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정밀 타격’ ADC…바이오 게임 체인저 [스페셜리포트]
“올해 말 ADC(항체약물접합체)를 상업 생산하는 공장을 가동하겠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4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에서 한 얘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3조6000억원대 매출(연결 기준 전망치)을 기록했다. 수주 잔액도 두둑하다. 지난해에만 3조5000억원대 물량을 확보해 전년 대비 2배 늘렸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차기 먹거리로 무엇을 타깃으로 삼을까 주목했는데 그 답은 ‘ADC’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뿐 아니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JPMHC에서 ADC 생산시설을 내년 1분기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완제품까지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굉장히 많다”며 “내년 1분기 미국에서 ADC 공장 가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호탄 쏘아 올린 ‘엔허투’
최근 바이오업계 대표적인 성장 키워드 중 하나가 ADC라는 데 이견이 없다. ADC는 한마디로 유도탄 방식으로 약물을 직접 전달한다. 암세포를 찾으려는 ‘항체(Antibody)’에, 특정 암세포 항원 단백질을 공격하는 ‘저분자 세포독성약물(cytotoxic Drug)’을, ‘화학적 결합(Conjugation)’ 시킨 구조다. 그래서 이름이 ADC다. 항체가 약물을 암세포까지 유도한 뒤 선택적으로 공격하기에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만 공격한다. 기존 화학 요법 대비 효능을 높이고 약물 독성을 줄이면서 정상조직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항암 치료제로 불린다.
특히 난이도 높은 고형암 치료법으로 각광받는다. 고형암은 백혈병 등으로 대표되는 혈액암 대비 상대적으로 치료가 어렵다고 알려졌다. 혈액암은 주사를 놓을 경우 혈액이 몸 전체를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세포들을 죽인다. 반면 고형암은 특정 부위에만 종양이 있어 약물이 도달하기가 어렵다.
ADC 패권 전쟁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일본 다이이찌산쿄가 촉발했다. 2022년 열린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ADC 항암 신약 ‘엔허투’의 유방암 환자 대상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했다. 암 치료 효과에서 획기적인 성능을 보이자, 현장에선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엔허투는 출시 3년 차인 지난해 매출액 25억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도 가장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전문의약품으로 꼽힌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ADC 개발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57개 새로운 ADC가 초기 개발 단계인 임상 1상에 진입했다. 전체적으로는 249개 ADC 관련 임상이 진행 중이다. 화이자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마일로탁이 200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를 받은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승인된 ADC 품목은 총 15개다.
시장 전망은 장밋빛이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ADC 시장은 2023년 97억달러에서 연평균 15.2%씩 성장해 2028년이면 19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3대 종양올림픽으로 꼽히는 AACR(미국암연구학회) 2023에서는 ADC 관련 초록만 142편이 발표될 정도로 주목받는다.
한파에도 빅파마 수십조원 턱턱
화이자, 430억달러 M&A로 공략
빅3 빅파마는 될성부른 ADC 떡잎 찾기에 적극 나섰다. 2023년 3월 시젠을 인수하며 ADC 플랫폼을 확보한 미국 화이자가 대표적이다. 화이자의 이번 시젠 딜 규모는 430억달러에 이른다. 제약바이오 인수합병(M&A) 역사상 역대 세 번째에 해당한다. 시젠은 림프종 ADC 신약 아드세트리스를 보유했다.
MSD(미국 머크)는 중국 켈룬바이오테크와 7개 ADC 후보물질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며 94억7500만달러를 투입했다. 독일 머크 역시 미국 머사나테라퓨틱스의 ADC 플랫폼을 8억달러에 인수했다.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은 지난해 12월에만 중국 두 기업으로부터 ADC 파이프라인 글로벌 판권을 84억달러에 사들이며 빅파마의 ADC 파이프라인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암젠은 ADC 기술 확보를 위해 네덜란드 바이오 기업 ‘시나픽스’와 20억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시나픽스 ADC 플랫폼 기술은 항체에 정확한 숫자의 약물을, 정확한 위치에 접합시키는 ‘위치 특이적 결합방법(site-specific conjugation)’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애브비는 ADC 개발사 이뮤노젠을 101억달러에 인수했다. 일라이릴리는 독일 ADC 개발 기업 이머전스테라퓨틱스와 프랑스 마블링크를 인수했다.
