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투자 받았는데 시총은 6000억원대?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컬리’의 기업공개(IPO) 재추진 일정이 감감무소식이다. IPO를 준비하던 컬리는 지난해 1월 IPO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추진 과정에서 예상했던 몸값(약 4조원)과 당시 장외 거래가로 계산한 기업가치(약 1조원) 간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컬리는 당시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더 나빠졌다.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에 따르면 1월 4일 기준 컬리 주식은 1만56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단순 계산 시 시가총액은 6462억원. 컬리가 지금까지 받은 누적 투자 유치액(약 1조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비상장 거래 주가로 몸값을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눈여겨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변동비’ 절감 한계 뚜렷
컬리는 그간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 운영비로 썼다. 자체 이익이 나지 않는 구조 탓이다.
컬리는 지난해 5월 제3자 배정 방식 전환우선주(CPS)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기존 투자자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와 아스펙스캐피털이 참여했고 12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2023년 말 연결 재무제표 기준 적자를 낼 경우 올해 1월 1일부터 전환 주식 전환 비율을 최초 1 대 1에서 1 대 1.8462343으로 리픽싱(조정)한다는 것. 말은 어렵지만 개념은 단순하다. 최초에는 전환주 1주당 보통주 1주로 전환했다면, 리픽싱 이후에는 전환주 1주당 보통주 1.8462343주의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다. 투자자는 웃고 컬리는 울게 되는 결과다. 실질적인 신주 매입 가격이 떨어지고 기업가치가 하향 조정되기 때문이다.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던 컬리에 ‘흑자전환’ 과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추가적인 기업가치 하락을 손 놓고 볼 수 없던 컬리는 강력한 비용 절감 드라이브를 걸었다. ‘돈 먹는 하마’ 물류센터부터 손봤다. 컬리는 지난해 6월 서울과 수도권 배송을 담당하던 ‘서울 송파구 장지동 물류센터’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이를 대신할 ‘평택물류센터’ 시대를 열었다. 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장지동 물류센터를 포기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지동은 서울권 배송 최적지 중 하나였다. 워낙 입지가 좋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임차료도 비쌌다. 이곳을 놨다는 것은 컬리 입장에서도 비용 절감 의지가 확실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동시에 판매관리비(변동비) 집행을 깐깐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2023년 1~9월 마케팅 비용을 의미하는 광고 선전비는 24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9.9% 줄어들었다. 신선식품 배송 등에서 발생하는 포장비(드라이아이스, 충격 흡수재 등)는 487억원으로 나타났다. 2022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8% 감소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광고 선전비와 포장비를 제외하면 눈에 띄게 ‘확 줄었다’고 볼 만한 지점이 없다. 특히 판매관리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급여)와 운반비는 전년 동기 대비 3.8% 줄이는 데 그쳤다.
커머스업계는 “예상했던 바”라고 입을 모은다. 컬리의 경우 현재 비용 절감 수준이 한계치라는 것. 컬리의 차별화 포인트를 고려하면 이해가 쉽다. 컬리는 ‘감성’과 ‘프리미엄’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통상 커머스업계는 비용과 서비스의 질을 ‘트레이드오프(trade off)’ 관계로 일컫는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의 상품 큐레이션 역량과 소비자 요구를 읽은 상세 페이지 등은 모두 컬리의 전문 인력들이 해낸 결과다. 이들 없이 컬리도 존재할 수 없는 만큼, 인건비 개선이나 각종 물류비 개선이 쉽지 않다. 결국 컬리 브랜드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극한의 비용 절감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컬리의 ‘강남 엄마 앱’ 브랜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확실한 상품 큐레이션 역량과 배송의 질, 상세 페이지 구축 등이 모두 엄청난 인력이 투입돼 나온 결과”라며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곳이 억지로 비용을 줄이다 보면 퀄리티 저하가 더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간 힘들게 쌓아온 컬리만의 감성을 망칠 수 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매출 증가율’ 둔화세 어쩌나
비용 절감이 어렵다면 다른 방안은 없을까. 결국 컬리의 흑자전환 시나리오는 ‘쿠팡 모델’뿐이다. 쿠팡 모델의 핵심 전제 조건은 폭발적인 매출 증가다. 이를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고 가격 협상력을 키워 이익을 내는 게 골자다.
컬리는 그동안 쿠팡 모델의 전제 조건을 착실히 이행해왔다. 2014년 설립된 컬리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설립 초기인 2016년 173억원이던 매출은 2018년 1571억원, 2021년 1조5614억원까지 커졌다. 설립 8년 만에 연간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2022년에는 매출 2조372억원으로 연간 매출 2조원 장벽도 넘어섰다. 적자 기업 컬리가 ‘조 단위’ 몸값을 인정받아온 배경이다. 하지만 2023년 컬리의 고공행진은 막을 내렸다. 2023년 3분기 누적 매출은 1조5462억원. 전년(1조5299억원) 대비 1% 늘어난 수준이다. 신사업 뷰티컬리를 본격화하고 새벽배송 가능 지역을 경상권까지 확대했음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매출에 머문 것.
문제는 앞으로다. 컬리를 둘러싼 이커머스 환경이 나날이 악화 중이기 때문이다. 모든 커머스가 ‘새벽배송’을 외치고 ‘신선식품’ 배송을 강조한다. 컬리만의 강점이 옅어지는 꼴이다.
특히 쿠팡의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 ‘로켓프레시’는 상품군을 확대, 점점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로켓프레시와 로켓그로스는 전체 비즈니스보다 각각 2배, 3배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 ‘매출 증가’ 모두 쉽지 않은 만큼 컬리의 흑자전환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상장 재추진 일정 역시 예상할 수 없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결국 컬리는 회사 운영을 위해 또 외부 자금을 끌어다 써야 한다. 창업자의 지분 희석은 물론이고, 앞선 투자 유치처럼 ‘리픽싱’ 조건이 붙고 시행될 경우 기업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재무적투자자(FI)가 아닌 전략적투자자(SI)를 찾아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돈이 급한 컬리와 이커머스 사업이 부진한 대기업이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인수합병 가능성 얘기도 흘러나온다.
컬리가 대기업이 갖춘 물류 역량을 활용, 물류센터 확장·운영비용을 줄이면 현재 매출 규모로도 충분히 흑자전환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결손금이 2조원을 훌쩍 넘어선 상태고, 당분간 이익을 기대하기도 힘들어 자생력이 떨어진다. FI들도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할인 조건을 걸어 폴로우온 성격의 투자를 한 것”이라며 “만약 리픽싱 조건이 잔뜩 붙은 추가 자금 조달이 이어지고, 또 한 번 기업가치가 떨어진다면 그때는 M&A를 원하는 대기업들이 붙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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