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노동자의 손 붙잡고 뜨겁게 연대하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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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송년모임에서 '일당'에 대한 정의를 내라고 했을 때, 시린 겨울날 현장에 나가야만 하는 어느 노동자가 생각났다.
1970년 평화시장에서 "우린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전태일의 분신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 연대기에는 1988년 강원탄광에서 동료 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분신한 '성완희'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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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현실 다룬 시집 잇따라
아픔에 함몰되지 않는 책임감
전태일·성완희·양회동 등 추모
얼마 전 한 송년모임에서 ‘일당’에 대한 정의를 내라고 했을 때, 시린 겨울날 현장에 나가야만 하는 어느 노동자가 생각났다. 그는 몇번이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노동자는 오늘도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끼이고, 깔리고, 떨어지고, 미끄러지는 위험은 물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묵묵히 감내해야만 한다. 강원지역 시인들이 노동 현실을 다룬 시집을 잇따라 펴냈다. 이들의 시는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서늘하게 마주해야 했던 사건의 틈을 메우고 간격을 좁힌다.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현실의 맥락을 짚는 것 또한 시의 일이다.
■ 내가 지켜내려 했던 것들이 나를 지키고
영월에서 활동하는 김용아 시인의 시집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의 현실이 있다. 시인은 아픔에 함몰되지 않고 사회적 책임감으로 이들을 껴안고 연대한다.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갈색 안전화 한 켤레’를 지급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30년 전 사고로 의수를 착용한 채 결혼식장에서 딸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집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에 부친 ‘너희들은 꽃단풍으로 살라 하였으나’에서 절정에 이른다. “잔업으로 쓰러지거나/병들어 서서히 죽어가거나/무너진 비계 더미에 깔리거나/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끼이거나/시멘트회사 발전소/끼인 컨베이어 벨트에 또 끼여/마지막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져버린 내누이여 아우여”라며 반복되는 사고를 토해낸다. 1970년 평화시장에서 “우린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전태일의 분신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 연대기에는 1988년 강원탄광에서 동료 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분신한 ‘성완희’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월 한반도면 서강 일대를 다룬 9편의 연작시 ‘한반도 습지’에서는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통해 생태계를 위한 간절한 목소리를 전한다. “어둠 속 작은 빛으로 이어져 있어/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그게 시의 자리이기도 합니다”이라는 시인의 말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
■ 곰치국 끓이는 아침
하태성 시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시인은 1995년 한국가스공사에 입사,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했으며 2019년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상임 대표를 맡아 환경, 생명, 평화운동을 펼쳐왔다. 그의 시집은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헌사와 투쟁의 기록이 묻어나온다. 다소 직접적이고 선언적인 느낌표와 같은 문장들이 많이 보이나 “삶이 죽을 때 시가 살아난다/나의 시어는 죽은 언어들의 나열”이라는 시인의 시론은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시인은 시 ‘묵호 논골담에서’를 통해 “노동조합 선거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내걸었다고 낙선”했고 동료에게 “어용이라고 욕지거리” 몇 마디 퍼부었다가 명예훼손, 모욕죄에 기소당해 자꾸만 흔들렸다고 고백한다. 그러는 사이 “누구는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가 되어 “밥이 되는 소설과 시”를 썼다.
일찍 세상을 떠난 동료에 대한 추모시가 눈가에 맴돈다. 지난해 분신한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씨를 추모한 시 ‘원래가 사람을 죽였다’에서는 “지금도 많은 노동자가 영문도 모른 채/부를 이름도 없이/붙잡을 손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그리고 노동절에 검사의 공소장이 양회동을 죽였다/그러나 공소장에 적힌 것은 죄목이 아니었다/노동자를 탄압하는 법의 기술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고 표현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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