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김밥만?… 점심이 부담스럽다" [조선물가실록]
돈가스·부대찌개 1만원 넘어
치킨값도 배달비 포함 3만원
#. 서울 종로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진영씨(27)는 점심때마다 밥값 부담이 앞선다. 이씨는 "전에는 점심 뭐 먹을까 행복한 걱정을 했지만 요즘엔 맛보다는 저렴한 곳 위주로 찾는다"며 "종로에서 밥 먹으려면 기본적으로 1만2000~1만3000원은 잡아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나"라고 푸념했다.
'점심값 만원'이 직장인들의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과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아 젊은 층이 많이 찾았던 체인점 식당들이 한 끼에 만원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면서 일반적인 다른 식당들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메뉴판을 내걸고 있는 것. 싸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K직장인의 솔푸드 국밥은 만원이 기본인 시대다.
대표적인 국밥 프랜차이즈인 신의주찹쌀순대와 큰맘할매순대국의 기본 순댓국 가격은 모두 1만원이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돈가스 정식은 1만원 중반대에 가격이 형성돼있다. 돈가스 전문 프랜차이즈인 홍익돈까스의 대표메뉴인 홍익돈까스는 1만3000원, 백소정의 대표 세트 메뉴는 1만4900원에 달한다.
직장인 단골 먹거리인 부대찌개 사정도 비슷하다. 부대찌개 전문 체인점 이태리부대찌개의 부대 전골은 1만1000원이다. 또 다른 부대찌개 브랜드인 쉐프의부대찌개의 경우 대표 부대찌개 메뉴가 2인분 기준으로 최소 2만원이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김밥 가격도 크게 올랐다. 김밥 체인점인 김가네의 기본 김밥은 4500원부터, 고봉민김밥도 3800원부터 시작한다.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햄버거, 샌드위치 체인점 역시 세트 메뉴 가격이 1만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샌드위치 체인점 서브웨이의 서브웨이클럽(15㎝) 9700원이다. 버거킹 대표메뉴 콰트로치즈와퍼 세트는 1만1300원이다. 이 밖에 맥도날드 빅맥라지세트 8900원, 롯데리아의 대표메뉴 핫크리스피버거세트 7800원, 불고기버거세트 6900원 등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20대 직장인 한지연씨는 "요즘은 점심 약속 잡기 부담스럽다"며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도 아닌데, 평범한 체인점 밥집도 만원으로는 엄두를 못 낸다"고 토로했다. 한씨는 "어느 날 가면 어? 여기 오른 거 같은데 하는 곳이 한두 개가 아니다"며 "직장 동료들도 모이면 물가 얘기밖에 안 한다"고 전했다.
직장인 대상 모바일 식권 서비스인 '식신e식권'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서울 평균 식대 결제 금액은 1만2285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9180원 대비 33.8%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평균은 9633원으로 전년보다 8302원 대비 약 16% 올랐다. 통계청 외식업체 실태조사에서 공개한 일반음식점 한식 메뉴의 1인당 객단가도 1만~2만원 미만이 39.2%를 차지했다. 일식과 서양식은 1인당 객단가 1만~2만원 미만 비중이 50%를 넘어선다. 2023년 외식물가 상승률이 6%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서울 평균 식대 결제 금액 및 음식점 1인당 객단가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이 공개한 작년 외식 물가 상승률은 6.0%다. 지난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3.6%의 1.7배다. 작년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가처분소득)이 1%대 증가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시작된 물가 상승세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2년째 3% 넘게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지갑도 얇아질 대로 얇아졌다.
물가와의 전쟁, 올해는 끝낼까…정부 전망은물가상승에 신음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대까지 하향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약 11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 2024년 경제 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 방향 목표를 활력 있는 민생경제로 설정하고, 민생경제 회복, 잠재위험 관리, 역동 경제 구현, 미래세대 동행이라는 4가지 방향에 중점을 두고 올해 경제 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신년사를 통해 "올해 한은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도 경기회복과 금융안정에 필요한 최적의 정책조합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물가 진정을 위해서는 당분간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정상 직전의 오르막길, 또는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 즉 라스트 마일(last mile)이 가장 어렵다"며 "원자재 가격 추이의 불확실성과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 등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고 말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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