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교단 난교 파티? 진정한 사랑? [유경희의 ‘연금술의 미술관’]

2024. 1. 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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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해독되지 않는 화가가 있다. 꼭 한번 탐험해보고 싶은 화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 바로 다빈치와 동시대인인 ‘히에로니무스 보스’다.

보스는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강력한 멘토였다.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이브 탕기, 르네 마그리트 등이 그가 낸 수수께끼를 풀고자 열망했다. 환상과 망상이 넘나드는 보스의 세계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는 미스터리 시험 문제였던 것. 어쨌거나 중세 말 환상과 엽기적인 그림으로 알려진 화가 보스는 그림만큼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더욱더 호기심을 자극했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보스가 자기네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여행도 전혀 하지 않았고, 집 밖에 나오는 일도 거의 없었으며, 은둔자처럼 살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쾌락의 정원, 1500년경, 목판에 유채, 2.2m×3.89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알고 보니 비밀스러운 교파 일원

보스(1450년경~1516년)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는 벨기에 국경 지역인 네덜란드에 속한 도시 스헤르토헨보스(‘s- Hertogenbosch)에서 ‘예로엔 판 아켄(Jeroen van Ake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이름에서 보이듯 선조는 독일의 아헨(Aachen) 출신인 것으로 짐작되며, 화가였던 조부 때부터 스헤르토헨보스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향 이름을 따 보스를 성으로 사용했다.

주지하듯 그의 인생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극히 적다. 그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부유하고 지체 높은 여성과 결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정도다. 자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림으로 생계를 도모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족한 지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말년에는 종교화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고, 그림이 판화로 복제돼 퍼져 나가는 등 화가로서의 명예도 누렸다.

먼저 서양 미술사 최고의 문제작 ‘쾌락의 정원(1500년경)’ 속을 탐사해보자. 스페인의 엘진마블(네덜란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걸작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프라도 미술관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로 불리는 ‘쾌락의 정원’을 제대로 파고들기 위해서는 족히 일 년은 필요할 것이다. 이 삼면화는 천국-현세-지옥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중앙 패널이다. 인간은 희귀한 피조물, 놀이동산의 기구 같은 다양한 조형물, 딸기와 꽃 그리고 부엉이와 물고기 같은 동식물은 물론 정체 모를 동식물과 함께 섞여 있다. 오직 나체의 젊은 남녀 수백 명이 등장한다. 그들은 얽히고설켜 온갖 유사 성행위처럼 보이는 행위를 하는 등 대부분 쌍쌍이거나 군집을 이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이 패널은 통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저 죄를 짓고 있는 인간의 타락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한 미술사가는 보스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이 그저 인간의 죄악을 낱낱이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비밀 종교 단체의 이상향을 그린 것이라고 봤다. 사실 자유사상가였던 보스는 당시로서는 이단인 ‘자유정신형제자매회’라는 교파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아담의 자손’이라고 불렸는데, 원죄 이전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아담과 이브처럼 살고 싶어 했다. 따라서 그들은 비밀 장소에 모여 종교 의식을 거행했는데, 바로 그 의식이 평등한 남녀 관계와 자연에 반하지 않는 부끄러움 없는 성관계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바로 집단 성교와 같은 성적 난교를 통해서 말이다. 마치 섹스를 통해 열반에 드는 힌두교의 에로틱 조각상처럼 그들 역시 이런 성관계를 기도의 일종으로 간주했다. 혹자는 환각 상태에서 환상을 그린 것이라고도 한다. 네덜란드가 환각 성분이 있는 대마, 아마를 재배해 수익을 거둔 나라임을 감안하면 이 또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금도 마약을 허용하는 네덜란드가 아닌가!

또 하나의 궁금증은 보스가 이런 기괴하기까지 한 엄청난 이국적 동식물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아마 당대 유행하던 동물 우화집과 더불어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쏟아져 들어온 동식물의 범람 덕분일 것이다. 당대 브뤼셀 가우덴베르크 대공의 영지에 조성된 동물원에서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신대륙으로부터 동식물이 들어왔고, 살아 있는 자연의 백과사전을 체험하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로 연일 대만원이었다. 보스가 자기 동네를 떠난 적이 없다 해도 순회하는 서커스단을 통해서든, 영주의 소규모 동물원을 통해서든, 혹은 타인에게 전해들은 것이든, 직간접적으로 관찰하고 스케치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보스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기린 등의 이국 동물은 실물과 거리가 멀어 보이며, 생소한 하이브리드적인 동물도 다수 등장한다.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오른편 지옥이다. 당대는 지옥에 떨어질 일곱 가지 대죄(교만, 인색, 시기, 분노, 색욕, 탐욕, 나태)로도 부족하다는 듯이 온 세상의 죄악을 하나씩 늘어놓고 분류하고 지적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당시 이런 치욕적인 죄악의 목록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합당한 형벌을 적용하는 일을 담당하는 성직자도 있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성직자의 타락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던 시기였다. 그런 까닭에 보스의 그림에는 수녀복을 입은 돼지 등 성직자의 부패를 비판하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종교개혁(1517년)이 멀지 않은 시점이었다. 특히 스헤르토헨보스는 마을 인구에 비해 성직자 수가 비이상적으로 많았다. 열 명 중 한 명이 사제, 수녀, 신학생, 수도사, 주교 혹은 성당의 참사원이었다. 그렇기에 성직자가 소속된 교회나 수도원은 서로 경쟁해야 했을 것이다. 면죄부가 생겼던 하나의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보스는 작품의 모델로 성직자들을 대대적으로 등장시켰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또 한 가지! 이토록 이단적인 ‘쾌락의 정원’을 누가 주문했냐는 것이다. 현재로선 나사우 가문의 백작(삼촌과 조카 사이인 엥헬브레히트 판 나사우 2세 혹은 헨드릭 판 나사우 3세 중 한 명이 주문했을 것으로 추정)이 거금을 주고 주문했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나사우 3세는 눈요기와 서사를 모두 담고 있는 이 그림을 자신의 브뤼셀 궁정에 걸어놨고, 귀족 친구들을 불러 이를 토론의 주제로 삼았다. 브뤼셀의 고위 귀족들은 이런 유의 그림을 매우 좋아했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들은 독창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천국과 지상 세계와 지옥을 두루두루 섭렵했다. 놀랍도록 넘치는 상상력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깨알 같은 세밀함에 엄청나게 자극받았다. 더욱이 그들은 지적인 사람들이었으므로, 권력의 무상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 그림을 통해 ‘메멘토 모리(memento-mori)’ 즉 ‘죽음(헛됨)’을 기억했을지도. 어쩌면 그들 역시 자유정신형제자매회가 추구하는 아담의 자손처럼 잠시나마 짜릿한 자유를 맛봤을지도 모른다. ‘메멘토 모리’의 핵심은 ‘카르페 디엠’이니까! 즉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죽음을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시계 방향 순서로 중앙 패널, 오른쪽 패널 지상 세계 중 세부.
유경희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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