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기소권 없는 사건에서 공수처는 검사일까 경찰일까

이병한 2024. 1. 1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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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요구 → 반송 → 접수거부... 12일 검찰-공수처 갈등 표출의 이면

[이병한, 선대식 기자]

 갑자기 공개 표출된 검찰과 공수처의 공방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서 공수처의 위상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볼 수 있다. 사진은 지난 2022년 8월 26일 과천 청사에서 열린 공수처의 새 로고 현판 제막식 모습이다.
ⓒ 연합뉴스
 
감사원 간부 뇌물 혐의 사건을 둘러싸고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2일 공개적으로 갈등을 표출했다. 표면적으로는 보강수사를 두고 서로 떠넘기는 모양새이지만, 이면에는 공수처에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서 공수처의 위상을 둘러싼 힘겨루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가 수사를 통해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구했던 '감사원 3급 간부 뇌물수수 사건'을 검찰이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돌려보내자, 공수처가 "유감"이라며 "접수 거부"를 선언하고 맞섰다. 그러자 검찰이 다시 공수처를 공개 비판했다. 이 모두 12일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다.

공수처가 공소제기를 요구한 사건을 검찰이 기소/불기소 판단하지 않은 채 수사가 부족하다며 이송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안 그러다가... 기소·불기소 판단 않고 공수처에 돌려보낸 검찰

뇌물(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혐의를 받는 감사원 3급 간부 김아무개씨를 수사해온 공수처는 지난해 11월 24일 공소제기를 해달라면서 사건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보냈다. 공수처는 판사·검사·경무관 이상 경찰에 대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고위공무원에 대해서는 수사권만 가지고 있다.

그로부터 50일가량 지난 후인 12일 오전 검찰은 특별한 자체 수사를 하지 않고, 기소/불기소 여부도 판단하지 않은 채 사건을 공수처로 되돌려보냈다. 핵심은 공수처에서 추가 수사를 하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언론에 "해당 사건을 형사5부에 배당하여 송부된 수사기록의 증거관계와 법리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현재까지의 공수처 수사 결과만으로는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에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 수집과 관련 법리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수처의 법률적 지위와 성격을 고려하면 검찰에서 별도의 증거 수집이나 법리검토를 진행하여 범죄 혐의를 재검토하고 판단·결정하기보다는 공수처에서 추가 수사를 진행하여 증거를 수집하거나 법리를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21년 1월 공수처 출범 이후 공수처가 공소제기를 요구하며 보낸 사건에 대해 검찰은 기소든 불기소든 결정을 내렸다. 조희연·김석준 교육감의 해직교사 채용 사건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공소제기를 결정해 재판이 진행중이고, 고발사주 사건에서는 공수처가 손준성 검사를 기소하면서 김웅 의원에 대해서는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청했지만 검찰은 자체 판단을 통해 불기소했다.

접수 거부한 공수처 "검찰의 이송은 비법률적 조치"
 
 공수처법을 만들 때 관여한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은 예전부터 '공수처가 수사와 기소를 모두 할 수 있는 사건에서는 공수처는 검사의 지위가 맞지만, 수사만 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냥 경찰이다'라는 주장을 해왔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검에 걸린 검찰 깃발 모습이다.
ⓒ 연합뉴스
 
검찰의 사건 반송에 공수처가 "접수를 거부하기로 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혀며 갈등이 표출됐다.

이날 오후 공수처는 "헌법재판소 판례(2021년 1월 28일)에 따라 검사로서의 법적 지위가 확립된 공수처 검사는 공수처법에 따라 해당 사건을 수사한 뒤 검찰에 공소제기 요구를 하면서 사건 수사기록과 증거물 등 일체를 검찰로 송부한 것"이라며 "검찰은 공수처가 공소제기 요구한 해당 사건에 대하여 자체 보강수사를 거쳐 기소·불기소 처분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수처는 검찰의 사건 이송이 어떤 법률적 근거도 없는 조치라고 판단해 접수 거부를 결정했다"라며 "어떤 사전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률적 근거도 없는 조치를 한 검찰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지적했다.

공수처의 반응에 검찰도 공개 대응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법률적 근거가 없는 조치라는 지적에 "검찰은 수사준칙 제18조 제2항에 따라 다른 수사기관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때에 사건을 공수처 등 다른 수사기관에 이송할 수 있으며,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에서도 다른 수사기관으로부터 이송받은 사건을 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에서 공수처가 청구했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는 점을 은근히 지적하면서 "검찰은 공수처의 법적 지위를 고려하여 공수처에서 자체적으로 증거관계와 법리를 재검토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다시 사건을 이송한 것임에도 공수처에서 검찰의 이송사유 확인도 없이 접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공수처의 법적 지위" 계속 명시한 검찰과 "헌재 판례" 언급한 공수처의 속내

갑자기 공개 표출된 검찰과 공수처의 공방은 표면적으로는 보강수사를 어디에서 하느냐를 둘러싼 갈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서 공수처의 위상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볼 수 있다. 검찰이 발표한 두차례 입장에서 계속 '공수처의 법적 지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공수처가 헌재 판결을 가져와 '검사로서의 법적 지위'를 언급하는 것에서 양 기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공수처법을 만들 때 관여한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은 예전부터 '공수처가 수사와 기소를 모두 할 수 있는 사건에서는 공수처는 검사의 지위가 맞지만, 수사만 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냥 경찰이다'라는 주장을 해왔다"면서 "지금 표출된 갈등은 검찰이 그런 해석에 맞게 움직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공수처장이 사실상 공석이고, 또 차기 처장 후보로 유력하게 꼽히는 사람이 과거 공수처를 '괴물 기관'이라며 부정적이었던 사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서는) 공수처는 단지 경찰일 뿐이라는 위상을 명확히 정립하고 싶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정부에서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남준 변호사는 "공수처가 기소권은 없고 수사권만 행사할 경우에는, 물론 영장청구권이 있어서 경찰과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검찰과의 관계에서 사법경찰의 역할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서 "이번처럼 둘 사이에 정리가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법률적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법률적 공백 또는 미비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며 "결국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행사할 수 있도록 해놓아야 문제가 안 생긴다"고 말했다.

한편 두 기관의 갈등으로 인해 '감사원 3급 간부 뇌물수수 사건'은 중간에 붕 뜬 상황이다. 공수처는 김씨가 2013년 2월 전기공사 업체를 차명으로 설립해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건설·토목 기업으로부터 하도급 대금 명목으로 약 15억8000만 원의 뇌물을 받고, 이들 기업의 사업 수주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감사원 감사 대상인 정부부처 공무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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