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크리스토’ 고은성 “분노를 짓밟는 용서” [쿠키인터뷰]
30대에 접어든 늦깎이 군인은 일병 때 받은 휴가를 오디션에 썼다. 군복을 벗고 달려간 곳은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오디션장. 1분1초가 귀한 휴가인데, 오디션 순서를 기다리는 데만 몇 시간을 썼다. 합격하더라도 군 복무가 오래 남아 출연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데도 청년은 심사위원들 앞에 섰다. “제가 너무나 사랑한 이 뮤지컬 노래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러보고 싶었어요. 제 존재를 확인해볼 자리이기도 했고요.” 뮤지컬 ‘찐사’(진짜 사랑)를 자랑하는 청년의 이름은 고은성. 그는 군 시절 꿈을 지난해 이뤘다. ‘몬테크리스토’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 역을 맡아 관객을 만나고 있다.
‘몬테크리스토’의 무엇이 그리 좋았기에. 11일 서울 도곡동 EMK뮤지컬컴퍼니 회의실에서 만난 고은성은 “음악에 매료돼 ‘몬테크리스토’를 봤더니 복수극의 자극이 재밌었다”고 돌아봤다. 복수극 속 세상은 바깥과 달랐다. 그는 “(복수 말고도)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라고 했다. 그가 맡은 에드몬드는 누명을 쓰고 14년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한 인물. 신분을 세탁한 후 자신을 속인 이들에게 복수하는 역할이다. 2010년 한국에서 초연된 ‘몬테크리스토’는 이번 시즌 노래와 이야기 흐름을 전면 개편했다. 제목 앞에 ‘올 뉴’(All New)가 붙은 이유다.
고은성은 에드몬드에게 용서의 과정을 더하고 싶었다고 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대표곡 ‘겟세마네’는 지저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 감동적이잖아요. ‘이집트 왕자’나 ‘십계’(프랑스 뮤지컬)의 모세도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신에게 묻고요. ‘몬테크리스토’에도 이런 과정을 넣고 싶었어요. 에드몬드가 복수를 멈추고 용서를 결심하는 과정 말이에요.”
에드몬드가 부르는 ‘과거의 나 자신’ 가사를 “분노/ 물거품처럼 사라졌어”에서 “분노/전부 버릴 수 있을까”로 바꾼 이유도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고은성은 “에드몬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일족의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복수심 강했던 사람이 쉽게 상대를 용서할 수 있을까. 분노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용서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아있는 분노를 짓밟고 올라서서 용서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해석한 용기는 일격의 깨달음이 아닌 치열한 성찰로 얻은 것이라 입체적이다. 고은성은 “에드몬드 역 배우들 모두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며 “완벽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주방 여러 개를 차려놓고 요리를 내오듯 연습했다”고 돌아봤다.
2011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한 고은성은 아직도 무대에 오르기 전 많이 떤다. 그 떨림이 마치 “가슴의 두근거림이 손끝으로 전달되는 느낌”이란다. 긴장이 무뎌지지 않은 이유는 뮤지컬이 가진 힘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아서다. 그는 18세 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뮤지컬을 전공했고 뮤지컬 배우가 됐다. 그는 “뮤지컬 한 편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알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무대에 오를 수 없다”고 했다. 동시에 그 무게에 짓눌리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뮤지컬만큼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지만 “뮤지컬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그는, 적당한 온도와 에너지로 지금을 살고 있다.
“뮤지컬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순 없어요. 그래야 더는 공연할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삶이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뮤지컬을 너무 사랑했고 그만큼 힘들기도 했어요. 오디션에서 탈락하거나 작품에 출연하지 못할 땐 크게 절망했고, 알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죠. 지금은 어딘가로 나아가는 것보다 매회 관객들에게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럴 수 있도록 제 삶도 잘 갈고 닦으려고 합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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