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에 은퇴하고 집 밖으로 못 나간 남편의 고백

유영숙 2024. 1. 1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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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만큼 중요한 건강... 노인자살률 1위 한국, 정부가 나서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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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숙 기자]

요즘 아침 8시이면 출근을 한다. 며칠 전엔 이슬비가 조금 내려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막 아파트 정문을 나서는데 종이상자를 높이 쌓은 리어카를 끌고 어르신이 힘들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셨다. 마른 몸으로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에 아침부터 마음이 씁쓸해졌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말 폐지 수집 노인 현황과 활동 실태, 복지 욕구를 담은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에 폐지 수집 노인은 4만여 명, 평균 나이는 76세, 이들이 1주일 평균 6일을 일해도 한 달 평균 수입은 16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급으로 따지면 약 1200원으로, 지난해 최저임금 9620원의 13%에 불과하단다.

은퇴가 너무 빠르다 
 
▲ 종이 상자와 폐지 수집 리어커 길가나 시장 등에서 폐지 수집하는 어르신을 종종 본다. 그때마다 우리 부모님인 것처럼 걱정된다.
ⓒ 유영숙
 
이제 수명 100세 시대라고 한다. 어쩌면 120세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직장인들은 대부분 60세 전후에 은퇴한다(물론 그 이전에 은퇴하는 분도 있다). 60세에 은퇴하면 4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는 셈이다. 그 긴 40년을 내내 일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지금은 다들 건강도 좋아져서, 60세는 거의 청춘이나 마찬가지다.

내 남편도 60세에 은퇴하였다. 지금은 나도 은퇴했지만, 남편이 은퇴할 그 시기에 나는 근무 중이라 계속 출근을 하던 때였다. 당시 은퇴한 남편은 그간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하면 좋을 텐데, 왜인지 '집콕'만 하며 집에서 꼼짝을 안 했다. 지나간 드라마 '허준' 같은 옛날 사극만 계속 보면서 지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서 내가 "낮에 아파트나 근린공원에 가서 운동도 하며 지내요. 친구들도 만나고요"라고 말하면, 남편은 이렇게 답했다. 

"낮에 운동하면 사람들이 젊은 사람이 놀고 있구나 할까 봐서..."

남편은 그러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냐면서 아예 밖에 나가길 꺼렸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그렇게 지내더니 우울증이 오는 것 같다며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많진 않지만, 국민연금을 받고 있기에 절약해서 쓰면 괜찮을 것 같았다. 결국 회사 다닐 때 알던 후배가 도와 달라고 해서 작은 회사에 부사장으로 다시 취업했다. 월급은 다른 경력직 사원보다도 적게 조금만 받기로 했단다. 돈보다는 일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일흔 살 남편이 회사에 다시 출근하니 생활에서도 활기가 넘쳤다. 남편 친구들은 지금도 일하는 남편을 부러워한다. 남편 친구들을 만나면 대부분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건강한데 놀고 있으니 자꾸 소외되는 것 같고, 쓸모없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다운된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쉽지 않다고 한다. 이들의 전문성이 아깝지 않은가. 정부에서 노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
 
▲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 남편은 일흔 살이지만 직장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일을 하니 우울증도 사라지고 삶이 활기차단다.
ⓒ 유영숙
 
노인 일자리 창출이 급한 이유는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일자리를 통해 이들이 겪는 외로움과 건강 문제 등 다른 문제들도 함께 해결하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60세에 퇴직하고도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며 수명도 늘어났으니 65세 정도로 정년을 늘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예전에는 자식이 은퇴한 부모를 돌보았지만, 지금은 자식에게 기대기에는 자식들도 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부모가 도와주는 가정도 많다.

날로 심각해지는 노인 우울증 

은퇴 후에 재취업해 다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건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의 경우 둘 다 정년퇴직을 했는데, 퇴직하고 얼마 안 되어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삶의 질이 내려갔단다. 건강을 위해 식이요법이 필요해 하루 세끼를 매 끼니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시간을 낼 틈이 없고, 어쩌다 친구들과 한 번 만나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이러면 삶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 집도 은퇴 후에 주로 들어가는 돈이 병원비다. 다른 것은 절약해서 살 수 있지만, 적어도 병원비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남편도 얼마 전에 오른쪽 팔이 자꾸 저리다며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였다. 그런데 검사비만 180만 원 정도 나왔다. 실비 보험이 없어서 고스란히 병원비로 나갔다. 팔과 손가락 수술을 하면 50% 정도 좋아진다는데, 수술비만 거의 몇백만 원 나온다는 말에 앞이 캄캄해졌다. 다행히 물리치료를 받으며 좋아져서 수술은 하지 않게 되었다.

퇴직하고 나이 들면서 일자리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임을 요즘 절실히 느낀다. 돈은 아껴 쓰면 되지만, 건강이 안 좋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물론 일도 하기 어렵다).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힘들어진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자식들도 불편하게 해주는 일이기에 은퇴하고 가장 신경 쓰는 일이 건강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므로 가급적 꾸준한 운동과 바른 식사, 그리고 영양제도 챙겨 먹으며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마음 건강도 건강이다. 여기에선 소통이 중요한데, 종교나 친구, 취미 모임 등 노년기의 외로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만남을 자주 갖는 것이 좋다. 떨어져 사는 자식들과도 주기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인 우울증도 심각하게 나타나기에, 미리 몸 건강만큼 마음 건강을 챙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픈 노인들에게 돈도 좋겠지만 국가가 복지를 제공해주면 어떨까. 스웨덴처럼 개인이 지불하는 연간 치료비에 상한을 정한다든가, 집근처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거나 하는 식처럼 말이다.
  
 은퇴 후 건강이 중요하다. 쌍둥이 손자들과 걷는 남편의 뒷모습.
ⓒ 유영숙
 
노인 우울증은 무엇보다도 제때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증의 원인이 관심과 소통의 부재라고 한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정신과 등 병원에 찾아가서 치료받으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노인자살률도 OECD 1위라는데, 정부에서 이 부분은 전수조사를 통해 체계적으로 통합해 관리하면 어떨까. 지역에 아동 복지 시설처럼 노인 복지 시설을 운영하여 접근성이 좋게 해주길 바란다.

접근성을 높여 노인 복지 시설 같은 곳에서 정신 건강 검진도 쉽게 받을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취미 활동이나 봉사활동 등으로 사람들과 만나서 소통하면 우울증이 생길 위험이 낮아진다. 노인들이 어려워하는 키오스크 사용법 등 디지털 교육 등도 받게 해서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해 주길 바란다. 그러면 마음의 감기 같은 우울증이 줄어들 것이다. 노인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곳에 노인 복지 시설이 많이 생기길 기대해 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 

나는 요즘 2022년 8월 말에 학교를 퇴직하고 이웃 초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출근하고 있다. 기간제 교사다 보니 퇴직 전과 같이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한다. 좋은 점은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어렵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려고 해도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들다. 즐겁지 않다.

물론 올해도 내가 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일제로 일하는 것은 조금 벅차다. 조금 덜 벌어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을 돕는 봉사활동도 찾아서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배우며 삶의 질을 높이고 싶다. 은퇴하고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

책을 읽다가 발견한 글귀다.

'내일 죽을 것처럼 일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참 좋은 말이다. 일에는 꼭 돈을 버는 일만 포함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곧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노인 빈곤' 시대라지만, 남은 삶은 마음이라도 부자인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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