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거짓말이라고 믿어버리는 일

강창욱,산업2부 2024. 1. 1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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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되묻는 습관이 있다.

상대가 내놓은 설명이 어딘지 사실이 아니다 싶거나 아닐 것 같을 때 또는 사실이 아니면 안 될 때 재차 확인을 한다.

'사실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넓게 잡다 보면 일상에서마저 나나 상대나 피차 귀찮아질 때가 많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무리를 했다면 그건 이미 사실로 믿어져 버린 일을 수사로 확인시켜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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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산업2부 차장


내게는 되묻는 습관이 있다. 상대가 내놓은 설명이 어딘지 사실이 아니다 싶거나 아닐 것 같을 때 또는 사실이 아니면 안 될 때 재차 확인을 한다. ‘사실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넓게 잡다 보면 일상에서마저 나나 상대나 피차 귀찮아질 때가 많다. 이런 내게 가족들은 “내 말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왜 이렇게 내 말을 못 믿느냐”고 항의한다.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걸 의심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특히나 일상에선 사실이 어떻든 전혀 상관없을 정도로 사소한 문제가 대부분이다. 산책하다 아내가 “이 가게 새로 생겼네”라고 말하면 그 가게가 정말 새로 생긴 건지, 이미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그런 의문이 들어서 “그래? 새로 생긴 게 맞아?”라고 묻는 식이다. 이때 아내가 “응 맞아”라고 말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인데 “정말?” “확실해?” 하고 두세 번이나 더 묻고도 성에 차지 않아 “그럼 전에는 뭐가 있었는데?” 같은 질문을 던지고 만다. 급기야 예전에 우연히라도 그 장소를 찍은 사진이 없는지 휴대폰 사진첩을 한참 뒤적이고 거기서 단서를 못 찾으면 네이버 검색에 나선다.

이럴 때 내가 종종 떠올리는 건 10여년 전 들은 선배 기자의 에피소드다. 어느 날 밤늦게 귀가한 그는 자는 아내를 깨워서는 “어머니한테 전화했어?”라고 물었다. 아내가 “응” 하고 답하자 선배는 “정말 했어?”라고 되물었고 “했다니까”라는 확인 대답에도 확신이 들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 집사람이 전화했어?”라고 묻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했어. 너 왜 그러냐”고 타박했다고 그 선배는 전했다. 그때 나는 선배가 너무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으니 이건 산재 처리도 안 되는 ‘직업병’인 게 틀림없다.

의심하는 게 일이 돼버리고 나면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믿기로 결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의심’도 의심하기로 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믿어버리고 나면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확증편향은 잘못된 믿음을 설명하는 용어로 주로 쓰이는데 이 경향은 의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믿음(의심). 지난해 말 몇 명의 연예인이 마약 투약 의혹으로 경찰 수사선상에 오르자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혐의는 초장에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온갖 ‘카더라’가 무책임하게 나돌았다. 마치 눈으로 본 사실인 것처럼. 의심과 믿음을 오가는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간편한 일이지만 한번 방향을 정하고 나면 그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을지언정 좀처럼 다시 뒤집지는 않는다. 한번 의심이 들고 나면 관성이 생겨서, 또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 어딘지 불편해서 쉽게 돌아서지 못한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무리를 했다면 그건 이미 사실로 믿어져 버린 일을 수사로 확인시켜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제기한 혐의를 사실로 입증해야만 하는데 증거가 나오지 않으니 조이고 또 조이다 결국 한 가정이 파괴됐다. 거기에는 마약 투약이 사실인 것처럼 잡다한 사례를 갖다 붙여 보도한 언론의 역할이 컸다. 경찰이 호기롭게 불을 붙였다면 언론은 무자비하게 기름을 부었다고 본다. 마약을 하지 않았다는 당사자들의 항변은 너무 쉽게 거짓말이 돼버렸다. 모두가 ‘아니라면 아닌 거냐?’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결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에 하나 마약에 손을 댔다고 해도 죽어야 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강창욱 산업2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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