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1인분을 해야돼?" 이 아나운서가 살아가는 법
[이준목 기자]
"제가 정말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이 안정이 표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상태로 재미없이 40년을 살아온 그대로 쭉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막연함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재미있다고 이야기 한다.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던 내가 항해를 다시 시작한 느낌이다."
방송인에서 자연인으로 그리고 다시 예능인으로 거듭난 아나운서 김대호의 진솔한 고백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10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낭만의 시대' 특집 편으로 배우 이정은-장현성과 가수 박학기, 이란 왕실 주치의 이영림 원장,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대호가 출연하여 자신들만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대학로를 대표하는 소극장 '학전'은 황정민-설경구-고 김광석 등 33년간 한국 대중문화를 빛낸 수많은 가수와 배우를 배출한 예술인의 산실이자, 그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여겨졌던 공간이다. 그런데 최근 33주년만인 2024년 3월 15일 폐관을 예고하여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학전의 부활을 위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에 앞장사고 있는 이정은, 장현성, 박학기가 게스트로 출연하여 학전의 추억과 문화적 가치에 대하여 설명하며 관심을 호소했다.
출연자들은 고 김광석 선배님의 1000회 콘서트를 회상하여 추억에 잠겼다. 당시 고정 오프닝 공연을 풋풋하던 시절의 윤도현이 전담하기도 했다. 180명에 불과한 정원을 훨씬 초과하는 400명의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고. 공간이 부족하여 문짝을 떼어내고 통로까지 활용해야했 관객들이 좁은 공간에 밀착하여 불편한 환경에서도 모두가 기꺼이 공연을 즐기던 낭만의 시절이었다.
장현성은 "산업적으로 돈이 되는 장르에 자본이 집중되지만 그렇지않아도 필요한 문화가 있다."며 소규모 공연문화의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장현성과 설경구를 비롯하여 어느덧 중견배우들이 된 선배들은 지난 2023년 12월 31일 학전에서 공연한 <지하철 1호선>의 마지막 공연을 관람하여 후배들과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김민기 학전 대표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학전과 공연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출연자들은 김민기 대표의 여러 미담을 공개하며 공연 흥행에 실패해 수익이 없었던 상황에서 책임감 때문에 전 재산인 아파트까지 팔아서 배우들 개런티를 주려한 일화를 소개했다.
박학기는 "우리는 모두 김민기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라고 고백했다. 인터뷰로 출연한 설경구 역시 "제게는 은인"이라고 강조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출연자들은 학전이 폐관하더라도 직원들의 퇴직금 정산등 여러 자금적 문제가 남아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학전을 돕기 위하여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고 소개했다. 장현성은 최근 몸이 편찮은 김민기 대표의 건강을 걱정하며 "선생님의 자전거도 안전하고 평화롭게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영림 한의사는 1970년대부터 이란의 왕실 주치의를 지냈으며 2016년에는 모교인 경희대에 무려 1300억이라는 개인 역대 최고액 기부 기록을 세우며 화제가 됐다. 이영림 원장은 지난 "우리나라가 아직도 노벨의학상을 못 탄 게 한이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자는 결심으로 기부했다"라고 통 큰 결정을 내린 이유를 밝혔다.
1974년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이 원장은 은사인 신상진 교수의 꿈을 돕기 위해 당시만 해도 생소한 이란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한방 양방을 모두 아우르는 연구소를 지어서 노벨의학상을 배출해보자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 원장은 연구소를 세울 돈을 벌기위하여 이란까지 건너가게 된 것.
이 원장은 주한 이란 대사를 침으로 치료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이란 팔레비 국왕에게도 소개를 받으며 이란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이란 비자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으나 팔레비 국왕의 저서를 번역한다는 내용으로 겨우 비자를 발급받을수 있었다.
원래는 한달 정도 머물 계획이엇으나 결국 3년을 붙들려 있었고 하루에만 환자 100명씩 1년간 예약이 차 있을 정도로 호황이었다고. 이란에서 '골드핑거'로 불렸던 이 원장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명의로 이름을 떨쳤다.
1979년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일으킨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며 시대상황은 바뀌었다. 하지만 이 원장은 이후 중동 건설붐을 타고 한의사에서 건설업자로 변신하여 호메이니의 혁명정부에서도 살아남았고 이란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 원장은 혈혈단신 한국을 떠난 지 18년 만인 1994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란에게 2000평 대저택에 살던 한국에서 37평 압구정 아파트에 적응이 안되어서 "비행기 탄 줄 알았다"라고 한탄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후학을 위해 거액을 기부했지만 정작 이 원장 본인은 오래 전에 지은 맞춤 정장을 45년간 입고 낡은 국산차를 애용할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다. 이 원장은 아직 대한민국 의학계에서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을 평생의 회한으로 꼽았다. 함께 노벨상 연구소를 만들자고 약속했던 신상진 교수는 이원장이 한국에 들어오기 얼마 전에 작고했다.
