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안전검사 없이 출시” SK·애경 전 대표 유죄
“이 판결은 ‘만일 그때로 돌아갔더라도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가습기살균제사건의 2심 재판부 판단은 ‘그랬어야 했다’였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서승렬)는 11일 “피고인들은 어떠한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상품화 결정을 내려 업무상 과실이 모두 인정된다”며 가습기 살균제인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제조·판매사 임직원 13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전원 무죄를 선고했던 2021년 1월의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사건이 발생한 지 13년만, 2019년 기소된 지 5년 만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한순종 전 본부장,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금고 4년, 두 회사의 나머지 임직원 8명에게는 금고 3년 6개월~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금고형은 교도소에 수감하지만, 징역형과 달리 노역은 하지 않는다. 이들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사실상 장기간에 걸쳐 전 국민을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의 만성 흡입독성시험이 행해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특정 다수가 원인을 모르는 채 큰 고통을 겪었고, 상당수 피해자는 사망이라는 참혹한 피해를 보는 등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덧붙였다.
피고인들은 2018년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옥시와 함께, 2002년 가습기메이트 출시 전 유해성 시험 결과를 보고 위험을 알면서도 제품을 제조·판매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옥시(상품명 ‘옥시싹싹가습기당번’)의 주성분 PHMG와 달리 가습기메이트의 주성분 CMIT·MIT의 일부 독성시험 결과는 인정되지만 폐 질환·천식을 유발·악화시켰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엔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판결 뒤 학계는 “전문가 연구 결과를 틀리게 인용한 잘못된 판단”이라고 공개 반발했다. 이들은 항소심 재판부에 추가 연구 결과도 다수 제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과 이로 인한 상해 및 폐 질환·천식 발생 사이 인과관계를 대부분 인정했다. 앞서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이 확정돼 만기 출소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 옥시 관계자들과의 공범 관계도 인정했다. 1994년 이 살균제의 전신인 유공 가습기메이트 출시 때부터 독성을 우려하고도, 실험 결과 없이 출시하고 회수도 하지 않은 점을 짚으면서다. 재판부는 “당시 유공은 ‘실험이 더 필요하다’는 서울대 수의대의 결과를 무시했고, 결국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에서 이 사건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는 결과에 이르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따지던 종전 대법원 판례와 결이 다르다. 재판부도 이 부분을 언급하며 “필요한 조치를 했더라도 결과 발생을 피할 수 없었을 경우 인과관계를 부정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조·판매업자에게 요구되는 안전성 주의의무 위반 사안에까지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지원 대상 피해자는 5691명, 이 중 사망자는 1262명이다. 선고 직후 일부 피해자는 “1000여명이 죽었는데 고작 4년이냐”며 반발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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