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선균 비극에 봉준호 감독이 나선 까닭
[김종성 기자]
시작하기에 앞서 분명히 하자. '배우' 이선균에 대한 아쉬움이나 애틋함과는 별개로 '사람' 이선균에 대한 호의를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실체적 인물에 대해 실제로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의 이름과 함께 자꾸만 언급되는 불투명한 단어들, 이를테면 '룸살롱', '유흥업소 실장', '불륜' 등이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 '사람' 이선균을 옹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위의 단어들은 '사람' 이선균을 판단하고 이해하기에 너무도 작은 편린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부풀려진 부정확한 정보들이 최소치의 팩트와 뒤섞여 혼탁한 상태라는 것만 확실할 따름이다. 당신도 나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고인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이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못박는다. 무엇보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글이 아니다.
▲ 봉준호 감독, 배우 김의성 등 문화예술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
ⓒ 유성호 |
지난달 27일, 고 이선균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과정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여러 층위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배우' 이선균을 잃었다는 아픔도 컸고, 더 이상 그의 연기를 볼 수 없다는 상실감도 컸다. tvN <나의 아저씨>의 유명한 대사들을 상기하는 이들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반면, '사람' 이선균을 두둔하는 건 곤란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고의성은 없었다지만 대마초 투약 사실을 인정한 만큼 그의 사생활에 실망한 이들이 많았다. 폭풍처럼 우리 사회에 한바탕 몰아쳤던 슬픔이 조금 잠잠해지자 하나의 뚜렷한 목소리가 형체를 갖춰가고 있다.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故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가 진행됐다.
"고인의 마약 투약 혐의 수사가 익명으로 최초 보도된 시점부터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지난 2개월 동안 경찰의 기밀 보안에는 한치의 문제가 없었는지, 특히 KBS 단독 보도는 어떤 경위로 나왔는지 규명되어야 한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에서 이선균과 인연을 맺었던 봉준호 감독이 총대를 맸다. 봉 감독은 "경찰의 기밀 보안에는 한치의 문제가 없었는지, 특히 11월 24일 KBS 단독 보도는 어떤 경위로 나왔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인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밀 감정에서 마약 음성 판정을 받은 시점에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됐던 KBS 보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봉 감독이 경찰을 정면으로 겨냥했다면, 가수 윤종신은 언론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윤종신은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에 관한 고인의 음성을 보도에 포함한 케이비에스(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물은 후 "고인의 사적 대화 등을 보도한 이른바 사이버 렉카들"들의 무분별한 보도행태를 규탄했다.
△수사당국 관계자들의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
△언론의 자정 노력과 함께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삭제 요구
△문화예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 재개정
29개 문화예술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문화예술인 연대회의(가칭)'는 진상규명을 비롯해 KBS에 기사 삭제를 요구했고, 문화예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법령 재개정도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성명서 발표에는 김의성 배우, 민규동 감독, 장항준 감독, 이원태 감독, BA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 등도 참석했다. 비극을 되풀이 할 수 없다는 문화예술인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선균으로부터 촉발된 것이긴 히지만, 문화예술인들의 주장은 단순히 '사람' 이선균에 대한 옹호가 아니다. 경찰, 더 나아가 사법권과 언론에 의해 얼마든지 타깃이 될 수 있는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에 가깝다. 혹자는 이선균의 사생활,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을 언급하며 두둔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물론 연예계의 자정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
다만, 그의 사생활을 옹호 혹은 비난하는 것과 그가 겪어야 했던 무리한 경찰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 및 유출 문제, 언론 및 사이버 렉카에 의한 마녀사냥을 비판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가장 극악한 범죄자도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설령, 이선균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인권이 유린되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고인이 남긴 숙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송강호 배우 등 영화계 종사자 2천여 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만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고 제2, 제3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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