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옆집 아줌마의 마음

박재찬 2024. 1. 13.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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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너 멋지다, 잘될 거야, 피곤하겠구나"라고 격려하면서 관심은 갖되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소통에 대한 걱정은 비단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주장과 논리에 공감하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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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찬 종교부장


요즘 들어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덥수룩한 머리에 반항기 묻어나는 표정, 변성기 목소리로 내뱉는 듣기 거북한 노래, 새벽 늦게까지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엄마와의 잦은 언쟁, 언행불일치의 끝판왕….

겨울방학에 들어간 예비 중3 남학생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답답해질 땐 “옆집 아줌마처럼 아이를 대하라”는 출처불명의 조언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너 멋지다, 잘될 거야, 피곤하겠구나”라고 격려하면서 관심은 갖되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 마음이 모두 그럴 수 있나. 그래서 경고와 읍소를 버무린 편지도 써봤는데 선뜻 건네지 못하고 있다. ‘과연 내 얘기가 얘한테 통할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소통에 대한 걱정은 비단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닐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경험칙상 모든 대화의 중심이 ‘나’인 사람, 공감 능력이 떨어지거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대화 범위가 좁은 이들 중엔 불통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 자신과 타인은 엄연히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그렇다.

소통은 기독교 미래에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제이자 지켜나가야 할 덕목이다. 목회자나 신자들은 탈기독교 흐름 속에서 종교와 거리를 두려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든 복음의 진수를 건네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은 또 시대 문화와 뗄 수 없다. 팀 켈러(1950~2023) 목사는 저서 ‘탈기독교 시대의 전도’에서 이런 사례를 들었다. 미혼의 젊은 남녀 커플이 사랑해서 성적 관계를 갖는데 무슨 문제냐고 말한다. 이에 당황한 부모가 성경 본문을 들이대며 설명하지만 별반 효과가 없다.

켈러 목사는 이에 대해 혼전 관계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기는 이 시대의 내러티브(정서적 공감대 정도로 풀어서 표현하고자 한다), 즉 개인의 자유와 도덕성에 관한 젊은이들의 정서적 공감대가 그들의 의식 저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성애 같은 성적인 이슈나 만혼이나 비혼, 비출산 문화, 정치적 올바름 같은 이슈 등에 대한 인식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주장과 논리에 공감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이 그들과 소통하는 것일까. 말이야 통하겠지만 신앙 양심상 불통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시대 문화의 정서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설명하고 설득하며 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켈러 목사는 강조한다. 오랜 기간 기독교 문화를 향유했던 서구에서는 굳이 이런 설명이나 설득이 필요 없었다. 당시에는 남녀노소 거의 모든 이들이 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 각종 문제를 해석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확 바뀌었다. 이성과 과학,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위시한 비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문화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에 말이 제대로 통할 리는 만무하다. 복음을 제시하는 일 자체가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 전도가 안 되니 예배당의 빈자리가 많아지고 급기야 교회 문을 닫게 되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쓴 제임스 헌터(미 버지니아주립대) 교수는 우리 시대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문화전략을 제시한다. 문화 속에서 살아가되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세속 문화를 지배하려 하거나 그 문화로부터 벗어나거나 문화와 타협하는 방식이 아니다.

혼탁한 문화가 판치는 세상 한복판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좁은 길을 걸으며 겸손하고 담대하게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과 소통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사춘기를 앓는 아들에게 옆집 아줌마의 마음보다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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