이 원장은 "지금도 안타까워 죽겠다. 한방과 양방을 합쳐서 노벨상을 배출해보자는 약속을 못 이루고간다면 죽어도 눈을 못감을 것 같다. 후배들이 이뤄주면 좋은데"라고 털어놓으며 "나라가 작고 국민 숫자가 많지않다고 유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까. 대한민국이 세계 3위까지는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냐. 젊은 분들에게 부탁한다"라는 소망을 전하며 후학들의 분발을 당부했다.
김대호 MBC 아나운서는 지난해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2023년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까지 수상하며 늦깎이 예능 대세로 떠오른 인물이다.
지난 2011년 MBC에서 방송된 아나운서 공개채용 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신입사원>을 통하여 최종합격해 아나운서국에 입사한 김대호는, 그간 뉴스 및 시사 교양프로그램 등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10여 년간 큰 사건사고없이 차분하고 진지해보이는 모범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던 김대호지만, 최근 예능과 유튜브 출연을 통하여 회사에서는 'K-직장인'의 애환을 보여주는 오피스라이프를, 직장 밖에서는 '자연인'에 가까운 일상과 소확행에 흠뻑빠진 반전 매력을 선보이며 뜨거운 호응을 일으켰다.
김대호는 처음 아나운서 유튜브 채널 촬영을 위하여 집을 공개하고 동료들을 초청하라는 권유에 내키지않았으나 '회사원으로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유튜브 이후 뜻밖의 화제가 되면서 MBC 간판 예능인 <나 혼자 산다>에도 출연섭외를 받게 됐다고.
김대호는 아나운서 출신 예능인의 대명사인 전현무(KBS 출신)과는 달리 예능 진출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다고 밝혔다. 김대호는 "저는 일을 적게 하고싶은 스타일이었다. 직장인으로 해야할 역할을 해내고 주어진 워라밸을 누릴수 있다면 만족하는 편이었다. 아나테이터나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유재석의 아내이자 MBC 아나운서 선배였던 전 나경은 아나운서와의 일화도 언급했다. 나경은은 김대호가 아나운서 오디션인 <일밤-신입사원>에 출연했을 때 멘토로 처음 인연을 맺으며 당시 김대호를 호평하기도 했다. 어느날 김대호는 나경은의 물건인 등받이 의자를 모르고 버렸다가 뒤늦게 알고 몰래 갔다놨다는 진땀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아나운서 3년 차가 될 무렵, 김대호는 MBC에 사직서를 제출한 일이 있었다. "직업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너무 부족했고 방송에 대한 매력도 못느꼈다."고 회상한 김대호는 "훈련도 없이 들어와서 제 능력에 부쳤다."고 고백했다.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낙천이고 세상에 불만이 없는 자신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 괴리감을 크게 느꼈다고.
아나운서국 선배와 동료들은 김대호를 만류했고, 그는 고심 끝에 잠시 휴직이라는 대안을 선택하여 여행 등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복귀했다. 김대호는 자신을 붙잡아주고 기다려준 회사와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김대호는 직장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하여 '계륵'이라고 의외의 정의를 내렸다. " 저는 엄청난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없으면 아쉬운 존재다. 시키는 건 다 해내는데 꼭 '왜 하냐'고 물어보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목표와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를 싫어한다는 김대호는 "내가 굳이 스타가 되어야한다는 욕심은 없지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어떻게든 해내는 스타일이다. 이루고 못이루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해나가는 거다"라며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방송이라는 직장생활을 14년이나 버텨온 원동력에 대해서도 김대호는 잠시 고민 끝에 '월급'이라는 소박한 답을 내놓았다. 김대호의 칼퇴근 꿀팁으로 알려진 "목적이 있는 사람처럼 걸어라. 방송이 끝나면 땅만 보고 나가라"는 어록에 대헤서도 "생각보다 어렵지않다. 꾸준함만 있으면 된다. 입사하자마자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각인시키면 된다. 뒤를 왜 돌아보겠나. 오늘 할 일을 다했는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떻게 1인분을 해내야할지 모르는 직장 초년생들을 위한 조언으로는 "왜 1인분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파격 답변을 내놓았다. 김대호는 내가 0.2를 해낼수 있는 인간이라면 1.8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유재석과 조세호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듣다가 황당해진 유재석은 장난으로 김대호의 멱살을 잡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김대호는 "나의 그릇을 인정하고 그만큼의 몫을 다하되, 억지로 다른 사람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것으로 해명했다.
신인상 수상소감에서 김대호는 "그동안 일하느라 24시간이 모자라다고 불평해왔는데 오늘만큼은 행복하느라 24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는 수상소감을 남긴 바 있다.김대호는 여전히 지금도 하고있는 방송일을 잘해나갈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때는 자신같은 사람이 방송을 계속할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김대호는, 지난 해를 기점으로 예능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며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다시 활기를 찾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올해도 자신만의 워라밸 스타일을 이어갈 것을 다짐하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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