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각제까지 말한 尹 "시간 끄는 관료 보신주의, 혁신하라"
집권 3년 차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이 관료들의 복지부동 세태를 지적하며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대통령실은 이른바 ‘관료주의 카르텔’ 혁파를 올해 핵심 국정 과제로 추진할 전망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수석비서관회의와 주례회동을 주재하며 “대통령 단임제에선 정부가 5년마다 바뀌니 공무원이 적당히 시간만 끌며 움직이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차라리 내각제에선 정치 세력 교체와 상관없이 차관 중심으로 관료주의가 작동해 효율적이고, 미국은 집권 세력과 고위 관료가 한 몸으로 움직인다”며 “보신주의에 빠진 관료주의 시스템에 대한 혁신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1일 “올해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은 ‘행동하는 정부’로, 관료사회를 움직이게 할 당근과 채찍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관료주의 혁파에 나선 건 총선을 앞두고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정책 성과가 부족하다는 답답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최근에도 수석들에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산업단지 사례를 언급하며 “중국을 탈출한 기업들은 당장 머물 곳이 급한데, 시와 구청별로 산업단지 업무 창구가 제각각이라 속도가 느리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올해 들어 윤 대통령은 관료사회에 대한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8일 주례회동에선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부처 칸막이를 허물고 협력을 활성화해달라”고 지시했다. 부처 이기주의를 타파하라는 것이다. 9일 국무회의에선 젊은 세대의 호응이 큰 충주시 유튜브 ‘충TV’를 언급하며 “국민이 몰라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 정책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부처 간 이기주의 역시 하나의 카르텔”이라며 “과제에 따라 부처가 협업하는 태스크포스(TF) 중심의 업무 체계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부처 간 인사 교류 강화와 협의회 설립, 성과 중심의 승진 및 인센티브 체계 정착을 추진 중이다. 당근으로는 내달 설 특별사면을 통해 공무원의 징계(경징계·견책) 이력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어 성공한 해외 사례를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내에선 마음이 급한 윤 대통령과는 달리 각 부처가 여전히 기존 관행에 머물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대표적 사례가 ‘민생경제’와 ‘국민이 바라는 주택’ 등 매주 주제별로 윤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토론회다. 부처별 업무보고 대신 주제별로 부처가 협업해 진행하는 토론회 형식을 택했지만, 여전히 부처 시각에 머문 토론자료가 대통령실에 보고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민생토론회와 관련해 원점 재검토 지시를 받은 부처가 여럿”이라며 “아직도 윤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료주의에 답답함을 토로한 건 윤석열 정부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였던 2019년 5월 버스노조 총파업 사태 당시 당·정·청 회의에서 만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대화를 나누다 언론에 공개된 일화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원내대표가“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 한다.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하고”라고 말하자 김 정책실장은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부처 내에선 대통령실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한국거래소를 찾아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이후 관심은 금투세와 연계된 증권거래세에 쏠렸는데, 기획재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못 내놓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와 당내에서도 금투세 폐지 시점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며 “충분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 아니겠냐”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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