이선경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8~2023년 거래된 ADC 딜은 총 150건”이라며 “이는 2015년 전후 면역항암제 계약 건수와 유사한 수준으로 ADC 분야의 추가적인 대형 기술 이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韓 ‘레고켐’ 2.2조원 빅딜 ‘잭팟’
피노바이오·알테오젠·인투셀 주목
국내 바이오텍들도 적극적으로 ADC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 ‘잭팟’을 터뜨린 곳은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12월 ADC를 활용한 기술을 얀센에 이전했다. 선급금이 1억달러(약 1300억원)에 달한다. 단독 개발 권리 행사금 2억달러, 개발·허가·상업화 성공 시 발생하는 단계별 마일스톤을 포함해 총 계약 규모는 최대 17억달러에 이른다. 선급금과 수출 규모 모두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사상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기술 거래였다.
얀센에 기술 이전된 파이프라인은 LCB84(Trop2-ADC)다. 레고켐바이오의 차세대 ADC 플랫폼과 메디테라니아로부터 기술 도입한 Trop2 항체가 적용된 ADC 후보물질이다. 최근 미국에서 임상 1·2상에 진입했다. 다른 경쟁 약물과 달리 암세포에만 특이하게 발현하는 잘린 형태 Trop2 항원을 타기팅한다는 차별점을 갖고 있다. 레고켐바이오는 2022년 12월에도 1조6000억원 규모 플랫폼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는 “레고켐의 첫 단독 임상 개발 ADC 약물인 LCB84에 대해 얀센과 협력하게 돼 기쁘다”며 “후속 ADC 프로그램의 임상 단계 진입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2017년 설립된 피노바이오는 ADC 플랫폼 ‘PINOT-ADC’를 보유한 바이오텍이다. 1·2세대 ADC 신약은 독성 높은 톡신을 페이로드(화학 항암제)로 사용해 안전성 우려가 컸다. 3세대로 넘어오면서 ‘캠토테신’ 계열 약물 활용 사례가 늘고 있다.
캠토테신 계열은 자연에서 나온 항암제 물질로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고, 항체당 약물 접합 개수(DAR)도 늘릴 수 있어 주목받는다. 피노바이오의 PINOT-ADC가 ‘캠토테신’을 겨냥한 플랫폼이다. 특히 PINOT-ADC는 페이로드의 ‘바이스탠더(인접 종양세포 사멸)’ 효과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바이스탠더는 암세포 속으로 침투한 페이로드가 주변으로 퍼져 타깃 근처의 암세포까지 연이어 제거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성과는 계약으로 이어졌다. 피노바이오는 지난해 12월 미국 바이오텍 컨쥬게이트바이오와 10개 약물을 타깃으로 하는 ADC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피노바이오가 약물과 링커를 공급하고 컨쥬게이트바이오가 타깃 선정과 항체 개발·합성·평가 등을 맡는 방식이다. 총 계약 규모는 선급금 포함 2억5000만달러(약 3200억원)다. 피노바이오는 2022년 10월 셀트리온과 총 15개 타깃에 대한 ADC 플랫폼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12월 안국약품과 공동 개발 업무 협약을 맺었다. 이후 지난해 4월 안국약품은 피노바이오에 전략적 투자도 단행했다.
2015년 설립된 인투셀도 주목받는 ADC 바이오텍이다. ADC 핵심 요소인 링커 부문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했다. 지난해 1월에는 스위스 ADC테라퓨틱스와 ADC 플랫폼 물질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인투셀이 개발한 링커를 ADC테라퓨틱스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ADC 공동 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인투셀이 링커 등을 제공하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최대 5개 항암 타깃 ADC 물질을 제조하는 방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첫 국내 기업 공동 연구 계약 건이기도 하다.
2008년 설립된 알테오젠은 한 단계 뒤를 내다본다. 정맥주사(IV) 제형의 단백질 또는 항체의약품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변경하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알테오젠은 ADC SC 플랫폼 기술 개발에 나섰다. 현재 개발된 ADC 제품은 대부분 IV 제형으로 SC 제형 제품은 전무하다.
