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결국 탈당, 野 개편 시작…“특권없는 정치, 성역없는 법치” 제3지대 선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결국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는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다”며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민주당 정부에서 국무총리와 당 대표를 지낸 그가 총선 90일 전 신당 창당에 나서면서 야권 개편이 본격화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망설였다”는 이 전 대표는 탈당 사유를 길게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은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되었다”며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고 말했다. 또 “당내 비판자와 저의 지지자들은 2년 동안 전국에서 ‘수박’으로 모멸 받고, 처단의 대상으로 공격받았다”며 “그런 잔인한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의 피폐에는 저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저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자세는 낮췄으나 회견은 출정식에 더 가까웠다. 기자회견이 열린 국회 소통관 건물 로비를 가득 채운 지지자들은 “이낙연”을 연호했다. 4000자 분량의 기자회견문엔 ▶개헌을 통한 분권형 대통령제 ▶연구·개발(R&D) 지원과 규제 혁파 ▶중부담·중복지 ▶제2 한류 확산 같은 전 분야의 정책 목표가 담겼다.
“특권 없는 정치와 성역 없는 법치를 꼭 구현하려 한다”고 강조한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선 “검찰 공화국을 거의 완성했다”고, 민주당을 향해선 “스스로의 사법 리스크로 ‘검찰폭주’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후목불가조(朽木不可雕),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는 공자의 말씀처럼 지금의 정치로는 대한민국을 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체제’를 직격한 탈당 선언에 민주당 의원들은 이 전 대표를 거칠게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 129명은 이날 오전 공동성명을 내고 “스스로를 부정하면서까지 당을 공격하고 있다”며 “탈당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득구 의원은 “(탈당은) 동의도 안 되고 용납도 안 된다”며 “개인적으론 출당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탈당 선언 뒤에는 “탈당 아닌 정계 은퇴가 정답”(정청래). “제2 안철수의 길 축하”(윤준병) 같은 비아냥도 쏟아졌다. 총선에서 서울 강서갑 출마를 선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의원은 페이스북에 “정작 김대중 정신을 저버린 분은 (이낙연) 대표 본인”이라고 썼다. 우원식 의원은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시대정신을 분열로 거스르고, 본인의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민심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첫발을 뗀 ‘이낙연 신당’의 연대 대상으로는 전날 민주당을 탈당한 ‘원칙과 상식’ 소속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이 먼저 거론된다. 이 전 대표 스스로 “민주당에서 혁신을 위해 노력하셨던 ‘원칙과 상식’의 동지들과 협력하겠다”고 밝힌 데다, 이미 양측이 긴밀한 소통을 주고받는 중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전 대표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간의 이른바 ‘낙·준 연대’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에 대한 질문에 이 전 대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협력 의향이 있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다만, 이준석 전 대표는 이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가 '엄중 낙연'이라는 본인의 이미지를 바꾸지 않고는 우리와 함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양측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로썬 두 사람이 곧장 담판을 짓거나 할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당분간 각자 지지층을 다진 뒤 연대할 가능성은 열어 놓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낙연 신당’ 입장에서 당장의 관건은 민주당 내 추가 탈당 여부다. 이 전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의원들도 “이 절박하고 간절한 때에 분열은 있을 수 없다”(이병훈)라거나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탈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개호)이라고 거리를 두고 있지만, 민주당 내부에선 “최종 탈당 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재선 의원)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막 시작된 공천 경쟁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불붙으면 추가 탈당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당장 이날 오후 공개된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의 10차 검증 결과에서 이헌욱 전 GH사장(경기 용인정)과 윤용조 당대표실 부국장(부산 해운대을), 모경종 당대표실 차장(인천 서을) 등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들이 대거 적격 판정을 받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이재명 대표가 전혀 측근들을 제어하고 있지 않다”며 “강성 권리당원들이 ‘수박 척결’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측근들이 이렇게 많이 출마하면 권리당원 투표에서 몰표가 쏠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전날 당 안팎엔 비명계 의원 이름이 다수 적힌 정체불명의 ‘의원 평가 감점 대상’ 명단이 나돌아 당 지도부가 “당을 음해하려는 악질 가짜뉴스로 수사 의뢰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전 대표의 탈당이 2016년 총선에서 ‘3당 체제’를 만든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 버금가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은 민주당 입장에선 분당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미 현역 의원들과 이 전 대표가 민주당 밖으로 나가 깃발을 꽂아버렸으니, 추후 공천 등 민주당 사정의 변화에 따라 개별 의원 추가 탈당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파장의 크기가 이재명 대표의 대응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낙연 신당’이 민주당 총선에 마이너스 영향을 끼치긴 하겠지만, 이재명 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계파 안배를 신경 쓰고 혁신적 모습을 보인다면 그 영향은 결과적으로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륜' 일본 배우 근황…여배우 3명과 산속 오두막 동거 | 중앙일보
- 탕웨이 "김태용과 이혼? 절대 불가능…딸보다 남편이 먼저" | 중앙일보
- 튀소 맛없다? 100% 당신 탓…성심당은 분명히 경고했다 | 중앙일보
- 박수홍, 친형 '징역 7년' 구형에 "굉장히 착잡하고 황망하다" | 중앙일보
- 2024 정치성향테스트 ㅣ 더중앙플러스 | 중앙일보
- "형 SM 오디션 떨어졌다"…정용진, 아구찜 먹으며 '셀프 위로' | 중앙일보
- 고교생과 성관계 뒤 답안 주고 만점 준 교사…미국 뒤집어졌다 | 중앙일보
- “대통령님 비덱이 뭔가요?” 잡아뗀 최순실, 난 믿었다 [박근혜 회고록 31] | 중앙일보
- 생방송 중 갱단 쳐들어왔다…"이 나라 떠나야" 지옥이 된 낙원 | 중앙일보
- "연봉 4억에 아파트 드려요"…전문의 간절한 단양 '파격 채용'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