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바둑 다음날 주검으로 발견된 이웃…법정서 펼쳐진 유무죄 다툼

A씨 집 거실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돼
검찰 "술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며 책임 회피"

이웃인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다 바둑을 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한 사람이 죽었다. 검찰은 같이 바둑을 둔 60대 남성을 범인으로 보고 있지만, 이 남성은 살해 동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사건은 지난해 7월 8일 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A씨 주거지에서 일어났다. 같은 건물에서 각각 홀로 지냈던 60대 A씨와 50대 B씨는 이날 처음 만나 식당에서 소주 3병을 나눠 마셨다. 이어 이들은 A씨의 주거지로 자리를 옮겨 술과 마시며 바둑을 두었다.

이웃인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다 바둑을 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한 사람이 죽었다. 검찰은 같이 바둑을 둔 60대 남성을 범인으로 보고 있지만, 이 남성은 살해 동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출처=아시아경제DB]

다음날 B씨는 A씨의 주거지 거실에서 가슴과 목 등 9곳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쓰러져 있는 B씨를 발견한 A씨는 건물 2층에 있는 주인집에 올라가 직접 신고를 부탁했다. A씨 주거지에서 B씨가 발견된 만큼, 경찰은 함께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둔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웃으로부터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진술도 받았다.

검찰 또한 A씨가 자신의 주거지에서 B씨와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두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리치며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른 것으로 보고 A씨를 기소했다. 부검 결과 B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항거 불능 상태로 볼 수 있는 0.421%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피고인 측 "살해 동기 없다"며 무죄 주장

11일 제주지검은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A씨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특별한 관계가 없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벌어진 사건으로, 피해자가 사망해 진술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해치사와 여러 차례의 폭력 전과가 있음에도 알코올 관련이나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아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A씨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A씨 변호인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과 피해자는 사건 당일 처음 만나 화기애애하게 식사하며 술을 마시며 바둑을 뒀을 뿐 살해 동기가 전혀 없다"고 변론했다. 또한 "검찰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해당 건물 거주자 진술을 근거로 범행 시각을 특정했으나 시간에 대한 진술이 정확하지 않으며, 제출된 CCTV 영상만으로는 건물 출입 사항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어 제삼자 출입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최후변론에서 "지금도 너무 무섭다. 자고 일어났는데 사람이 죽어있었고, 무서워서 휴대전화를 찾다가 2층 집주인에게 가서 신고 좀 해달라고 했다"며 "제 결백보다도 같이 술을 마셨던 분이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선고 공판은 다음 달 열릴 예정이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