통상 신약·치료제의 경우 IV 제형보다 SC 제형이 선호된다. 투약 시간이 절반 수준으로 단축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다.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는 지난해 9월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위크에서 “2028년까지 ADC SC 제형을 시장에 내놓는 게 목표”라며 “SC 형태로 바꾸면 환자의 편의 증진은 물론이고 ADC가 가진 내재적인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ADC 패러다임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설 확보 나선 삼성·롯데
ADC 관련 신약 개발 붐이 일자 위탁생산을 담당할 CDMO 기업도 역량 확보에 나섰다. 상업 생산시설이 부족한 기업들이 ADC 관련 개발·생산을 위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바이오업계에서는 5년 뒤 CDMO 시장 선두권 승부는 ADC 등 차세대 기술 위탁생산량으로 갈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CDMO 부문 글로벌 1위 자리를 노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ADC에 뛰어든 배경이다. 존 림 대표는 지난해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ADC CDMO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ADC 계획은 보다 구체화됐다. 올해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인천 송도에 ADC 전용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현재는 항체(mAb)만 생산 중이지만 전용 시설 설립 후에는 링커 기술과 결합(Conjugation) 기술도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미 ADC 역량을 입증한 바 있다. 2020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펩트론의 ADC 치료제에 쓰이는 항체 ‘PAb001-ADC’를 위탁 개발했다. 펩트론은 이듬해 PAb001-ADC를 중국계 제약사에 5억4000만달러 규모에 기술 이전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길리어드 자회사 이뮤노메딕스의 ADC 치료제 ‘트로델비(사시투주맙 고비테칸)’에 사용되는 항체 ‘hRS7’을 인천 송도 공장에서 생산했다. 트로델비는 2022년 연 매출액 6억8000만달러를 거두는 등 출시 이후 별다른 공급·품질 이슈 없이 안정적으로 시장에 자리 잡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ADC 관련 기술에도 투자한다. 지난해 4월에는 독자적인 ADC 링커 기술을 갖춘 스위스 아라리스바이오텍과 손잡았다. 아라리스는 여러 공정을 거칠 필요 없이 단일 공정만으로 항체와 결합이 가능한 ‘아라링커’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지난해 9월에는 다수의 ADC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국내 바이오 기업 ‘에임드바이오’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2022년 7월 출범한 CDMO 후발 주자 롯데바이오로직스도 ADC CDMO를 겨냥한다. 올해 4분기 완공 예정인 미국 시러큐스 공장 내 ADC 설비를 갖추고 2025년 본격 생산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국내 바이오텍 ‘카나프테라퓨틱스’와 ADC 플랫폼 구축 위탁 연구·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하는 등 관련 기술력 확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10년 뒤 목표치로 제시한 매출 1조5000억원의 10%가량이 ADC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그룹의 CDMO 업체 SK팜테코도 ADC에 뛰어들었다.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로 확보한 6000억원 등을 ADC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연태 SK바이오투자센터장은 지난해 10월 세계의약품전시회(CPHI 2023)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ADC 위탁생산 기초 체력을 길렀다면, 앞으로는 또 다른 차원의 싸움을 위해 사업 확장과 기술 등을 챙기는 단계”라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국내 CDMO 업체들의 ADC 진출은 뒤늦은 게 사실이다. CDMO 시장점유율 1위 스위스 론자는 이미 ADC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오랜 업력을 앞세워 일찌감치 ADC 위탁생산에 관심을 보인 덕분이다. 2022년 기준 글로벌 ADC 생산량 중 절반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론자는 현재 수준에 만족 못하는 눈치다. 지난해 6월 네덜란드 ADC 개발 기업 시나픽스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수 금액은 마일스톤(조건부 지급)을 포함해 총 1억6000만유로(약 2200억원) 규모다. 현금 1억유로(약 1374억원)를 우선 지급하고, 향후 성과에 따라 6000만유로(약 823억원)를 추가 지급하는 구조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3호 (2024.01.17~2024.0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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