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총 포획, 최선일까…순둥이 유기견 동경이 사연 [개st하우스]
“공원을 돌던 중에 꼬리가 뭉툭한 유기견 동경이를 마주쳤어요. 잃어버린 주인을 찾는지 행인들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는 순한 아이였는데 어느날 마취탄을 맞고 포획됐어요. 물론 구조된 거니 좋은 일이긴 하죠. 하지만 구조되는 과정에서 그 순한 애가 약에 취해 이동장에 구겨지듯 담기는 모습이 너무 딱했어요. 굳이 위험한 마취약을 썼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20㎏가 안 되는 덩치에 뾰족한 주둥이가 진돗개를 떠올리게 하는 오늘의 주인공. 하지만 토끼처럼 뭉툭한 꼬리도, 낯선 사람에게 선뜻 다가와 손을 핥는 상냥함도 진돗개와는 사뭇 다르죠. 무려 신라시대부터 경북 경주 일대에서 기르던 토종견 동경이입니다. 동경이는 진돗개‧삽살개‧풍산개와 함께 4대 토종견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손을 내밀자 움찔, 뒷걸음질치는 이 녀석. 사교성 좋다는 동경이 치고 소심합니다. 유기견으로 떠돌다가 포획되는 과정에서 독한 마취탄을 맞는 아픈 경험을 한 탓이라고 합니다. 마취약으로 몸이 굳어가는 와중에 사람에게 잡아채이는 경험을 한 게 동경이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입니다.
마취약에 취해 비틀대는 동경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주민들 가운데는 제보자 박은영씨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포획된 동경이의 임시보호자가 됐습니다. 은영씨는 “동경이가 구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두 살 동경이는 지난해 9월 25일 무렵부터 서울 올림픽공원을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목걸이를 착용한 녀석은 잃어버린 주인이라도 찾는 듯 행인들에게 다가가 냄새를 일일이 확인하고 다녔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동네 주민들이 나섰습니다. 주민들은 조를 나눠 동경이에게 매일 사료를 챙겨주는 한편, 동경이 주인을 찾는 전단지를 주택가에 뿌렸습니다.
녀석은 사람을 잘 따르고, 공격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이대로 며칠만 더 공원에서 돌보면 견주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공공보호소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동경이를 신고했던 모양입니다. 며칠 뒤인 9월 30일, 인근 소방서에서 유기견 포획을 위해 출동했습니다. 동경이는 소방대원들을 보자 달아났습니다. 평소에는 사람을 잘 따르는 녀석이지만 뜰채와 그물을 들고 다가오는 소방대원들에게는 겁을 먹었던 겁니다.
동경이가 달아나자 소방대원은 마취 주사가 장전된 블로우건을 꺼내들었습니다. 길이 80㎝의 대롱에서 발사된 주사기는 곧장 동경이의 오른쪽 옆구리에 박혔습니다. 심장 가까운 곳에 적중한 마취제는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졌고, 동경이는 몇 분 뒤 의식을 잃고 잔디밭 구석에 쓰러졌습니다. 대원들은 기진맥진한 동경이를 이동장에 담았습니다.
은영씨와 주민 10여명은 동경이가 포획되는 과정을 전부 지켜봤습니다. 안타까운 광경이었죠. 은영씨는 “동경이는 손짓하면 다가올 만큼 순한 개”라며 “굳이 독한 마취약을 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었다”고 합니다.
동경이가 포획될 당시 공공보호소는 추석 연휴로 5일간 휴관이었습니다. 구조된 동경이는 1m 목줄로 공원 관리소 앞 나무에 묶인 채 연휴가 끝나기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구조됐지만 구조되기 전보다 더 나쁜 상황이 돼버린 겁니다. 돌보는 이 없이 공터에 방치된 동경이에게 물과 사료를 챙겨준 건 은영씨와 주민들이었습니다.
밀려오는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소방서 사정상 동물 포획 시 마취탄 사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체중과 건강상태를 모르는 동물에게 마취약을 주입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동물이 쇼크사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소방청은 마취탄 사용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방청의 ‘2022 위해동물 포획 현장활동 매뉴얼’에 따르면 마취탄 사용은 “난폭하거나 예민한 동물, 접근이 불가능한 동물을 포획하는 경우”로 제한합니다. 최대 사거리 30m인 마취총, 대롱에 날숨을 불어 10m를 발사하는 블로우건을 주로 사용합니다. 또 “마취총은 발사력이 강하고 마취주사기가 강해 작은 동물(개‧고양이)은 발사 충격으로 인해 사망할 수 있어” 사용에 신중해야 합니다.
마취탄에는 자일리진이라는 동물용 마취제가 주로 사용됩니다. 온몸의 근육에 퍼져 이완시키는 역할을 하며, 독성이 강하므로 천천히 퍼지도록 다리‧엉덩이 등 근육이 많은 부위에 주입해야 합니다. 과다 사용하면 근육경련 및 심정지를 일으킬 수 있어 체중 10kg당 0.5~1.0㎖만 사용해야 하죠. 하지만 유기동물의 경우 체중 등 생체 정보가 없어 마취탄으로 인한 동물 사망 사건은 매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물단체들은 동물 포획 시 마취총 대신 부상 위험이 낮은 포획망 등 사용을 당부합니다.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김용환 대표는 “일반적으로 마취총 포획 시 사망률은 20%에 달한다”며 “대상 동물의 체중을 몰라 약물의 적정 양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마취총은 최후의 수단인 만큼 동물의 습성 등을 파악해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동경이는 포획 과정에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모양입니다. 사회성 좋던 녀석은 지금은 사람 손이 다가오면 잔뜩 움츠러듭니다. 동경이는 포획 나흘 뒤 헐거운 목줄을 풀고 한 차례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은영씨는 전단지를 돌리며 동경이를 찾았고, 이틀 만에 5㎞ 떨어진 마을에서 주민이 잡아둔 녀석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동경이는 은영씨와 주민 황사무엘씨의 거처를 오가며 3개월 넘게 임시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국민일보는 서울 송파구의 한 빌라에서 동경이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동경이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3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낯선 취재진에게서 간식을 받아먹고, ‘앉아’ ‘손’ 등 간단한 개인기도 잘 해내는 동경이. 포획 직후 보이던 경계심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옆구리나 목덜미 같은 예민한 부위를 만지려고 하면 움찔하며 뒷걸음질치더군요.
미애쌤은 단계적 둔감화 교육을 제안했습니다. 보호자 손바닥 위에 간식을 두고 동경이가 스스로 다가와 손바닥을 건드리면 칭찬하며 보상하는 방식입니다. 익숙해지면 동경이가 다가왔을 때만 얼굴, 목덜미, 옆구리 등을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사람 손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줬습니다. 30분간 교육을 반복하자 동경이는 금세 목덜미까지 터치를 허락했습니다. 2주일 이상 꾸준히 반복하면 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겁니다.
은영씨와 황사무엘씨는 이미 기르는 유기견이 있어 동경이를 입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은영씨는 “동경이가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구조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착하고 영리한 동경이가 부디 좋은 가족을 만나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구조된 견공, 동경이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희망하시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살 중성화 수컷, 체중 20㎏
-견종 동경이. 성격이 순하며 다른 동물과 잘 지냄.
-배변패드 잘 사용. 잔짖음 없으며 보호자를 금세 잘 따름
■동경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https://forms.gle/rC1nvcEHQ7BNydmL8
■동경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25번째 견공입니다. (99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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