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갔다가 '마약 거물' 됐다…'파란 명찰방'의 악순환

김정민 2024. 1.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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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캄보디아에 체류하며 마약을 대량 밀반입·유통한 혐의로 강제송환된 송모씨. 사진 서울경찰청.

시가 623억원 상당의 필로폰 18.7kg을 국내에 들여와 전국에 유통한 혐의로 인터폴에서 적색수배했던 마약조직 총책 송모(53)씨가 지난해 11월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송씨는 캄보디아에 머물며 중국·나이지리아 등 해외 지역책들과 공모해 한국에 마약을 밀반입하고 유통·판매를 지시한 거물이었다. 그가 4개국을 아우르는 마약계 거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건 교도소 내 이른바 ‘파란 명찰방’에서 구축한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과거 마약 밀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는 서울구치소·경북북부교도소 등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다른 마약 사범들과 친분을 쌓았다. 교도소 동기들로부터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마약 밀수 루트를 공유 받고, 신종 마약을 구해 유통하는 노하우도 배웠다.

출소 후엔 교도소에서 구축한 마약 네트워크를 본격 활용했다. 캄보디아로 향한 A씨는 교도소 동기에게 소개받은 중국인 마약상과 공모해 대규모 마약 밀반입 계획을 세웠다. 국내 유통과 판매는 교도소 동기 6명을 중심으로 판매책 37명에게 역할을 나눠 맡겼다. 수감 기간을 거쳐 교화되기는커녕 두세 단계 진화한 마약 카르텔 수장이 된 셈이다.


‘파란 명찰’들만 모인 마약방서 정보·노하우 공유


마약사범은 교도소에서 파란 명찰을 부착시킨 뒤 일반 재소자들과 분리 수용한다. 사진 슬기로운감빵생활 스틸컷
교도소에서 마약 사범 재소자들만 별도 수감된 파란 명찰방이 마약 범죄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출소 후 재범에 나서는 마약 네트워크 구축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약 사범에게는 ‘파란 명찰’을 달게 한 뒤 일반 재소자들과 분리, 수감하는 원칙이 낳은 부작용이다. 구치소 수감부터 교도소까지 한방에 모여 지내는 마약 사범들은 각자의 노하우와 범죄 수법을 자랑하듯 떠벌리거나 거물급 마약 제조·유통·판매책과의 네트워크를 공유하곤 한다. 단순 투약자가 마약방에서 출소한 뒤 판매책→유통책→밀수·밀반입책→총책으로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마약방뿐만 아니라 교도소 내 운동·작업 같은 야외 활동에서도 범죄 수법 전수는 이뤄진다. 지난해 4월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 붙잡힌 A씨는 교도소에서 우연히 마약 판매 수법을 배워 출소한 뒤 실제 범행에 나선 사례다. 과거 조직 폭력배 생활을 하다 수감된 그는 교도소에서 친분을 쌓은 마약 사범으로부터 마약 판매 기법을 익혔다.

교도소 내에서 한 방에 모인 마약사범들은 서로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고 친분을 쌓는다. 사실상 교도소 내에서 마약 네트워크가 구성되는 셈이다. 사진 관세청 제공

일반 재소자였던 A씨는 다른 방에 수감됐지만 야외활동 시간을 활용해 마약 사범과의 접점을 넓혔다. 이렇게 배운 노하우로 출소 후엔 필로폰·야바 등을 식료품으로 위장해 태국에서 국내로 들여오고, 때론 마약을 속옷에 숨겨 귀국해 수도권 일대에서 미성년자 등에 판매했다.


"투약자·판매자 커뮤니티 생기며 서로 녹아들어"


구치소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거나 기소 전 상태인 마약 사범은 검찰 수사나 변호사 접견 등의 일정을 제외하면 24시간 다른 마약 사범과 한방에서 지낸다. 초범의 경우 구치소 수감 초기 ‘단약’을 결심했어도 온종일 이어지는 마약 이야기와 각종 범죄 수법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호기심에 마약을 투약한 초범이 구치소에서 보다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루트를 알게 돼 재범이 되고, 아예 마약 판매·유통 사범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마약 수사에 정통한 경찰 관계자는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범들을 수용하는 방을 ‘향방’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커뮤니티가 생기면서 투약자가 판매법을 익히는 방식으로 서로 녹아간다”며 “이걸 막기 위해 투약·제조·판매 등 유형별로 분리하려고 하지만 투약과 판매를 동시에 하는 경우도 많고, 현실적으로 수용 공간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완전한 분리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엔 광주교도소에선 한 재소자가 우편물에 펜타닐을 숨겨 반입을 시도하다 적발됐다. 연합뉴스

최근엔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 마약을 밀반입해 복용을 시도하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광주교도소에선 한 재소자가 등기우편물에 ‘좀비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3g을 숨겨 반입하려다 적발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엔 신입 재소자가 인천구치소에 메스암페타민 3.6g을 반입 시도한 사건도 있었다.

법무부는 교정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의 불시 검방을 강화해 재소자의 마약 반입 시도를 차단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교정 특사경을 조직한 이후 내부적으로 정보팀을 꾸리고 불시 점검을 강화하는 등 마약 사범의 동태를 샅샅이 챙기고 있다”며 “55개 교정기관에서 주기적으로 몇 개씩 방을 골라 불시에 점검하는 걸 감안하면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점검과 감시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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