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겨울이 가기 전에 가자미구이
가자미 버터구이에 세 번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올겨울이 끝나기 전에 가자미 버터구이를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
가자미 버터구이는 프랑스 요리다. 솔 뫼니에르(sole meuniere).
프랑스어 사전에 따르면, 솔(sole)은 넙치과에 속하는 허가자미다. 뫼니에르(meuniere)는 생선이나 어패류를 밀가루에 묻혀 프라이팬에서 버터로 구워내는 것을 말한다.
두 번은 백화점 마트에서 손질한 가자미를 사다가 가자미 버터구이를 만들어보았다. 인터넷의 레시피를 보고 요리했으나 생선 살이 프라이팬에 눌어붙어 가자미가 누더기가 되었다. 일단 비주얼에서 꽝이었다. 맛이고 뭐고 음미할 단계가 아니었다.
앞선 두 번의 실패는 준비성 부족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결정적인 게 생물 가자미를 선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세 번째 도전에서는 만원에 세 마리 하는 반건조 가자미를 샀다. 반건조 가자미로 요리해보니 생선 살이 프라이팬에 눌어붙지 않아 온전한 모양새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선 비린내를 잡는 데 실패했다.
나는 식도락은 즐기지만 요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 내가 왜 ‘솔 뫼니에르’를 시도했을까. 벌써, 눈 밝은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바로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가 주연한 영화 ‘줄리 & 줄리아’로 인해서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실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두 개의 실화가 교차로 전개된다.
하나는 2차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 프랑스. 외교관 남편의 부임지인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 요리를 배워 프랑스 요리책을 낸 미국인 줄리아 차일드의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2002년 뉴욕 맨해튼에서 도시개발공사 공무원인 줄리 파웰. 뉴욕의 줄리는 줄리아가 쓴 베스트셀러 요리책을 따라 요리에 도전한다. 그 시행착오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블로그에 올리면서 작가로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첫 부분에 가자미 버터구이가 나온다. 배편으로 자동차와 이삿짐을 싣고 프랑스에 도착한 외교관 부부가 식당에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요리가 솔 뫼니에르다. 이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자미 버터구이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가자미 버터구이의 비주얼 때문인가, 아니면 메릴 스트립의 연기 때문인가. 어쨌든 이 영화는 프랑스 요리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었다.
가자미는 광어, 도다리 등과 함께 넙치과에 속한다. 주로 서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박대도 넙치과다. 넙치과 생선의 장점은 무엇보다 생선살 수율(收率)이 높다는 점이다. 여수의 식당에서는 금풍생이 구이가 나온다. 충무공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 시절 즐겨 먹었다는 금풍생이(일명 군풍선이)는 맛은 좋은 데 생선살 수율이 낮다.
천재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미식가라는 점이다. 천재는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다. 예각적인 심미안을 지속시키려면 미뢰(味?)를 설레게 해야 한다.
내가 연구한 천재 중에서 대표적인 미식가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괴테는 육류와 어류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미식가였다. 식도락가로서 괴테의 남다른 점은 무엇보다 제철 식재료의 특성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식재료가 맛과 영양이 최상일 때만 요리해 먹었다.(물론 본인이 요리한 것은 아니다) 괴테가 평균 수명이 50세를 전후하던 19세기 초반에 82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데는 제철 음식으로 자양(滋養)을 하고 호기심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 백석(白石)도 미식가였다. 백석이 시집 ‘사슴’을 출간한 게 1936년 1월20일. 100부 한정판 자비 출간. 호화 양장본인 책값은 2원. 시집이 나오자마자 품절되었다. 김기림, 정지용 같은 당대의 시인과 평론가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사슴’은 장안의 화제였다. 만주 용정의 열아홉 문학청년 윤동주는 ‘사슴’을 백방으로 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윤동주는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려 필사(筆寫)한다.
백석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여기에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져 백석 신드롬이 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과 잡지에 실리곤 했다.
