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던 10대에 "넌 매춘부" 폭언…美학교 덮친 유대인 혐오증
지난 1일 미국 뉴저지주의 이스트 러더포드 한 복합 쇼핑몰에서 ‘IDF’(이스라엘 방위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한 10대 여성이 봉변을 당했다. 지나가던 행인이 갑자기 밀치며 “너는 매춘부야”라며 폭언을 퍼붓고는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고 외쳤다.
4일 미 뉴욕주 욘커스에서 열린 한 고등학교 농구 경기에선 한 선수가 상대 팀의 유대인 선수를 향해 “나는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를 지지한다. 이 망할 유대인아”라며 외쳤다. 경기장은 곧바로 엉망이 됐고 경기는 중단됐다.
미국 유대인 단체 ‘반(反)명예훼손연맹’(ADL)에 보고된 유대인 혐오 사건 사례들이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이후 미국 내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ADL이 10일(현지시간) 공개한 ‘반(反)유대인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이달 7일까지 만 3개월 동안 총 3283건의 유대인 혐오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ADL은 “1년 전 같은 기간(712건)과 비교하면 3.6배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이는 최근 10년 내 유대인 증오 범죄가 가장 많았던 202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건수 3697건과 맞먹을 만큼 늘어난 것이다. ADL 측은 “해당 기간 하루 평균 34건의 혐오 범죄가 발생한 셈”이라며 “2023년은 ADL이 1979년부터 집계를 시작한 이후 반유대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7일부터 1월 7일까지 3개월 간 벌어진 유대인 혐오 사건 중에는 폭력(60건)과 기물 파손(553건) 등 물리력이 동원된 경우가 18.6%를 차지했다. 그 외 대부분은 폭언 등 언어 표현을 통한 괴롭힘으로 조사됐다.
글ㆍ서한 등을 통한 괴롭힘이 1353건이었고, 집회 도중 발생한 반유대 발언 및 이스라엘 테러 지지 발언 또는 반시온주의 표현이 1317건이었다. 유대인 혐오 발언이나 표현 중 상당수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확산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직후 ‘히틀러가 옳았다’는 반유대주의 해시태그(#)를 단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수만 건 올랐다.
눈에 띄는 건 혐오 범죄가 발생한 장소다. 대학 캠퍼스에서 505건, 초중고교에서 246건 등 교내에서 발생한 건수가 총 751건이나 됐다. 최근 미국에선 교내 반유대주의에 미온적 대처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엘리자베스 매길 전 펜실베이니아대 총장, 클로딘 게이 전 하버드대 총장 등 명문대 총장들이 연이어 자진사퇴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조나단 그린블랫 ADL 회장은 “반유대주의가 놀라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유대인을 향한 증오의 공격으로 유대교 회당 예배를 방해하는가 하면 가짜폭탄 위협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대인 회당과 유대인 소유 건물은 혐오감이 묻어나는 낙서와 기물 파손의 표적이 됐고 폭탄 테러 위협에 노출된 곳도 많아졌다고 유대인 뉴스 매체 더 포워드(The Forward)는 전했다.
이슬람 겨냥 증오범죄도 증가
미국 내 이슬람을 향한 증오 범죄도 증가세가 뚜렷하다. 미 CNN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7일 조지아주 휴스턴카운티의 한 중학교에선 사회 교사가 13세 무슬림 학생에게 “머리를 베어버리겠다”고 폭언을 한 혐의로 체포됐다. 해당 교사는 학생이 교실의 걸린 이스라엘 국기를 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하는 이스라엘 국기가 공격적으로 느껴진다”고 하자 이에 격분해 욕설과 폭언을 퍼부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2일 발표된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 집계 결과 10ㆍ7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이후 미국 내 반이슬람ㆍ반팔레스타인 관련 신고 및 도움 요청 건수는 총 2171건에 달했다. 이는 1년 전 같은 시기보다 172% 증가한 수치라고 CAIR은 밝혔다.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과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면서 서로를 향한 증오와 혐오가 동시에 증폭되는 양상이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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