신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까?"

"(웃음) 사실 나는 스위스의 호수에서 일하는 선원이다. 나는 5개월 휴가를 얻었고 마침내 바다로 나왔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큰 물고기는 아닐지라도 당신과 얘기할 시간은 많다. 오전엔 스쿠버다이빙이 예약돼 있고, 밤 11시에 카보산루카스(Cabo San Lucas)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오후에 대화할 시간이 충분하다."

그렇게 아침 7시에 숙소를 나간 그녀는, 오후 3시에 숙소로 돌아왔다. 그녀와 마주 앉았다.
 
 로레토의 여행자숙소에서 만난 스위스에서 온 배낭여행자 스위스에서 온 코린(Corinne)
ⓒ 이안수
- 이름이 코린이라고 했나.
"그렇다. 나는 스위스에서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 온 코린(Corinne)이다."

- 직장 생활을 하면서 5개월 휴가가 어떻게 가능한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스위스에서는 연중 25일이 보편적인 휴가 기간이다. 나는 루체른 호수에서 운영되는 대중교통배에서 갑판업무를 맡은 선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일은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집중되는 여름에 일이 많다. 보통 매일 10~12시간씩의 근로로 12일 연속으로 일하고 하루를 쉰다. 이 근로시간 동안 쌓인 휴일들을 모아 휴가에 합쳐 만들어낸 휴가가 5개월이다."

진짜 '나의 일'을 찾아서 
 
 루체른 호수에서 운행되는 대중교통 배의 선원으로 일하고 있는 코린
ⓒ Corinne
 
- 대학에서 이 일과 관련된 전공을 공부했나?
"내 전공은 기업금융이다. 졸업 후 회사의 경영부서에서 일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이 내 적성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직업을 바꾸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직장을 그만두고 태국과 말레이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미 다양한 레벨의 공인다이빙자격증이 있었으므로 다이빙 강사로 일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왜 그만두었나?
"코로나(COVID-19)가 그곳에도 덮쳤다. 여행이 제한되고 사업장이 폐쇄되어 어쩔 수 없이 스위스로 되돌아왔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때 신문에서 선원구인공고를 보게 되었다. 머릿속에 불꽃이 일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싶었다."

- 선원은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나?
"무조건 회사를 찾아갔다. 일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업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져있었다. 배를 타면서 전문성을 기르고 1년이 지날 때마다 내 제복 어깨의 줄무늬가 하나씩 늘었고 이제는 선장이 될 수 있을 만큼 내 줄무늬가 늘었다."

- 당신은 비즈니스스쿨에서 공부했지만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 같다. 그 일은 당신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
"사이버보안회사에서 일할 때는 마케팅과 디자인 업무, 때로는 보도자료를 챙기는 일까지 만능이 되기 위해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회사는 번창했지만 나는 그 회사에 속해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업무였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현재 나는 갑판의 책임자가 되었다. 우리 배는 다양한 목적지가 있고 연계되는 환승지가 있다. 고객들은 목적지가 다른 각각의 티켓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 모든 것이 바르게 작동되고 승객은 실수 없이 승선과 하선을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티켓 관련 모든 회계도 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여전히 일은 많지만 나는 이 일이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주체적이고도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다."

내 꿈의 궁극은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보는 것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하고 사이버보안회사에서 일할 때 마케팅과 디자인 업무를 수행하다가 적성에 맞지않는 다는 것을 알고 선원으로 변신한 코린
ⓒ Corinne
 
- 당신이 더 꿈 꾸는 일이 있나?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꿈이 있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두 분이 16살에 만나 19살에 함께 세계여행을 떠났었다. 우리와도 종종 세계를 여행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이며 최고의 일이다. 내 꿈의 궁극은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보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를 발견해 그곳에서 정주하는 것이다. 많은 돈을 버는 데 시간을 들이는 대신, 내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게도 돈이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 관리 방법이 있나?
"사실 나는 일중독자이기 때문에 그 질문에 답할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일을 많이 하고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에 대한 과부하는 여행으로 풀어 균형을 회복한다. 1년 중 일이 많은 여름 180일은 일중독으로 살고 있지만, 겨울 180일은 스트레스를 풀면서 살고 있다. 물론 이 시간에도 월급을 받는다.

나는 시간이 허락되면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간다. 하이킹을 가서 숲에 머문다. 내게 집은 자연이다. 몇 시간을 벤치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 내 생각이 자유롭게 날아 어디로든지 가게 내버려 둔다. 이것이 내게 평화를 주는 것 같다."
 
 고요와 평화의 침묵만이 함께하는 스쿠버다이빙을 그녀는 '명상'으로 정의한다.
ⓒ Corinne
 
- 요즘은 행복에 과도하게 집착해 오히려 불행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작은 것들을 접하려고 노력한다. 부정적 걸 자꾸 접하는 것은 상사가 당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누군가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걸 듣는 것과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요소는 이런 부정 요소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 그 중 하나가 당신에게 여행 같다. 당신에게 여행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나?
"내게 여행은 '세계' 그 자체이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아주 느린 배낭여행을 좋아한다. 이것은 그 나라의 깊숙한 곳으로 다가가서 그 나라의 소중한 것들을 배우는 방법이다. 지난 몇 년간의 여행에서, 가진 것이 별로 없는데도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게 필요해보인다고 주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 여행에서 스위스로 돌아가면, 풍족하긴 하지만 어디에서나 심술궂은 표정을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예의를 모르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신경 쓴다.

그것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다. 'Nothing is enough(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다)'라는 증명이다. 여행에서 돌아가면 하루에 바나나 하나로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또한 'Nothing is enough(가진 것이 없어도 충분하다)'이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조심하는 부분이 이런 것이다. 그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많은 평안이 온다."
 
 여행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은 태도를 바꾸어서 가진 것이 없어도 충분하다, 는 생각을 갖게한다.
ⓒ Corinne
 
- 삶에서 당신을 가장 좌절하게 했던 일이 있었나?
"사실 나는 매일 작은 문제들에 봉착한다. 예컨대 지금 당장 내 신용카드가 작동하지 않는다. 은행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크게 스트레스는 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모든 것들의 가장 멋진 부분을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정말 큰 좌절은 17살 때 당한 사고였다. 병원에서는 다시는 내 다리로 걸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내 인생이 막 날개를 펼치려할 때 그 날개가 꺾여버린 셈이었다. 의사는 내게 장애인이 된 것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결국 나는 장애인이 되어 몸을 적응시키기 위해 단련을 시작했고 병원에서 목발을 짚고 훈련을 계속했다. 반년 뒤에는 병원을 나와서 훈련을 이어갔고 다시 수술을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단련되었다.

그 후 3번의 수술을 받았고 인공 조형물을 넣지 않고 다시 제 근육이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4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근육의 힘을 길렀다. 그들은 다시 걸을 수 없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해변을 뛸 수 있게 되었고 절대 하이킹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산에 올랐다. 마침내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의사조차 믿지 못하는 일이 내게 일어났다. 이제 웬만한 일은 나를 절망케 할 수도 없다."
 
 17살 때 사고로 그녀의 의사는 그녀가 평생동안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근육을 단련시켰고 다시 배낭을 멜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이제 웬만한 일쯤은 나를 절망케 할 수는 없다.“
ⓒ Corinne
그녀는 원래 "말할 때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만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들을 때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다"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경청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기꺼이 말하는 입장이 되어주었다. 그 말이 내게 그랬듯 당신에게도 울림을 줬기를.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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