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이충재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윤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본인은 이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
ⓒ 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이 한 말을 손바닥 뒤집 듯하는 언행불일치는 대통령 취임 이후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검찰총장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이미 분명히 드러났다. 복수의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따르면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네 명의 검찰총장 후보 가운데 검찰개혁을 가장 강력히 지지한 인물이다. 면접 때는 검찰 조직 내의 반대 정서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에 적극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표변했다. 검찰 입장을 대변하며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반대로 돌아섰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검찰권 강화 등 '검찰공화국'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윤 대통령이 남긴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의 바로 앞 대목이 "나는 조직을 사랑한다"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가 검찰을 이 나라 정치 권력의 중심에 놓기 위해 대통령이 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신의 사익이나 검찰 출신 패거리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의 일상화된 표리부동
윤 대통령이 취임 20개월 동안 쏟아낸 거짓말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당무관여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고는 뒤로는 여당 대표를 연거푸 쫓아냈다.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외치지만 민주화 이후 요즘처럼 언론이 탄압받는 시대는 없었다. 역대급 정실 인사를 해놓고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했던 궤변이 요즘의 인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자기분열적 행태는 총선을 앞두고 극한으로 치닫는다. 서민을 위한다며 부자들 세금을 못 줄여줘 안달하고, 건전재정 한다면서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과학을 지원하겠다며 과학예산을 깎고, 청소년을 돌보겠다면서 청소년 예산을 깎았다. 시장 경제를 강조하면서 기업들의 팔을 비틀고 겁박하기 일쑤다. 이전 정부를 포퓰리즘 정부라고 비난하더니 이제 아예 내놓고 포퓰리즘을 자랑하는 꼴이다.
정치인이 아니라 일반인도 통상 말을 바꾸면 사과를 하거나 설명이라도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는 그런 과정이 없다. 언행불일치가 그만큼 일상화되고 습관처럼 굳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니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아랫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대통령 말이 바뀔지 모르니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국정은 뒤죽박죽이고, 총선이 끝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윤 대통령의 표리부동은 제 식구 감싸기에서 절정에 이른다. 자신의 배우자 문제에 관해서는 윤석열표 '공정과 상식'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김건희 특검법'이 도착하기 바쁘게 거부권을 행사해놓고 여태껏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대선 당시 본인의 입으로 "특검을 왜 거부하나.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기개는 어디로 갔는지 묻고싶다.
윤 대통령은 침묵으로 궁지를 모면하면서 대신 남들에게 악역을 맡겼다. 임시국무회의에서 거부권 안건을 의결한 사람은 국무총리고, 거부권 행사 이유는 비서실장 입을 빌렸다. 대통령실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방어막을 친 곳은 법무부다. 이들이 대통령 배우자의 비리와 관련이 있을리 없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의 약속은 거짓말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한 셈이다.
현직 대통령 가족 비리 의혹과 관련한 특검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막아선 것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가족 비리에 한마디 사과도 않고 시치미를 뗀 것도 윤 대통령이 유일하다.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인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팻말은 허언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지도자의 위선과 거짓을 국민은 꿰뚫어 본다. 지금 우리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통령의 모습을 생생히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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