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국방 "러시아, 북한에 전차 신기술까지 제공 가능성"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포탄·탄약 지원을 대가로 핵잠수함이나 위성 등 전략무기 관련 기술을 전수받을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재래식 전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 지원까지도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러 간 ‘불법 거래’의 범위가 확대되고 층위도 다양해질 수 있다는 취지다.
신 장관은 1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반도평화만들기 재단(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주최 ‘2024년 1차 한반도 전략대화’에서 “첨단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지상무기 중에선 전차와 관련된 러시아의 여러 신기술이 북한에 제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고도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위성과 핵·미사일 등 기술 외에 이들 재래식 전력과 관련한 러시아의 기술 전수 가능성을 군 당국이 시사한 건 처음이다. 북한이 핵 전력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러시아의 조력을 구할 가능성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는데, 포탄을 대가로 핵 관련 기술을 전수하는 건 등가성이 맞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가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동시에 나왔다.
하지만 재래식 무기 관련 기술이라면 이런 러시아의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 신 장관의 발언도 양측의 군사 협력이 가능한 데서부터 차곡차곡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말연초 “한국 영토 점령” “초토화” 등을 위협하는 가운데 재래식 전력의 수준 향상은 한국에 직접적 위험이 될 수 있다.
신 장관은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의 경우 지난해 두 차례 실패 후 세 번째 시도 만에 위성체를 우주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한 것과 관련, 러시아의 조력 가능성을 주목했다. 실제 러시아 기술진이 북한에 파견돼 기술 자문에 나선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신 장관은 “북한의 1차 정찰위성 발사 당시 추락한 잔해물을 수거해 분석했더니 철새를 찍는 수준의 디지털 카메라를 실어서 올렸다”며 “그 수준은 지금도 크게 벗어난 것 같진 않지만, 앞으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위성체 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또 양측의 군사 협력을 양과 질의 교환 관계로 평가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군사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 기술을 받으면, 러시아는 북한의 도움으로 군수 물자의 양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신 장관은 “작년 말까지 컨테이너 약 5000개 분량으로 152㎜ 포탄 기준으로 약 230만발, 122㎜ 방사포탄 기준으론 약 40만발 분량이 러시아로 향했다”며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수십 발도 러시아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2022년 4월 처음 시험발사한 사거리 100~180㎞의 신형 근거리 탄도미사일(CRBM)이 러시아로 수출될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수위 높은 대북 경고 메시지도 내놨다. 신 장관은 지난해 9월 창설된 드론작전사령부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아무리 방패가 두꺼워도 날카로운 창이 없으면 억제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무인기로 다시 한 번 도발을 벌인다면 군도 해당 사령부를 통해 무인기라는 ‘창’으로 응징하겠다는 취지다.
신 장관은 “북한이 우리 수도를 무인기로 찍으면 우리도 평양을 찍어 만천하에 공개할 준비가 돼 있다”며 “북한 무인기를 상당 부문 떨어뜨릴 수도 있어 김정은 정권으로선 망신살이 뻗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지난 2022년 12월 북한의 무인기 도발 뒤 우리 군은 무인정찰기를 군사분계선(MDL) 이북으로 보내 대응했는데, 공식 발표 전까지 북한은 침투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신 장관은 또 연일 수위를 높여가는 북한의 대남 엄포가 실제로는 내부를 향하고 있다고 봤다. 김정은이 체제에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쟁 준비 등을 입에 올리고 있다는 뜻이다. 신 장관은 “결국 주민을 향해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는 게 북한 강경 노선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봤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원칙적·비례적 대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한이 연초부터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수용적이고 관여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강대강으로 나가면 국민이 불안해질 수 있으며 안보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프레임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일 간 안보협력을 위해 외교·국방(2+2) 회담 등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제안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미·일 3국 모두 국내정치를 이유로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한 약속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으니 빨리 제도화하고, 가시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략대화에서는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으로 불리는 최근 군 당국의 응징 3원칙이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최근 담화에서 이를 “즉사·강제죽음·끝장”으로 바꿔 비유하며 비꼬았는데, 이 자체가 북한이 즉·강·끝 원칙을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신 장관은 “불편한 진실을 앞에 두고 한 번쯤은 벼랑 끝에서 용기, 끈기,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오늘 밤의 단잠을 위해 미래의 악몽을 교환하지 말자’는 데 국방부 장관만큼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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