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반군은 뛰어난 軍사업가"…美와 맞짱 '북한식 도발' 속셈
후티 반군을 향해 미국이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중동 예멘의 대부분을 장악한 후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가자지구 전쟁을 빌미로 두 달 가까이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로 홍해상 선박을 공격했고, 결국 미·영국으로부터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그런데도 후티는 미국에 맞서 싸우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전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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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27차례 홍해 공격…美 보복 공습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영은 12일(현지시간) 예멘 내 후티가 사용하는 방공 시스템·무기 저장소 등 60여 곳에 전투기·선박·잠수함을 동원해 100여 개의 정밀 유도탄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미군이 그간 이라크와 시리아 내에서 친이란 무장세력을 타격한 적은 있었지만 예멘에서 후티를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동 내 확전을 촉발할 수 있다며 후티에 대한 직접 공격을 꺼렸다. 그러나 지난 10일 후티가 홍해에서 미국 선박을 향해 미사일 3기와 무인기 19기 등을 퍼붓는 대규모 공격을 벌이자 군사 대응에 나섰다.
후티는 오히려 보복하겠다고 위협했다. 후세인 알-에지 외무 부장관은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 "미국과 영국은 높은 대가를 치르고 이 노골적인 침략의 모든 끔찍한 결과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후티 고위 관계자는 "아라비아해도 공격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후티는 지난해 11월부터 하마스 지지를 명분으로 홍해를 항해하는 민간 선박을 27차례 공격했다. 후티의 홍해 공격 배후설을 부인하던 이란도 최근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알리 아크바르 아흐마디안 이란 최고국가안보최고회의(SNSC) 의장이 후티 대변인을 만난 데 이어, 이달 초엔 이란의 1550t급 구축함 알보르즈호가 홍해에 진입했다. 지난 11일엔 이란 해군이 오만만 해역에서 미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호를 나포했다.
후티가 새로운 중동전쟁의 불씨를 당기는 모양새다. 미국과 영국이 후티를 직접 타격하면서 이란이 이번 갈등에 개입할 명분을 얻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내전으로 진화한 테러용 드론·미사일
후티는 1992년 중동의 최빈국 예멘의 북부에서 시아파 부흥 청년운동으로 출발한 소규모 반정부 단체였다. 후티란 명칭은 초기 지도자였던 반체제 정치인 후세인 바르레딘 알후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후티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수니파 친미 정권에 맞서 반정부 무장투쟁을 일으키고,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을 축출하면서 세력을 급격히 키웠다.
2014년 시작된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 주도 아랍 동맹군에 대항해 수도 사나와 홍해 연안 등을 포함한 예멘 영토의 약 30%, 인구(3300만 명) 65%가 있는 지역을 장악하면서 예멘의 사실상 새 주인으로 떠올랐다. 유엔에 따르면 예멘 내 후티 반군의 무장세력과 추종자는 약 10만~12만 명으로 추산된다.
반군이라고 부르지만 후티의 전력은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천적인 이란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중장거리 탄도·순항 미사일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사거리 1200~1600㎞에 달하는 이란제 미사일 샤하브-3을 개조한 카다르, 옛 소련제 부르칸 미사일을 개조한 부르칸-3 등의 탄도미사일이 있고, 사거리가 2000㎞이며 500㎏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는 이란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수마르도 있다. 북한제 스커드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다는 정황도 수차례 포착됐다.
드론 전력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거리 2000~2500㎞에 폭발물 45㎏을 탑재 가능한 사마드-4가 대표적이다. 개당 2000~2만 달러(260만~2600만원) 수준으로 '가성비'도 좋은 편이다. 대경대 부설 한국군사연구소 김기원 교수는 "후티 반군은 지난 10여 년간 중국산 값싼 드론을 들여와 이란으로부터 폭탄 장착 기술 등을 배워 공격 범위를 넓히고, 공격 강도가 센 드론을 양산해 테러에 최적화시켰다"고 전했다.
물론 세계 최강 미군과 정면 대결해서 이길 만한 전력은 아니다. 알자지라는 최근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과 홍해에서 쏜 미사일과 드론은 미군에게 격추되며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후티 목표, 사우디와 협상 우위 확보
그런데도 후티가 홍해 상선을 공격하는 ‘북한식 도발’을 일삼는 건, 이를 통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후티가 진정 전쟁을 벌이고 싶었다면 선박을 나포하거나 유조선을 침몰시키는 방식을 시도했을 것"이라면서 "후티의 홍해 도발은 북한이 계속 동해상에서 미사일을 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로 보인다"고 말했다.
NYT·알자지라 등은 후티가 하마스 지지를 명분 삼고 있지만 실제 목표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라고 짚었다.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자국을 세계 경제 중심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서부 홍해에 네옴시티 신도시를 만들어 물류 허브와 관광지 등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란·예멘 등과의 갈등을 완화할 필요가 있었고, 지난해 4월 후티와 평화협상을 체결해 이란과 대리전을 펼친 예멘 내전을 완전히 종식하기로 했다.
그래서 후티가 사우디의 이런 상황을 이용해 평화협상에서 더 큰 보상을 얻으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이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토마스 주노 캐나다 오타와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후티는 지난 10여 년 동안 사우디와 전쟁을 통해 매우 대담해졌다"면서 "홍해 공격으로 인지도를 높여 사우디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고, 국제사회에서 예멘의 공식 정부로서 인정받길 원한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미국의 개입에도 후티 반군이 쉽게 물러설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예멘 전문가인 파레아 알 무슬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후티는 현 정세를 잘 이용한 뛰어난 군사 사업가로, 가자지구 전쟁이 계속되는 한 홍해 공격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후티는 이란이 원하는 것보다 더 나아갈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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