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징계 압박에도…김상민 '윤심은 다르다' 꿈쩍않는 이유

이창훈 2024. 1.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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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판·검사와 경찰 간부의 여의도행이 줄을 잇고 있다.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회는 12일 전상범 전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1979년생인 전 전 부장판사는 2008년 임용 후 서울중앙지법·창원지법·전주지법 군산지원 등을 거치면서 15년간 판사로 근무했다. 지난달 15일 사표를 낸 전 전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사표 수리 후 이틀만에 국민의힘에 인재영입 방식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인재영입위원인 조정훈 의원은 법복을 벗자마자 곧장 정치권을 향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대해 “사직서 처리가 끝나기 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싶은 의사를 존중해서 오늘 발표했다”고 해명했다. 지난 11일 사표가 수리된 심재현 전 광주지법 목포지원 부장판사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광주 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명절 때 총선 출마를 시사하는 문자를 고향 사람들에게 보내는 등 논란이 된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가 지난 6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대학교 종합교육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참석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검찰에선 감찰과 형사사건 기소 등의 이유로 사표 수리가 안 된 현직 검사가 출마에 나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친문 검사'로 꼽히던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지난 8일 “윤석열 사이비 정권을 끝장내고, 윤석열 사단을 청산하는 최선봉에 설 것”이라며 총선 출마를 시사했다.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된 신성식 전 수원지검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출마를 선언했다.

이성윤 연구위원은 2019년 6월 대검 반부패 강력부장 시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는 25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신성식 연구위원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재직하던 2020년 6∼7월 당시 한동훈 검사장과 이동재 기자의 대화 녹취록 내용이라며 KBS 기자에게 허위사실을 알린 혐의로 지난해 1월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이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채 총선 출마에 나서는 것도 논란거리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비위와 관련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퇴직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명 ‘황운하 판례’가 새로운 선례를 남겼다.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대전경찰청장 시절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고발된 상태에서 2020년 총선 출마를 강행했다. 사직서가 처리되지 않은 현직 경찰 신분으로 선거에 임했는데 당선까지 된 것이다. 이와 관련 2021년 4월 대법원은 “공직 사퇴 기한 내에 사직서를 냈다면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더라도 출마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사직서만 내면 사표 수리와 무관하게 출마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반면에 “뼛속까지 창원 사람”이라는 문자를 보냈다가 감찰받은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는 지난 6일 출판 기념회를 강행하며 국민의힘 소속으로 경남 창원 의창구 예비후보 등록까지 마쳤다. 김 검사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향 동문에게 “기대와 성원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지역사회에 큰 희망과 목표를 드리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문자가 공개돼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으로 감찰을 받았다. 김 검사는 지난달 28일 ‘검사장 경고’ 조치를 받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김 검사가 곧장 총선 출마를 위한 출판기념회를 예고하는 글을 SNS에 올리자 대검은 사직서를 반려하고 다시 감찰에 돌입했다. 대검은 12일 김 검사에 대해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행위를 확인한 즉시 신속하게 감찰을 실시해 법무부에 중징계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책 '진짜 검사' 저자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인사들은 정치권을 향한 노골적인 구애도 펴고 있다. 신성식 연구위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수원지검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이 검찰의 부당한 수사였다고 비판했다. 2021년 하반기 수원지검장으로 해당 수사를 지휘한 신 연구위원은 “정말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아 저도 깜짝 놀랐다”, “이 대표의 유죄가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했는데도, 결국 정치적인 프레임을 걸어서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 반면에 김상민 검사는 자신을 겨냥한 대검찰청의 감찰을 비판하며 지인들에게 “부당한 선거 개입이다”, “용산의 기류는 다르다”며 윤심(尹心)까지 거론했다고 한다.

경찰 출신 중에서는 지난 10일 사직한 이상률 전 경남경찰청장과 한상철 전 양산경찰서장이 각각 고향인 경남 김해을과 경남 양산갑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총경회의)’에 참석했다가 좌천된 이지은 전 총경은 지난 5일 퇴임사에서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며 정치 입문을 시사했다. 이 전 총경은 민주당 인재영입 대상으로 거론된다. 민주당은 앞서 총경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전 총경을 인재영입 3호로 영입했었다.

신재민 기자

선거를 앞두고 판·검사와 경찰 인사의 정치권행은 일부 있었지만, 최근엔 빈도·규모에서 훨씬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사정 정국이나 네거티브 공방전에서 수사와 재판에 밝은 판·검사와 경찰 출신 인사들은 공격수와 수비수 역할로 정당의 수요가 높다. 검사 출신의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중앙선대위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윤석열 당시 후보를 겨냥한 네거티브 방어와 법률 대응을 총괄했다. 검사 출신의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대선 기간에는 공명선거법률지원단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1월 구성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에선 단장을 맡아 여당을 겨냥한 공격수 역할을 맡아왔다.

사직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출마 선언이 이어지자 법조계에선 우려가 나온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현직에 있을 때 과연 수사와 재판을 공정하게 했을지, 국민이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입당해 공천받는 건 정상이 아니다”며 “정치적 중립 의무가 더 강조되는 수사 기관과 법원 출신에 대해서는 선거일로부터 90일 전이 아니라 최소 1년 전에 사퇴해 정치권의 공천 약속을 기대할 수 없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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