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학언론, 재도약 위해 ‘불씨’들 모였다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2024]
-부대신문, 기자 수 0명에서 96명으로 늘리기까지
-“이번 콘퍼런스 통해 ‘대학언론 리부트’ 실행되기를”
위기의 대학언론을 되살릴 불씨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미디어관에서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불씨’가 열렸다.
대학언론의 위기가 처음 지적된 것은 30년 전이다. 현재도 상황은 좋지 않다. 후임 편집국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예산 부족으로 기자들이 사비를 들여 취재하러 다니는 등 인력난과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대학언론 기자들은 동력을 잃었다.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는 대학언론인들이 위기를 분석하고, 극복 방안이 될 불씨를 찾기 위해 논의의 장을 열었다. 13일까지 총 2회로 구성된 콘퍼런스에는 전현직 대학언론인과 교수 등 업계 관계자 130여명이 참석했다.
콘퍼런스는 고대신문과 비영리 독립언론 대학알리,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가 공동 주최·주관했다. 후원은 쿠키뉴스를 비롯한 구글 뉴스이니셔티브, 교수신문, 아름다운재단, 한국대학신문이 담당했다. 행사는 개회 이후 발제, 위기 주제별 라운드 테이블 토의, 토의 결과 발표, 팀빌딩 순서로 진행됐다.
개회사를 맡은 임예영 고대신문 편집국장은 “대학언론 상황은 매우 처참하다”며 “수도권 대학은 교지 등 자치 언론부터, 지방 대학은 학보사마저 폐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발행 계획과 마감에 치여 어떤 것이 진정한 (기사) 가치인지 논의할 자리는 점점 미뤄졌고, 학교의 예산 삭감과 독자의 무관심 속에서 발행 횟수는 줄어들고 주기도 느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국장은 이러한 위기를 시대적 흐름이라고 여기고 안주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기성 언론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학보사가 타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신문을 발행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안심한 것 아닌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며 “다 같이 해결책을 찾겠다는 공동의 약속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발제는 전현직 대학언론인과 관련 전공 교수들이 △제도권 언론으로서 대학 신문의 역할과 법적 보호 △현장에서 느끼는 대학언론의 위기 △언론사 위기 극복 사례 △대학언론이 나아갈 길 등 네 개 주제로 진행했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의장직을 맡고 있는 김규민 대구대신문 편집국장은 현장에서 겪은 재정 위기 경험을 설명했다. 김 국장은 “올해 구조조정 대상 대학의 70%가 지방대”라며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것이 지방대 학보사 기자들이 하는 일이니 학교에서 지원받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내부 비판 기구나 다름없는 지방 학보사 기자들을 대학 측에서 반가워할 리 없는 상황이다. 그는 “예산이 부족하니 기자들 원고료나 장학금도 턱없이 적고, 취재비는 아예 없는 실정이라 사비로 취재를 다닌다”고 덧붙였다.
부산대학교 언론사 위기 극복 사례를 소개한 황성욱 부산대학교 교수는 “부산대학교 언론사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년6개월 전 부대신문(부산대학교 학보)의 새 기자가 0명을 기록했다”며 “이를 계기로 학보사를 담당하게 됐다”고 전했다.
황 교수가 살펴본 학보사 상황은 심각했다. 같은 학보사 기자끼리도 소통하지 않았고, 중복된 콘텐츠를 만들면서도 서로 협업하지 않았다. 의지가 꺾여 글자만 채우는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도 많았다. 황 교수는 “학교 본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할 사람 없으면 그냥 닫으면 되지’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망해가는 학보를 살리기 위해 팀을 나눠 현황을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추렸다. 그는 “이 과정에서 남은 사람들끼리 ‘우리에겐 학보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며 “이후로도 뉴스레터를 제작하고, 스튜디오도 리모델링해 학생들이 일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 결과 부대신문은 방송과 영자신문을 포함한 3개 학보 채널 기자 96명을 달성했다.
발제 이후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학보사 지원자 중 좋은 기자를 선별하는 방법이 있나’, ‘이원화 캠퍼스는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나’ 등 다양한 질문이 오갔다. 박재영 고려대학교 미디어 교수는 ‘독자가 관심 가질만한 이야깃거리는 어떻게 찾나’라는 질문에 “책을 많이 읽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면서 “하나만 꼽자면 절대로 기성 언론이나 기성 기자가 하는 글쓰기를 답습하면 안 된다”고 전했다. 이어 “글을 매력적으로, 추진력 있게 써야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자들끼리 주제별 그룹을 나눠 토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참여자를 9개 조로 나누어 조별로 다른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별 주제는 △대학으로부터의 예산 삭감 대응 방안 △인력난과 모집 전략 △지방 대학언론의 위기 △내부 조직 운영 △편집권 침해 대응 △독자 소통 및 확보 방안 △법적 이슈 가이드라인 및 대응법 △취재원과의 마찰 및 갈등 해결 방안 △대학언론 비전 설정 등으로 구성했다.
그룹 토의는 100분가량 이어졌다. 참가자는 서로가 가진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며 자유롭게 대화했다.
편집권 침해 대응에 대해 토의한 강석찬 전 숭대시보 편집국장은 “숭대시보(숭실대학교 학보)는 편집권 침해가 크게 있었다”며 “이때 교육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했고, 학교가 했던 거짓말들에 일일이 대응하며 6개월간 싸워 왔다”고 전했다.
강 전 국장은 선례가 생긴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탄압 대응 선례가 없어서 많이 헤맸었다”며 “비슷한 일이 생기면 숭대시보가 한 방법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기성 기자와 비슷한 고민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취재원과의 마찰에 대해 토론한 유정민 수원대학교 학보사 편집국장은 “학생회 비리나 노후 시설을 고발하는 기사를 작성하면 (학생회가) 학보사에 적대적인 감정을 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 국장은 “토의 결과 주요 출입처와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며 “그러나 그런 적대적인 감정을 과하게 신경 쓰지 말고, 취재 내용이 정확하다면 당당해지는 것도 중요한 지점으로 꼽혔다”고 전했다.
행사를 마무리하며 소회를 전한 이은서 대학알리 편집국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대학언론 활동을 하는 기자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오늘 논의된 내용이 해결책으로까지 이어져 대학언론 리부트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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