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200m 버스대란, 걷는 게 빨라요" 불만도 지쳐 해탈 [르포]
“폭설까지 내린 지난주엔 여기(명동)서 남대문 가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렸어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기가 언제 뻥뻥 뚫린 적이 있었나요. 수십 분 기다리는 건 그냥 그러려니 해요.”
10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명동 입구 광역버스 정류소 앞에서 만난 A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매일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경기도 용인시까지 왕복한다. 이날은 인파가 몰리지 않고 광역버스 계도 요원이 원활하게 통제해 심각한 정체는 없었다. 하지만 끝도 보이지 않는 광역버스 행렬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르포] 명동 입구 광역버스 정류소
매일 출퇴근 시간이 되면 명동·을지로·서울역 일대 도심은 빨간색·파란색 버스로 가득 찬다. 평소에도 서울역 광역환승센터를 경유하는 시내버스 통행량이 많은데, 경기도·인천시 등 인근 자치단체에서 들어오는 광역버스까지 몰리면서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시가 도입한 노선별 버스 표지판 제도는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이 제도는 버스별로 일시정차가 가능한 곳을 각각 지정하고 표지판을 부착한 제도다.
서울시가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에 광역버스가 도착하면 승객이 우르르 몰려가 타곤 했다. 워낙 많은 버스가 몰리는 장소라 사실상 버스정류장처럼 사용하는 구간은 200m는 족히 넘는다. 통상 광역버스 운전기사가 눈치껏 교통량을 보고 적당한 곳에 세우면 뛰어가 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버스정류장에서 장시간 기다렸는데 광역버스가 혼잡한 공간에서 승객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는 민원이 다수 발생한 것도 영향을 줬다.
버스 노선별로 정차 공간을 지정하면, 버스가 어디에 멈출지 예측할 수 있다. 100m 앞에 멈춘 버스를 타려고 전력 질주하거나 이중 정차한 버스를 타려고 차도로 뛰어드는 위험한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게 서울시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제도를 시행하니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지정 안내판까지 가기 전까지 승객을 태울 수 없는 광역버스가 줄줄이 꼬리를 물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서울 인근 지자체서 온 광역버스 노선은 대부분 한남동에서 남산터널을 통과해 도심으로 진입한다. 외길을 타고 도심에 진입한 광역버스는 지정 표지판에 도착할 때까지 앞에 대기하는 버스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도심 구간 버스전용차로는 주로 1개 차로만 지정하는데, 버스가 반드시 정차해야만 하는 표지판에 도착하기 전까지 뒤따르는 버스는 대기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줄지어 선 버스가 길을 막고 정체를 유발하기 시작하면 종로·남대문시장·숭례문을 거쳐 서울역까지 막힌다. 서울역 환승센터에선 시내·광역버스가 일단 진입했다가 유턴해서 명동·서대문 방향 도심으로 재진입하는 버스 노선이 수십 개다. 여기서 회차하기 위해 파란불에 진입한 일부 버스는 빨간불로 바뀔 때까지 회차하지 못한다. 이는 남대문로 양방향 소통이 동시에 마비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꽉 막힌 도로에 남산3호터널을 통과해 진입한 자동차까지 가세하면서 도심 구간이 통째로 꽉 막혀버린 게 지난주 상황이었다.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서 만난 시민 B씨는 “출퇴근 시간 도심은 걷는 게 버스보다 빠를 정도”라고 말했다.
표지판 제도 일시 유예…근본적 해법 없어
문제가 커지자 서울시는 지난 6일부터 노선별 버스 표지판 제도 운용을 일시 유예하기로 했다. 또 도심으로 들어오는 광역버스 노선을 분산하기 위해 수원·용인 등 5개 광역버스 노선과 정차 위치를 변경했다. 현장에서 승객 승·하차를 돕는 계도 요원도 투입했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광역버스 정류소 이용자가 3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10일 퇴근 시간은 정체가 심각하진 않았다.
서울시는 11일엔 서울 중구 백병원 앞 중앙정류소 혼잡 해소 대책도 추가로 내놨다. 이 장소 역시 28개 경기도 광역버스 노선이 일거에 몰리는 중앙버스전용차로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5시부터 이곳에 계도 요원 2명을 투입하고, 경기도·중구청과 합의해 정류소 건너편에 가로변 정류소를 신설해 10개의 광역버스 노선을 분산 배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해결된 건 아니다. 이날 맨 끝 차로에 광역버스 수십대가 ‘줄줄이 사탕’처럼 끝을 모르고 이어진 상황은 여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선별 버스 표지판 제도는 도로가 넓고 통행량이 적당하면 괜찮은 방식”이라며 “다만 명동처럼 수십 개 노선이 편도 3차로에서 달리는 상황까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혼란이 발생했다고 보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해소하려면 근본적으로 서울에 진입하는 버스를 줄이거나 넓은 정류장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둘 다 녹록지 않다. 광역버스 진입 대수를 통제하면 외곽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시민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고, 거대한 정류장 공간을 확보하기에는 비용·부지 등 걸림돌이 많아서다. 광역버스가 실어 나르는 승객은 일평균 9500명에 달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선·정류소를 계속 조정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경기도·운수업체와 상의하고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안전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만큼, 이달 말까지 현장 시민 의견을 모니터링해 안전·편의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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