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가 가르쳐 준 역설... 취업도 이렇게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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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경준 기자]
"축하드립니다. 김 접장님!"
사람들이 축하인사를 건넨다. 어안이 벙벙했다. 꿈인가 생시인가.
전통활쏘기(국궁)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1순(5발)의 화살을 모두 과녁에 꽂은 날이었다. 이른바 '초몰기'를 한 것이다.
우리 활쏘기에서는 사대에 서면 1순씩 활을 쏘는 것이 기본 예법이다. 1순을 모두 관중시키는 것, 즉 5발의 화살을 연속해서 과녁에 맞추는 것을 몰기라고 하는데, 그 몰기를 처음 달성하는 것을 초몰기라고 한다. 활터에서는 초몰기를 하면 비로소 '접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예우한다. 이제 스스로 자세(궁체)를 돌아보고 교정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보는 것이다.
▲ 2024년 1월 6일, 초몰기를 달성하다. |
ⓒ 김경준 |
11년 만에 찾아온 결실
2년 만의 초몰기라고 했지만 길게 보면 11년 만에 찾아온 결실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활을 잡은 것은 2013년 대학생 때였기 때문이다. 당시 종로구에서 운영하던 국궁교실을 통해 처음 활과 인연을 맺었더랬다. 다만 군 입대 등의 이유로 배움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은 남아있었다. 매년 갱신하는 버킷리스트에도 활쏘기가 빠짐 없이 들어갔다. 그러다 서른즈음(2022년)에 본격적으로 활을 잡기 시작했다. 여유있던 참에 활을 만나, 정식으로 서울 강서구 우장산에 위치한 활터(공항정)에 등록한 된 것이다(관련 기사: 송일국이 심어준 '로망', 드디어 이뤘습니다 https://omn.kr/1wj6l )
초몰기를 달성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놀랍게도 집궁(기초 교육을 이수한 뒤 본격적으로 사대에 서는 것) 일주일 만에 초몰기를 달성한 이도 있고, 길게는 4~5년 만에 하는 이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주변의 사례만 놓고 봤을 때 통상 6개월~1년 안에는 하는 편인 것 같다.
나는 2년 만에 했으니 느린 편에 속한다. 4중(5발 중 4발만 맞춘 것)은 참 많이 했다. 심지어 활터 등록 첫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4중을 달성하면서 기대주로 주목받기도 했다. 사실 활을 다시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예상치 못한 시수에 나 역시도 놀랐고 그때는 정말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후 한 번도 5중을 달성하지 못했다. 중간에 한 발씩 빠지거나, 마지막에 심장이 떨려서 화살을 엉뚱한 방향으로 날리곤 했다. '떠오르는 별' 소리에 우쭐했던 내 교만함에 하늘이 노했나 싶기도 했다.
▲ 시지(시수를 기록한 책자)에 찍힌 관중 횟수. 2년 가까이 만년 4중을 벗어나지 못했다. |
ⓒ 김경준 |
어느 날이었다. 초몰기를 못한 스스로에 대해 한탄하자 사두(활터의 대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원래 더디게 가는 사람이 명궁이 되는 법이다."
그저 위로와 격려 차원에서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운 좋게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내는 사람은 교만함에 사로잡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기 쉽고, 더딘만큼 스스로의 자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는 사람은 훗날 명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서부터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초조함과 다급함이 오히려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맞추려는 욕심만 앞서니 화살도 귀신 같이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곤 했던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우보만리(牛步萬里) 네 글자를 활쏘기의 화두로 삼았다. 느리지만 우직하게 만 리를 가는 소처럼 끈기와 성실함으로 정진하면 마침내 노력이 빛을 볼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아쉽게 한 발을 놓쳐 4중에 그칠 때에도, 대신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에게 "4중 했으니 조만간 5중도 하겠죠" 하며 짐짓 여유까지 부리게 됐다.
▲ 각궁을 당기는 기자의 모습 (서울 공항정) |
ⓒ 김경준 |
남과 비교하다 자괴감에 빠질 때
'존버' 끝에 찾아온 초몰기는 내게 우보만리 네 글자의 무게를 알려주었다. 이는 나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현직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나는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초조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또래 친구나 후배들이 번듯한 직장에 자리 잡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모습을 볼 때마다, "너는 대체 언제쯤 취직하는 거냐"라는 가족들의 한숨 섞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위축되곤 하는 것이다.
나라고 도전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 군데가 넘는 기관에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그럴 때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나보다 잘 나가는 이들에게 질투를 느꼈다. 내 능력을 의심하면서 '공부를 관둬야 하나' 깊은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활쏘기였다. 활쏘기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얻은 우보만리의 마음가짐은 낙방의 시련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다. 비록 지금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도 묵묵히 정진하다보면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활쏘기가 내게 알려준 고마운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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