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직격인터뷰] "수능서 심화수학 배제는 자해 행위, 하향 평준화 막아야"

주정완 2024. 1. 1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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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수학 교육, 대안은…차상균 서울대 특임교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확 바뀐다. 올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이 치르는 2028년도 수능부터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한 대학 입시제도 개편안이다. 선택과목을 폐지하고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같은 국어·수학·탐구 시험을 보게 하는 게 이번 개편안의 핵심이다.

교육부 발표 이후 수학 출제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일반수학(대수·미적분Ⅰ·확률과통계)만 수능에 포함하고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은 빼기로 했다. 수험생 입장에선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만, 이공계 대학교수들은 강력히 반발하는 분위기다. 수학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면 제대로 대학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장기적으로 첨단 기술 인재 육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차원 공간
수학적 기초 없으면 AI 이해 못해

입시에서 쉬운 수학만 하라는 건
첨단 기술인재 양성 목표와 모순

디지털 기기 활용한 교재 개발로
학생 흥미 유발식 수학 교육해야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차 교수는 “수능에서 심화 수학을 빼는 건 AI시대에 국가의 미래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지난 6일 오후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를 만났다. 국내외 메모리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호암상(2022년 공학상)을 받은 차 교수는 혁신적 연구 성과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분야의 석학으로 꼽힌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가로도 성공한 이력이 있는 그는 교육과 산업 현장에서 모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심화수학에서 킬러문항 안 내면 돼

Q : 수능에서 심화수학을 배제한다는 교육부 발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 “한마디로 말하면 자해 행위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잘라버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국가적 목표에 심각하게 모순된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다차원이다. 기하와 미적분을 포함한 수학은 그런 현상을 표현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문·이과의 구분 없이 수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고교 교육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없애는 게 맞다. 그렇다고 문과 위주로 수학 교육을 하향 평준화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Q : 이공계, 특히 빅데이터·AI 연구에서 수학이 중요한 이유가 뭔가.
A :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변화를 쫓아가는 게 AI 시스템이다. 기본적으로 다차원 미적분 개념을 모르면 AI를 이해할 수 없다. 미적분을 배운다는 건 세상의 변화를 표현하는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AI의 핵심인 딥러닝(심화학습)은 미적분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이때 하나의 변수만 보는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변수를 동시에 봐야 한다. 이런 세계는 1차원 선형이나 2차원 평면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3차원 공간적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기하를 알아야 한다.”

Q : 교육부는 수능에 심화수학을 포함하면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A : “아마도 ‘킬러문항’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으로 짐작한다. 미적분이나 기하에선 문제를 복잡하게 꼬아서 킬러문항을 만들기 쉬운 측면이 있다. 정말 그것 때문이라면 방향이 틀렸다. 미적분과 기하를 살리는 대신 이쪽에선 킬러문항을 내지 않으면 되지 않나.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로 학생들을 곤란하게 하는 건 좋은 교육이 아니다.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Q :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챗GPT를 언급하며 어려운 문제풀이 중심의 수학교육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A : “사람이 한 번 쉬운 길로 가기 시작하면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챗GPT를 쓸 수 있는 능력만 갖추는 것으론 발전이 없다. 챗GPT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게 아닌가. 그래야 다른 나라가 하지 않는 걸 찾아서 새롭게 치고 나가는 길이 열린다. 여기엔 미적분과 기하 같은 수학적 개념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AI 후진국을 면치 못한다. 남이 만든 걸 쓰기만 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영원히 남의 밑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하향 평준화식 수학 교육이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고 하는 이유다.”
AI 시대에 수학 없이 아무것도 못 해

Q : 다른 나라의 수학 교육은 어떤가.
A : “수학 교육을 강화하는 건 세계적인 흐름이다. 미국의 주요 대학은 고교 교육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대학에 와서 데이터사이언스 등을 배우려면 수학적 기초가 중요하다. 그걸 고교 시절에 미리 준비하게 하자는 취지다. 물론 미국 고교생의 다수는 수학적 이해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소수의 엘리트 그룹은 매우 높은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획일적인 입시 제도가 아니라서 가능한 방식이다. 우리는 미국처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수능에선 심화수학을 빼겠다고 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대학에 줘야 한다.”

Q : 혹시 미국만 수학 교육을 강조하는 건 아닌가.
A : “아니다. 인도를 보라. 수학을 잘하는 인도 출신 인재들이 미국 정보기술(IT) 업계를 휘어잡고 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어도비 같은 기업에선 인도계가 최고경영자(CEO)까지 올랐다. 유럽에선 프랑스가 AI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수학 교육이 강한 나라여서다. 옛 공산권에 속하는 동유럽 국가들도 수학을 잘하는 인재가 많다. 과거 컴퓨터가 제대로 없던 시절에도 수학 실력으로 서구 선진국들과 경쟁했던 전통이 있다.”

Q : 공학이 아닌 분야에서도 수학이 필요한가.
A : “물론이다. 사회과학에서도 수학적 기초가 점점 중요해진다. 예컨대 변호사가 AI를 쓴다고 해도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고 쓸 수는 없지 않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보면 수학적 기법을 활용한 계량경제학 연구자가 많아진다.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기하를 모르면 컴퓨터를 활용한 3차원 시각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AI의 시대에 수학에서 자유로운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어릴 때부터 수학을 경험하게 해주는 게 낫다.”
교육은 한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어

Q :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로 학생들은 수학을 어려워한다.
A : “예전 방식으로 고지식하게 수학을 가르치니까 그렇다.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AI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면 복잡한 문제도 3차원적으로 알기 쉽게 풀어서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수학 교육 콘텐트를 만들 때 계량경제학이나 시각디자인 전문가들도 참여하면 좋을 것이다. 원래는 나도 수학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할 때 물리적 현상과 수학을 연결해 쉽게 설명하는 교수가 있었다. 진작에 이런 분을 만났더라면 나도 수학을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 고교에선 기초수학만 익히고 심화수학은 대학에서 배우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A :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물리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과학이나 공학을 하려면 물리를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물리 교육이 완전히 엉망이 돼 버렸다. 수능에서 물리를 선택과목으로 하니까 물리를 배우려는 학생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수학이나 물리는 일단 배움의 끈을 놓아버리면 나중에는 그쪽으로 가는 걸 더욱 꺼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한 번 교육이 망가지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다.”

Q : 수학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 “수학을 최대한 재미있게, 그리고 현상과 의미 있게 연결해 가르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디지털 기기가 얼마나 좋아졌나. 학생이 직접 손으로 디지털 기기를 터치하면서 배울 수 있게 교육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그런 투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못사는 나라가 아니지 않나. AI 시대에 수학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2등, 3등 국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한 전문가 그룹에 수학 교육의 주도권을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 정부는 최소한의 뒷받침만 하고 세부 사항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차상균=1958년 부산 출생.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제어계측공학),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전기공학)학위를 받았다. 200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한 뒤 2005년 독일의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 SAP에 성공적으로 인수합병(M&A)시켰다. 차 교수가 연구개발을 주도한 데이터베이스 솔루션인 ‘SAP HANA’는 삼성전자와 미국 월마트 등 세계 3만 개 이상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다. 2020년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개원을 주도하고 초대 원장을 지냈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털 설립을 준비 중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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