백석은 2년간의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1936년 봄부터 함흥으로 내려가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근무한다. 함흥 시절 그는 하숙을 했다. 영생고보 시절 백석은 대단한 멋쟁이였다. 짙은 그린 색 양복을 즐겨 입었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멋내는 데 썼다. 실력도 출중하고 발음도 원어민 못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수법도 탁월했다. 여기에 잘 생긴데다 옷도 잘 입으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였다. 경성의 여류 시인들에게 백석이 어떤 존재였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조선 문단의 ‘모던 뽀이’가 백석이었다.
이쯤 되면 ‘모던 뽀이’ 백석의 식도락이 궁금해진다. 백석은 영생고보가 가까운 운흥리의 어느 할머니 댁에서 하숙했다. 백석은 생선류를 좋아했고 육류를 멀리했다. 하숙집 할머니는 이런 하숙생의 입맛을 배려해 가급적 육류 반찬을 내놓지 않았다.
백석이 최애한 음식은 ‘가자미구이’였다. 그중에서 특히 참가자미구이를 좋아했다. 백석은 참가자미구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백석은 방학이 되면 경성으로 올라가 친구들과 동료 문인들과 어울렸다. 방학이 끝나면 함흥으로 내려갔다. 함흥 하숙집에 짐을 풀자마자 어물전으로 향했다. 가자미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상상해보라. 당대의 시인이 어물전을 두리번거리며 참가자미를 고르는 장면을, 새끼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참가자미 한 두릅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참가자미구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을 생각에 시인의 입가에 번졌을 미소를.
백석은 시인이면서 최고의 번역가이자 산문가였다. 가자미구이를 이 정도로 좋아했다면 당연히 가자미에 대한 찬사를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
마침 그는 조선일보로부터 ‘나의 관심사’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백석은 조선일보 1936년 9월2일자에 ‘가재미·나귀’라는 글을 실었다.
동해(東海)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 광어, 문어, 고등어, 평메, 횃대 생선이 많지만 모두 한두 끼에 나를 물리게 하고 만다. 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나는 이 가재미를 처음 십전 하나에 뼘가웃씩 되는 것 여섯 마리를 받아들고 왔다. 다음부터는 할머니가 두 두릅 마흔 개에 이십오 전씩 사오시는데 큰 가재미보다는 잔 것을 내가 좋아해서 모두 손길만큼 한 것들이다 …
그동안 나는 한 달포 이 고을을 떠났다 와서, 오랜만에 내 가재미를 찾아 생선장으로 갔더니, 섭섭하게도 이 물선은 보이지 않았다. 음력 8월 초순이 되어서야 이 내 친한 것이 온다고 한다. 나는 어서 그때가 와서 우리들 흰밥과 고추장과 다 만나서 아침저녁 기뻐하게 되기만 기다린다. 그때엔 또 이십오 전에 두어 두릅씩 해서 나와 같이 이 물선을 좋아하는 H에게도 보내야겠다.
< 송준 지음 ‘시인 백석’에서 재인용 >
나이가 들수록 점점 생선류가 좋아진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생선구이를 먹지 않으면 어딘가 불안하다. 갈치를 노릇노릇하게 프라이팬에 구워 포슬포슬한 생선 살을 흰쌀밥에 얹어 먹을 때의 그 황홀함이란!
지난해 나의 식도락사(史) 사건은 박대 맛을 다시 맛보았다는 것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니가 철마다 해주신 박대 맛. 서울로 올라온 이후 나는 사십년 넘게 박대 맛을 잊고 살았다.
군산클럽에 강연을 하러 다니면서 박대를 다시 알았다. 한번은 강연 시작 전 내게서 ‘박대 이야기’를 들은 경찰서장과 대학총장을 지낸 두 분이 박대구이 점심에 초대했다. 노릇하게 구어진 박대구이 생선을 놓고 나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차마, 젓가락을 댈 수 없었다. 조심조심 박대살을 발라 입에 넣었다. 생선살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처럼 어린 시절이 피어올랐다.
나는 아직까지 가자미구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본 일이 없다. 참가자미는 겨울이 제철이다. 올겨울이 다 가기 전 백석처럼 참가자미구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 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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